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과연 우리는 통일을 얼마나 원하고 있나요?

한겨레 2022. 10. 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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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이 땅에 온 3만여명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이다. 남북 경제협력 시대에 큰 몫을 감당할 소중한 자원이다. 그런데 북한에서 의사로, 기사로, 연구사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탈북민 기술자들은 남한에서 그간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있다. 한국에 온 탈북민 기술자 중에서 자기 전공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불과 10%도 안 된다.
경기도 김포시 한강하구에 설치된 철책선 너머로 쇠기러기 떼가 날아가고 있다. 박경만 기자

하영서(가명) | 탈북민·토목기술자

북한을 탈출해 8년 전 인천공항에 첫발을 들여놓던 그때, 내 마음속에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떳떳한 모습으로 고향의 부모님과 친척, 친우들을 만나리라는 열정이 들끓고 있었다. 겉으로 본 한국 사회는 화려해 보였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체제에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다른 방식으로 40년을 살아온 내게 한국에서의 생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려운 취업 관문을 뚫고 화장품회사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한국에서의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면서 열심히 일하던 중 경기도 이천의 한 중견 반도체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넣었다가 운 좋게도 합격했다. 화장품회사보다 급여도, 여러가지 기회도 많은 좋은 회사였다. 하지만 북한에서 15년 동안 측량기술자로 살아온 나와는 적성에 잘 맞지 않는 일이었다. 반도체 관련 학과를 나와 관련된 자격증들도 취득해야 어엿한 반도체기술자로 살아갈 수 있는데, 4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던 내겐 너무 벅찬 일이었다. 게다가 반도체 쪽 퇴직 연한은 토목업종보다 상대적으로 빨랐다.

나름 북한에서 최고 공업종합대학을 나오고 탄광에서 모두가 인정하고 존경받는 기술자로 살아왔던 내게 북한에서의 기술과 경험은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었고, 삶의 한 부분이었다. 그 소중한 삶의 한 부분을 통일을 위해 기여하기로 마음먹고 반도체회사를 그만두고 측량과 관련된 지방의 작은 토목계측회사에 입사했다. 수도권에서는 나 같은 무자격, 무학력, 무경력자는 신입으로도 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니 지방 업체를 택해야 했다.

한국은 탈북민의 북한에서의 학력, 경력, 자격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모든 걸 한국에서 다시 취득해야 기술자로 일할 수 있다. 40대 초반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팀 막내로서 주어진 일은 뭐든 가리지 않고 해내야 했다.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북한에서의 경험과 지식을 살려보겠다는 다짐은 포기할 수 없었다. 낮에는 회사 일을 하고, 저녁에는 왕복 300㎞ 넘는 거리를 오가며 2년제 대학교 야간 학과를 졸업할 수 있었다. 짬짬이 자격증 공부를 해서 4년 만에 측량 및 지형공간정보기사, 토목기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건설기술인협회 소속 고급기술자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은 토목공사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자격증과 현장 경력을 모두 갖췄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대놓고 함께 일하기를 거절하는 토목 현장도 있고,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과도 일해야 했다. 회사에서도 여러 수군거림과 견제를 이겨내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 탈북민이 그렇듯, 나 또한 묵묵히 일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왔다.

오랜 분단과 대결을 종식하고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경제협력을 해나가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 땅에 온 3만여명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이다. 이들은 남북 경제협력 시대에 큰 몫을 감당할 소중한 자원이다. 그런데 북한에서 의사로, 기사로, 연구사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탈북민 기술자들은 남한에서 그간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있다. 한국에 온 탈북민 기술자 중에서 자기 전공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불과 10%도 안 되고,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요구하는 학력과 자격, 경력 등을 새롭게 취득해 나처럼 기술자로 인정받고 일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가 부정해야 할 것은 북한 김씨 일가의 세습통치이지 탈북민들의 삶이 아니지 않은가.

통일을 위한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남북 지도 통합일 것이다.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체계의 지도시스템을 통일시키고, 그에 기초해 남북의 통일 지도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남북 경제협력의 첫 단추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 출신 지도 전문가를 양성하고, 그들과 공동연구를 통해 통일을 위한 실제적인 준비들을 하나하나 해나가야 한다. 나 또한 이런 일에 종사하겠다며, 더 나은 대우를 받던 직장을 관두고 지금 회사로 옮겨오고,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대학에 다니고 여러 자격증도 땄다.

전쟁이 없는 나라,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나라를 후대들에 물려주려면 먼저 탈북민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그들을 사회의 한 성원으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 또 탈북민들이 살아온 북한에서의 삶과 경험, 지식을 소중히 여기고 앞으로 있을 남북 경제협력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앞으로 준비하고 다가올 민족적 화해와 남북 공동번영의 시대에 ‘먼저 온 통일’로서 뭔가 기여하고 제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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