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지하 1000m서 우주 비밀 밝힐 실마리 찾는다

이준기 2022. 10. 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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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 지하실험연구단 준공식 개최
면적 3000㎡ 세계 여섯번째 크기
암흑물질 탐색·중성미자 검출연구
강원 정선군 예미산에 구축된 IBS 지하실험연구단의 지하실험실 '예미랩' 내부 전경. IBS 제공
IBS 지하실험실 '예미랩'에 구축돼 중성미자 없는 이중베타 붕괴 현상을 관측하는 '아모레(AMoRE-2) 실험실' IBS 제공
IBS 지하실험실 '예미랩'의 대형 액체섬광물질 검출기(LSC)가 들어설 실험공간 IBS 제공

강원 정선군 신동읍 예미산에 다다르자 철광석을 채굴하는 한덕철광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문을 지나 산 중턱으로 더 올라가자 IBS(기초과학연구원) 로고가 새겨진 대형 구조물이 나왔다.

안전모와 안전화, 방진마스크로 무장하고 아파트 공사장에서나 봄직한 철문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엘리베이터는 이내 지하 600m를 향해 초속 4m의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지하 600m까지 걸린 시간은 2분 34초. 서울 잠실 롯데타워의 높이가 555m인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더 깊이 지하로 내려간 셈이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광산 갱도가 길게 이어져 있고, 갱도에서 캔 철광석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운반 엘리베이터로 옮겨지고 있었다. 안으로 더 들어가자 갱도 안이 서서히 밝아졌다.

◇세계 6번째 규모 지하실험실 '예미랩'= 이 곳이 우주 구조와 기원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구축된 지하실험실인 'IBS 예미랩'의 초입이다. 초입에서 카트로 경사진 곳을 따라 800m 가량 더 들어가니 마치 갈비뼈처럼 좌우로 크고 작은 지하 실험공간 13개가 드러났다.

예미랩은 지난 2017년부터 5년 간 총 300억원을 투입해 건설됐다. 600m 길이의 수직갱도와 800m 길이의 수평갱도를 지나야 거대한 지하실험실에 도착할 수 있다. 지하실험실 벽 전체는 먼지와 암벽에 나오는 우라늄 등을 차단하기 위해 콘크리트와 특수 코팅제를 수차례 칠해 울퉁불퉁하고, 천장에는 배기시스템과 물, 전기 등을 공급하는 설비들이 이어져 있었다.

예미랩은 약 3000㎡ 면적으로,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큰 고심도 지하실험시설이다. 기상청,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국가수리과학연구소, 경북대,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다수 기관이 공동 활용할 계획이다.

박강수 IBS 지하실험연구단 책임기술원은 "우수한 실험시설 덕분에 미국 MIT 등 해외로부터 공동연구를 제의받고 있다"며 "내년부터 검출기 등 각종 연구장비와 시설이 순차적으로 들어오면 암흑물질 탐색과 중성미자 검출을 위한 연구를 본격 시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우주 암흑물질' 흔적 찾는다= 예미랩에서 과학자들은 암흑물질과 중성미자가 내는 신호를 찾는 연구를 한다. 지하 깊은 곳에 실험실을 만든 것은 지상에서는 우주선(배경잡음) 때문에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연구그룹들은 경쟁적으로 지하 깊은 곳에 연구시설을 만들어 연구하고 있다.

암흑물질을 탐색하는 실험공간인 '코사인(COSINE-200) 실험실'에서는 우주 전체의 26%를 차지하지만 아직까지 관측된 적이 없는 암흑물질을 탐색한다. 지구로 날아온 암흑물질과 코사인 검출기 내 결정(아이오딘화나트륨, NaI)의 충돌 과정에서 암흑물질의 흔적을 탐색하는 연구를 한다. 액시온, 비활성 중성미자 등과 함께 암흑물질 후보로 거론되는 '윔프(WIMP)'를 찾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윔프는 약하게 상호작용하지만 무거운 입자로, 한국의 천재 물리학자인 고 이휘소 박사도 암흑물질 후보로 윔프 입자를 제안했다.

이탈리아 연구팀이 윔프 신호를 포착했다고 학계에 발표한 이래 전 세계 연구자들이 관련 연구를 하고 있지만 아직 어떤 연구그룹도 동일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연구팀은 검출기에 들어가는 아이오딘화나트륨 결정을 강원도 양양에서 수행한 실험 때보다 2배 많은 200㎏급으로 늘려 세계 최고 성능의 암흑물질 탐색 검출기를 운영할 계획이다.

◇관측 성공하면 '노벨상감'…'중성미자 없는 이중베타 붕괴' 관측 도전= 중성미자 연구를 위한 실험공간인 '아모레(AMoRE-2) 실험실'은 이미 장비 구축이 마무리 단계다. 중성미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12개 기본 입자 중 하나로, 현재까지 전자중성미자, 타우중성미자, 뮤온중성미자 등 세 가지가 발견됐다. 아직 중성미자의 정확한 질량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이미 알려진 3종 외에 비활성 중성미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중성미자 성질을 규명하면 빅뱅 직후 어떻게 물질만 남아 우주를 구성했는지를 밝히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연구팀은 몰리브덴 동위원소를 이용해 '중성미자가 없는 이중베타 붕괴 현상'을 관측하는 도전적인 연구목표를 내걸었다. 원자핵의 양성자가 중성자로 바뀌는 베타붕괴 과정에서 중성미자는 전자와 함께 방출되는데, 중성미자를 방출하지 않는 매우 드문 상황에서 중성미자의 절대 질량을 파악해 '마요라나 페르미온' 입자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중성미자 미방출 이중 베타붕괴를 관측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IBS 지하실험연구단이 성공하면 노벨상 감이다. 연구단은 올해 말 이곳에서 아모레-2 실험을 본격 시작할 예정이다.

김영덕 IBS 지하실험연구단장은 "암흑물질과 중성미자 연구는 현대물리학계에서 가장 큰 질문이자 인류가 규명해야 할 분야"라며 "예미랩에서 의미있는 실험결과들이 나와 우주 근원을 규명하는 연구에 우리나라가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과기정통부와 기초과학연구원은 5일 강원 정선군에서 오태석 과기정통부 차관, 김진태 강원도지사, 노도영 IBS 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예미랩 준공식'을 가졌다.

정선(강원)=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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