11월까진 "애걔걔" 12월엔 "우와"..학교급식에 무슨 일이?

송인걸 2022. 10. 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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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251곳 급식비·식단 보니
대전에서 학교가 조리원 인건비 등을 부담하면서 급식비를 고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폐단이 반복되고 있다. 학교급식 업계와 시민단체가 교육 당국에 효율적인 학교급식을 위한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사진 클립아트

지난해 12월10일 대전 동구 ㅅ중학교 학생 800여명은 점심시간에 나온 급식 식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시내 유명 음식점에서나 볼 수 있는 ‘돈마호크’ 스테이크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날 책정된 학생 1명당 급식단가는 8천원이 넘었다. 대전 중학생의 한끼 급식단가인 4천원을 갑절 남짓 웃돈 것이다.

이날만 특급 요리가 나온 건 아니다. 12월~1월 급식이 있었던 30일 가운데 15일 동안 이 학교 점심 식사로 나온 메뉴는 이렇다. 낙지연포탕, 감자 함박스테이크, 허브치킨 찹스테이크, 돼지 훈제구이, 버터갈릭 닭고기구이가 주메뉴로 올랐고, 한라봉주스와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이 보조메뉴로 등장했다. 한끼 단가는 5천원에서 8천원까지 널을 뛰었다. 이 학교의 한 재학생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매년 12월이 되면 급식 메뉴의 차원이 달라진다. 일년 열두달이 12월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12월의 기적’은 ㅅ중학교에서만 일어난 건 아니다. 대전의 초·중·고교 대부분의 학교급식에서 이런 식의 식단 편성이 이뤄지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12월 급식비가 다른 달에 견줘 많이 지출되고 있어서다. 대전시교육청의 올해 급식 예산은 영양사·조리원 인건비를 포함해 모두 1305억원이다. 한끼 급식단가는 초등학생 3800원, 중학생 4600원, 고교생 4900원이다.

<한겨레>와 대전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함께 대전시교육청 관내 초·중·고교 251곳(31곳은 자료 누락)의 지난해 9~12월의 급식비와 식단을 분석했다. 그 결과 221곳에서 12월 급식비가 9~11월 월평균 급식비에 견줘 크게 뛰었다. 평균 상승률이 88.1%다. 12월 급식비가 비교 대상 9~11월 월평균 급식비에 견줘 두배를 웃돈 학교도 7곳에 이르렀다. ㅅ중학교는 같은 기간 급식비 상승률이 무려 289%에 이른다. 12월 급식비에는 급식일수가 적은 1~2월 급식비(최대 9일)가 포함된 점을 염두에 두고 재분석을 해봐도 12월 급식비는 평월을 크게 웃돈다.

12월 급식비 지출이 크게 늘고 급식 품질이 널을 뛰는 까닭은 1년 기준으로 책정된 급식 예산 잔여분을 연말에 모두 소진하는 관행 때문이다. 급식 예산 운용에 밝은 한 인사는 “연말 급식 예산 털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급식비에 인건비와 운영비가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급식단가에 영향을 주는 인건비 변동을 학교들이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다 보니 평월에는 급식비를 아끼다가 인건비 지출의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회계연도 결산이 예정된 12월에 잔여 예산을 모두 써버리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교육 당국은 학교 규모에 따라 영양사와 조리원의 인건비를 별도 책정해 지급하고 있다. 급식 인원이 200명을 밑도는 학교의 영양사와 조리원 인건비는 전액 지급하고, 급식 인원이 이보다 더 많을 경우에는 인건비의 일부만 지원한다. 개별 학교는 교육 당국의 인건비 지원 기준보다 더 많은 조리원을 쓸 경우 해당 인건비는 급식비에서 끌어와 써야 한다.

문제는 연간 지출되는 인건비 규모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영양사나 조리원이 질병 등의 이유로 유급휴직을 할 경우 대체 인력에게 지급하는 인건비는 전액 급식 예산에서 충당해야 한다. 전직 영양교사 김아무개(59)씨는 “언제 발생할지 모를 인건비 추가 지출에 대비해 각 학교들은 평소 급식 예산을 보수적으로 운용하다가 연말에 남은 예산을 한꺼번에 쓰는 관행이 자리잡았다”며 “이러다 보니 ‘집밥 수준의 급식을 연중 고르게 제공하라’는 시 교육청의 지침이 지켜지기 어렵다”고 했다.

교육 당국도 주먹구구식인 급식비 운용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김석중 대전시교육청 체육예술건강과장은 “급식 예산에서 인건비와 운영비를 분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적지 않다. 2024년 1학기 시행을 목표로 일선 학교, 학부모 등 교육 주체와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서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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