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외교안보정책, ABM 아닌 실력으로

이훈성 2022. 10. 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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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시절 '반문재인' 정책 주장했던 尹
집권 이후 정세 변화에 맞는 정책 수행
유연한 상황 대처 필수.. 관건은 실행력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전임 클린턴 정부가 했던 일은 뭐든 뒤집으려 했던 미국 부시 정부의 정책 기조에 'ABC(Anything but Clinton)'라는 꼬리표가 붙었듯이,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일찍이 'ABM'으로 회자됐다.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성(Moon)에서 따온 M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북 정책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국익 개념에 좌우된 정책"이며 한미 동맹을 '표류'하게 한 원인이라고 했다. 대중 정책은 "중국의 경제제재에 굴복했고 지나치리만큼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였다", 대일 정책은 "과거사 이슈에 매몰돼 현안 해결 노력 없이 악화일로를 지속했다"고 힐난했다.

윤석열 정부 집권 5개월 동안 외교안보는 가장 주목받는 정책 영역이 됐다.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 재건'을 강조하며 취임 직후부터 한미 정상회담, 나토·유엔 다자외교 등 굵직한 외교 일정을 연달아 소화했다. 군사안보 정책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폭주로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물론 연금·노동·교육 3대 개혁의 기치를 올린 사회 부문이 여태 장관 인선도 끝내지 못할 만큼 지지부진하고 경제 부문은 고환율·고물가·고금리 위기 관리에도 빠듯하다 보니 외교안보 부문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측면도 있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외교안보 행보에서 ABM 이미지는 옅어지고 있다.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방한 때 휴가를 이유로 접견 대신 통화로 대신했던 윤 대통령은 지난달 리잔수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용산 대통령실에서 직접 맞았다. 최근 미 CNN과의 인터뷰에서 유사시 미국의 대만 방어를 지원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땐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북한 역시 도발할 가능성이 높고, 한국은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 도발에 대응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비켜 갔다. 모두 이전 정부 외교팀들의 '전략적 모호성'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사실 ABM을 내세울 만한 여건도 아니다. 전현직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교하려면 공통된 상황을 두고 대응 방식 차이를 따져야 할 텐데, 외교안보 환경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급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대폭 축소됐거나 없다시피 했던 한미·한미일 연합훈련 재개, 한미 확장억제전략 협의를 현 정부의 차별화 성과로 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북한의 고강도 도발은 2017년 이후 한동안 없었던 일이다. 전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논할 땐 당시 미국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라는 비전통적 리더였고 북한 김정은은 정상국가화 의지를 밝히고 있었던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정부 입장에서 평화 통일은 헌법 가치이자 임무인 터라 이런 국면에선 이념 성향이 어떻든지 유화책을 폈을 것이다. 결실까지 맺을 수 있을지는 정부마다 다르겠지만.

변화무쌍한 한반도 정세를 감안하면, 어떤 정부의 외교안보팀도 유연하고 기민한 상황 대처를 사려 깊은 원칙 수립만큼 중시해야 한다. 북핵 억지, 미일 공조 강화, 대중 관계 관리라는 현 정부 전략은 지금의 조건에 부합하는 선택으로 보인다. 관건은 이런 지향을 구현할 수 있는 실력이다. 실기(失期)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는 미 인플레감축법(IRA) 대응은 그런 점에서 아쉽다. 현대차 전기차 공장이 들어설 조지아주 상원 의원은 IRA에 찬성표를 던지고는 뒤늦게 현대차 구제 법안을 냈는데, 입법 과정에서 그를 상대로 법안 보완 필요성을 설득했더라면 어땠을까. 무리한 추진으로 논란만 빚은 지난달 뉴욕 한미·한일 정상회담 파행도 외교팀의 분발을 요한다. 행여 이 무리수에 ABM의 욕망이 깃들어 있었다면 이젠 내려놓는 것이 좋겠다.

이훈성 논설위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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