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헷갈리지 마세요.."기능성 원료 넣었지만 건강식품 아냐"

송경은 2022. 10. 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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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건강 관심 커지며
기능성표시식품 2년새 40배
기능성 원료 들어있지만
제품효능은 보장 못해
건강기능식품과 혼선 우려
"식약처가 스스로 혼란 키워"
서울 시내 한 마트에서 고객이 건강기능식품을 살펴보고 있다. [매경DB]
'본 제품에는 식후 혈당 상승 억제·혈중 중성지질 개선·배변활동 원활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알려진 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이 들어 있습니다.' 

'본 제품은 건강기능식품이 아닙니다.'

30대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편의점에 갔다가 음료 겉면에 적힌 문구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인체에 유용하다고 알려진'과 같은 모호한 표현은 물론이고, 기능성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건강기능식품은 아니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과자, 음료 등 일반식품에 기능성 성분을 첨가하고 이 같은 내용을 제품에 표시한 '기능성표시식품'이 크게 늘면서 소비자들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부 소비자들이 건강기능식품을 의약품으로 오인하는 것처럼 기능성표시식품은 태생적으로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기능성표시식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0년 12월 '일반식품의 기능성 표시제'를 도입한 데 따른 것으로, 일반식품도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갖춘 경우 인체 유용성 등 기능성 표시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식약처는 당시 "일반식품의 기능성 표시제는 국내 기능성 원료 개발을 유도해 식품산업 활력을 도모하는 한편, 올바른 정보 제공으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제도 취지를 밝혔다.

실제로 시장에는 다양한 기능성표시식품이 등장했다. 한국식품산업협회가 공개한 '식품 등의 기능성 표시·광고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 10개에 불과했던 기능성표시식품(출시 예정 포함)은 5일 기준 현재 439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 달에 평균 약 20개씩 등록된 셈이다. 

한 자판기에 기능성 표시가 있는 사이다, 탄산수 등 음료 제품이 진열돼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품의 기능성을 인정받은 건강기능식품이 아니라 단순히 기능성 원료가 들어 있는 일반식품(기능성표시식품)이지만, `배변활동 원활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과 같은 기능성 표시가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송경은 기자]
대표적인 것이 롯데칠성음료가 지난 2월 출시한 '칠성사이다 플러스'로, 기능성 원료인 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을 함유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사이다보다는 몸에 더 좋다는 말이겠죠?" "저칼로리를 넘어선 기능성 사이다!"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가격은 500㎖ 기준 2500원으로 일반 칠성사이다 제품보다 300원 비싸다.

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은 일반식품에 가장 흔히 사용되는 기능성 원료다. 농심의 '밈(MEME)5 크랜베리 초코쿠키'와 대상웰라이프의 혼합음료 '마이밀 뉴프로틴 요구르트맛', 광동제약의 'V라인 광동 옥수수수염차 이너브이', 서울우유의 '아침에주스 푸룬 스틱젤리' 등에도 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이 함유돼 있다.

대상은 지난 7월 청정원의 음료 베이스 제품인 '홍초' 6종에 알로에 겔을 첨가한 기능성 표시 일반식품을 선보였다. 알로에 겔은 피부 건강·장 건강·면역력 증진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식약처 인정 기능성 원료다. 롯데제과는 장내 유익균 증식과 배변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능성 원료인 프락토올리고당을 첨가한 '퀘이커 오트밀바 카카오쿠키'를 출시할 예정이다.

문제는 기능성표시식품이 일반식품과 건강기능식품의 중간 개념으로, 그 자체가 소비자들에게 상당한 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것을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는 법적으로 금지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할 수 있는 표시 또는 광고를 금지하고 적발해야 할 식약처가 직접 나서서 식약처장 고시로 법률 위반을 허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도 "식품산업을 증진하는 것은 농림축산식품부나 산업통상자원부가 해야 할 일이지 식품 안전을 책임져야 할 식약처가 나설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식약처 관계자는 "건강기능식품과 혼동하지 않도록 '건강기능식품이 아니다'라는 주의 표시를 하도록 했으며 표시 방법, 제형 등을 달리하고 식품 등의 기능성 표시·광고 자율 심의를 의무화해 부당 광고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건강기능식품이 아니다' 같은 설명은 기능성 원료가 단순히 함유돼 있을 뿐, 제품의 기능성을 보장할 순 없다는 셈이어서 또 다른 혼란을 부추긴다는 의견이 많다.

자율 심의 역시 형식적인 절차에 가까워 실효성이 떨어진다. 실제 식품회사들이 자율 심의를 위해 한국식품산업협회에 제출한 자료들 대부분은 과학적 근거가 아닌 기능성 원료 함량과 같은 단순 정보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현행 규정상 식품회사가 기능성표시식품 제조·판매를 위해 별도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해 인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능성 표시의 전제조건인 '충분한 과학적 근거'는 식약처가 건강기능식품 원료 중 일반식품에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한 기능성 원료의 인체 유용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지칭할 뿐이다.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기능성 원료별 제품 함량 기준이 명확하고 섭취량, 섭취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품의 기능성과 안전성을 식약처가 인정한 것으로 별도의 제조·판매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다. 반면 기능성표시식품은 기능성 원료의 함량이 1일 섭취기준량의 30% 이상을 충족하고 최대함량기준을 초과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 제품의 기능성에 대해서는 보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기능성표시식품이 기능성 측면에서 충분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한 소비자 단체 관계자는 "제품의 기능성을 담보할 수 없고 단순히 기능성 원료가 들어 있다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원료 표시 외에 굳이 기능성 원료의 인체 유용성에 대해 따로 표시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소비자 혼란이 높아지면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은 지난 4월 기능성표시식품의 관리 기준을 건강기능식품 수준으로 높이는 내용의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다만 식품업계는 일반식품의 기능성 표시제 도입 취지를 고려했을 때 이 같은 방식의 제도 개선은 과잉 규제라는 입장이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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