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마음을 탐구하는 포크 듀오 '기타와 바보'[김성대의 음악노트]
처음엔 혼성 듀오가 가사 한 소절씩 주고 받거나 때때로 두 사람이 화음을 이루며 사색하는 흔한 통기타 음악인 줄 알았다. 끼익끼익 코드워크 신음을 내뱉는 인트로 기타를 지나 만나는 '사계'의 보컬 화음을 들을 때까지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기타와 바보의 첫 앨범은 다른 포크 음반들이 흔히 그렇듯 가사에 더(또는 가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작품이었다. 그걸 놓치면 이들을 놓치는 거였다.
담담하다. 그리고 단단하다. 기타와 바보의 노래는 슬픔도 절망도 절반씩 유예시킨 무덤덤한 독백으로 묘한 전율을 불러 일으킨다. 설산을 등진 양지의 언덕. '하염'이라는 노래에도 나오는 "설경과 사막의 정취"가 스민 저 시리도록 외로운 재킷 사진이 암시하듯 이들의 음악과 노래는 표현, 묘사에서 짙은 문학적 색채를 띠고 있다. 가령 이런 구절들이 그렇다.
"찬란한 고립의 겨울"
"진실의 밀도"
"추락이 자명한"
"한 시절의 탕진이 낳은 물리적인 아픔"
"그 불가능성으로 눈이 내렸네"
"없는 입으로 한 줌 뼈에 입맞추고 싶어요"
일상에선 잘 쓰지 않는, 때론 모호하나 문득 예리한 이 현학적 진술은 최정우와 목정원의 "찬연히 점멸하는" 보컬 화음과 기타 연주를 타고 "세상의 절반은 듣지 못하는 아득한 문체"로서 피어오른다. 이는 긴 세월 이 나라에서 포크라 불린 통기타 음악이 이미 토했거나 남몰래 은닉한 비린 낭만과 정면으로 마주서 "가장 담고 싶던 장면을 놓치기 위해 사진을 찍고, 가장 부르고 싶던 노래를 피하기 위해 노래를 하는"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도 같다.
기타와 바보는 음악이 흐르는 내내 꿈을 꾸다, 꿈에서 깨다 한다. 그 사이 읊조리는 뼈를 때리는 가사 속엔 불안한 환희 같은 게 잠들어 있는데, 거기에선 정태춘과 박은옥의 구체적인 체념도 은근히 느껴지는 식이다. 그러니까 기타와 바보의 음악은 기타와 노래로 삶의 공허를 절여내는 음악이다. 먹먹하고 멍하게, 하지만 또렷한 사색으로. '모든 비는 누군가의 눈물인 것을' 같은 감동적인 제목은 그래서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기타와 바보는 철학자 겸 작곡가, 비평가, 미학자, 기타리스트로 두루 불리는 람혼 최정우와 공연예술이론가인 목정원이 결성한 듀오다. 프랑스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각 새로 산 기타에 '기타(목정원)'와 '바보(최정우)'라는 이름을 붙여 나중에 활동할 때 그 이름을 그대로 쓰자고 했다는데, 결국 약속은 지켜졌다. 지난해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라는 산문집을 낸 목정원은 기타와 바보의 모든 가사를 쓰고, 철학/미학 비평집을 내고 3인조 음악집단 레나타 수이사이드의 멤버로도 활약한 최정우는 기타와 바보의 모든 곡을 만든다. 최정우는 '누더기 넋'이라는 뜻을 가진 람혼(襤魂)이란 애칭을 공공연히 쓰는데 과연 스산하고 허허롭게 흘러가는 자신의 음악과 어딘지 어울리는 이름이다.
언어로 무언가를 쓰는 두 사람이 만나서인지 기타와 바보가 지닌 "노래의 마음"은 분명 문학적이고 철학적이며 때론 과학적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처럼 그것은 "쓸데없는 부분은 일절 없이 다양한 부위가 유효하게 맞물려 있는" 무엇처럼 들린다. 한계령(양희은) 앞에 선 중년들의 악뮤(AKMU)랄까. 번뇌를 벗어던진 곳에서 그것들을 되묻게 하는 집요한 말들이 음악과 함께 병풍처럼 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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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필진
[사진=기타와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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