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주호' 10년 뒤 한국 사회

전정윤 2022. 10. 5. 18: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국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며 후보자 지명 소회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전정윤 | 사회정책부장

대통령의 인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다. 대통령은 정부의 비전과 정책을 집행할 적임자를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은 그의 이력과 자질을 통해 대통령이 만들려는 나라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2022년 한국 대통령이 던져야 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인구감소 대책일 것이다. 한국은 올 2분기 합계출산율이 0.75였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가 1명도 안 된다는 뜻이다. 세계가 ‘집단자살 사회’로 주목하는 인구소멸 위기다.

사회·경제·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인구감소 원인을 한두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 사회에 희망보다 절망이 앞서고, 그 핵심요인 중 하나가 교육이라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다. 말만 공교육이지 수월성이라는 명목으로 각종 특목고·자사고가 존재하고 대학 입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다. 그러니 고교 입시를 위해 기저귀 찰 때부터 학원 뺑뺑이를 돌 지경이다. 각종 조사에서 사교육 시작 평균연령이 4살 안팎이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통계는 지난해 36만7000원이지만, 월 100만~200만원 넘게 쓰는 가정도 흔하다. 그렇게 공부를 시켜 2021년 기준 25~34살 69.3%가 대학 교육을 받는데, 그래 봐야 2021년 20~29살 고용률은 57.4%에 그치고 그마저도 3분의 1은 비정규직이다. 운 좋게 중위소득 가구가 되더라도 서울에서 중간 가격대 아파트를 마련하려면 월급(6월 기준)을 한푼도 쓰지 않고 17.6년(PIR) 동안 모아야 한다.

교육부가, 법원이 대변하는 큰 목소리를 들어 보면 한국은 국민 대다수가 이런 무한경쟁을 자율과 자유로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육과 교육은 부모 몫이고, 부모와 자녀 모두 값비싼 기회비용을 치른 뒤 고학력 백수에 벼락거지가 돼도 ‘내 탓’으로 순응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밥그릇 내놓으라고 확성기를 트는 것보다 조용한 체념으로 곡기를 끊는 분노가 더 무섭다. 합계출산율 0.75명은 ‘무한경쟁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 떠안는 나라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체념의 표현이다.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은 이 와중에 만 5살 조기취학을 발표했다가 사퇴당했다. 가뜩이나 미래가 없어 아이도 못 낳겠다는데, 태어난 지 5년 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을 1년이라도 빨리 산업인력으로 당겨 쓰려다 사달이 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낳아 기를 만한 사회로 만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야 할 때인데, 지난달 29일 장고 끝에 던진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메시지는 불안감을 키운다. 윤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교육과학기술부 장차관을 지낸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를 한국 교육의 한복판으로 다시 불러냈다. 대선 공약도 ‘엠비(MB) 교육정책 재활용’인데, ‘엠비 교육정책의 설계자’를 재기용하는 것이 정체성에는 부합하는 인사일 수 있다. 다만, 합계출산율이 0.7명대로 고꾸라지고 박 전 장관이 그렇게 물러난 시점에 이번 회전문 인사가 불러일으킬 소리 없는 파문은 심히 우려스럽다.

‘이주호’가 누구인가. 교육은 공공의 장이 아닌 시장이라고 선언한 장관이었다. 학교 운영의 자율을 강조하며 자사고를 만들었지만 많은 일반고를 망가뜨렸고, 일제고사와 그 결과 공개로 학교와 학생을 줄세웠다. 2018년 서울시교육청 자료를 보면, 중학교 석차 백분율 10% 이내 학생이 일반고(204곳)는 8.5%, 자사고(당시 23곳)는 18.5%였다. 2020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고2 재학생 5000여명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월평균 100만원 이상 사교육비 지출 비율이 일반고 13.3%, 자사고 43.9%였다. 그의 교육시장주의에 동의하든 말든 학생과 학부모는 각자도생 교육시장으로 끌려들어갔다.

이 후보자는 지난달 30일 “교육 주체들에게 자율과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겠다며 이번엔 대학 자율을 들고나왔다. 엠비 교육의 그림자가 아직 짙은데 ‘다시 이주호’다. 그가 이번에 잘못하면 다음에 누가 정권을 잡든 10년 뒤 한국은 ‘집단자살 사회’를 향해 더는 돌이키기 힘든 가속페달을 밟게 될 것이다.

ggum@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