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이 제2의 쌍용자동차가 되지 않으려면

한겨레 2022. 10. 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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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일단락된 뒤 원청의 사용자성과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르며 노조법 2, 3조 개정 요구가 노동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구체화하고 있다. 이에 노조법 2, 3조 개정 필요성, 방향과 관련한 국회, 전문가, 당사자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지난 7월21일 오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도크 화물창 바닥에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농성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왜냐면] 노란봉투법 릴레이 기고 1 | 이은주 국회의원(정의당·환경노동위원회)

지난 7월 삭감된 임금 30% 원상회복과 노동조합 인정을 요구하며 도크를 점거하며 51일 동안 진행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끝났다.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이 합법적 쟁의권을 얻어 파업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세계 1위 한국조선업의 20년차 숙련공 월급이 최저임금을 갓 넘는 수준이라는 현실에 많은 시민의 연대가 이어졌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임금협상이 타결됐다.

변함없이 남은 것이 있다. 쟁의 참가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이다. 산업은행 지분이 50%가 넘는 대우조선해양은 사실상 공기업이기에, 손배소는 사실상 정부가 내린 결정으로 봐야 한다. 정부가 파업 중재에 나섰던 만큼, 교섭 결과가 원만히 이행되도록 돕고 사회통합 실현을 위해 나서야 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강조한 이후, 결국 조합원들을 상대로 470억원 규모 손해배상이 청구됐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말이다.

어디 대우조선해양뿐이겠는가? 유가 폭등으로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며 100일 넘게 파업 중인 하이트진로는 조합원들에게도 소장이 날아들었다. 수십년 쉬지 않고 일하다가 단 한번 파업에 나선 이들의 삶에 족쇄가 채워졌다. 2003년 사쪽의 노조탄압과 그 일환으로 받아든 손해배상청구에 항의하며 분신한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부터 최근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손배소까지, 손해배상은 이제 통상적 절차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쟁의 전에는 노동자에게 공포를 줘서 쟁의 참가를 막고, 쟁의 뒤에는 노동조합의 존속을 위협하고 조합원 개인의 삶을 파탄으로 이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데에는 제도 탓이 크다. 우리 노조법이 임금과 근로조건만을 쟁의 대상으로 보고, 원청이나 플랫폼 대기업은 노조법상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른바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은 당연히 이렇지 않다.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는 쟁의행위에 대한 노조원 상대 손배소가 법률적으로 가능하지만 사실상 행사되지 않는다.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소가 노사 관계 파탄과 약자들의 권리 박탈을 가져올 수 있기에,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극도로 절제하는 관행이 자리잡은 것이다.

지난 4일 고용노동부 발표를 보면,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 2022년 8월까지 노조원 등을 상대로 2752억원 규모 손해배상이 청구됐고 재판 과정에서 노동자와 그 가족 수십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런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손배소 남발을 허용하고 있는 노조법을 바꾸자는 ‘노란봉투법’ 입법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19대 국회에서부터 시작된 이 시도는 아직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번에 나는 다시 한번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 손배소 피해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손잡고’와 함께 준비한 이 법은, 특히 대우조선해양이나 하이트진로 등에서 보듯이 원청이 도급이나 용역이라는 이유로 노동자와의 교섭은 거부하면서 손배소를 제기하는 부조리를 개선하려고 한다. 즉, 노동시장의 변화에 맞춰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조법 2조의 사용자와 근로자에 대한 정의를 확대했다. 아울러 폭력과 파괴행위를 제외하고는 노동조합이 기획한 쟁의 참가를 이유로 손배소가 가능하지 않도록 노조법 3조를 개정하도록 했고, 특히 조합원 개인에 대한 손배소를 막았다. 또한 노조법 2조의 쟁의행위 대상을 확대해 임금과 근로조건에 대한 노사 간 의견불일치만을 쟁의행위의 대상으로 보지 않도록 했다. 예컨대 정리해고 등도 쟁의행위의 대상이 되도록 했다.

우리나라 헌법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제33조 1)고 밝히고 있다. 선진국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더는 노동자의 기본권 행사가 자신의 삶을 건 모험이 되도록 할 수 없다. 내가 제출한 이 법안이 기존 법안과 함께 논의돼 ‘노란봉투법’ 입법으로 이어져, 파업 참가가 삶의 파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끝나기를 바란다. 동료 시민들과 동료 의원들의 많은 격려와 참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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