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을 기록합니다"..종이 조각으로 되살아난 동물들
6번째 대멸종 위기를 알리기 위해 야생동물의 현실 표현해
"멸종은 매순간 진행되고 있어"..유리창 조류 충돌 작품도
디지털 시대, 앞으로 없어질 거란 말을 듣는 종이로 사라져가는 동물을 빚는 사람이 있다.
200~300개의 종이 조각은 수만 번의 가위질 끝에 마침내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새로 재탄생한다. 그러나 부활할 리가 없다. 이 새들은 이미 멸종했거나 자연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멸종위기 동물이기 때문이다.
페이퍼 아티스트 이재혁 작가는 사라진 새 도도, 여행비둘기, 수수께끼찌르레기를 이렇게 기억하고 기록한다. 대멸종을 이겨내고 쥐라기부터 살아온 ‘공룡 조상님’이 지난달 22일 서울 노원구 경춘선숲길 갤러리에 내려앉았다. 노원문화재단에서 마련한 ‘새기기: 새를 기억하기 위한 기록’전에 작품을 전시 중인 이재혁 작가를 지난 9월24일 만났다.
동물 박제를 배우는 이유
그의 작품 30여 점이 전시된 갤러리 안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까치, 흰머리 오목눈이부터 낯선 각종 앵무까지 아름다운 깃털을 뽐내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냥 새의 외양을 모사한 것을 넘어 표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형태가 정교하고 실물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새의 모습을 최대한 실감나게 재현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 종의 조류를 작품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그는 과거 사진, 영상, 표본까지 되는대로 자료를 쓸어 모은다고 했다.
“관찰할 수 있는 조류라면 최대한 직접 보러 가지만 이미 멸종했거나 멸종위기인 종은 어쩔 수 없이 자료를 파고들어야 해요.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에 멸종된 조류가 몇 점 소장되어 있긴 하지만 거의 없거든요. 정말 하루 종일 구글에 파묻혀 지낼 때가 많아요.”
그가 최근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것은 박제다. 국내에도 전문가가 드물어 거의 독학에 가깝지만 기회가 생길 때마다 동물원 표본제작실을 찾아 작업을 참관하며 어깨 너머로 작업을 배우고 있다. 사진과 영상도 참고가 되긴 하지만 “어쨌든 같은 공간 안의 물체가 갖는 힘이 대단하기 때문”이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체를 구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진 않다. 미처 인간의 눈에 띄기 전에 야생동물에 의해서든, 청소에 의해서든 없어져서 그렇지 도심에선 수많은 새들이 투명한 유리창에 부딪혀 사망하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잦은 충돌 지점을 확인하고 사체도 샘플로 수거를 한다.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최대한 자연사에 가깝게 죽은 개체들을 모으려고 하지만, 사실 자연사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멸종에 둔감해지면 안돼요”
‘조류 충돌’은 작가의 최근 작업 주제이기도 하다. 전시실 입구엔 방음벽이나 투명 창에 부딪혀 죽음을 맞고 있는 새들을 표현한 작품 7~8점이 따로 전시된 코너가 마련돼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어디선가 조용한 죽음이 이어진다.’ 전시 설명에 그가 적은 글귀다.
미처 유리를 부수지 못하고 날개를 꺾은 새의 모습은 처참하고 안타까운 한편 아름답기도 했다. “충분히 더 충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러지 않고 있어요. 조류 충돌이라는 현실을 전하면서도 한 번이라도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게 하고 싶거든요.” 죽음을 현실에 가깝게 표현하되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런 태도가 작품 전반에 스며있다. 2018년 작가 생활을 시작하며 자연스레 동물을 작품의 소재로 삼기 시작했다. 처음엔 왜 동물인지 멋진 이유를 갖다 붙이려고 했지만 결국 돌아온 답은 “동물이 좋아서”였단다. “안타까웠어요. 사람들은 멸종이라고 하면 굉장히 먼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매 순간 매 초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그는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보존할 수 있었던 동물들이 불과 100~200년 전에 사라진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멸종에 둔감한 세태를 답답해했다.
동물들의 현실을 알리는 것이 어느 덧 그의 사명이 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동물이 우리 곁을 떠났고, 떠나고 있을까. 작가는 이런 동물들의 ‘구조 신호’를 얼마 전 책으로 펴냈다. 책 <멸종 위기 동물이 인간에게 보내는-편지가 왔어요>는 멸종위기 조류뿐 아니라 돌고래, 거북, 여우, 상어, 호랑이 등 다양한 야생동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시가 새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페이퍼 스컬쳐(종이 조각)인 반면, 책은 페이퍼 레이어드 아트로 103종의 동물을 소개하고 있다.
존재가 죽는 건, 완전히 잊혀질 때
왜 하필 종이였을까. 이 작가는 종이의 물성이 자신의 작업과 들어맞는다고 답했다.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해요. 책이 저를 비록 부자로 만들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저는 이제 불멸을 획득했다.” 책과 종이의 끈질긴 생명력을 말한 것이다. 최초의 종이가 기록을 위해 태어났듯이 그는 사라져가는 동물을 종이로 영원히 기록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전시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물었다. 그는 아이슬란드에 살았던 큰바다쇠오리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값비싸게 팔리던 이 바다새는 1884년 마지막 바다쇠오리가 사냥 당하며 절멸했다. 유럽인들은 이후 남반구를 탐험하며 바다쇠오리와 비슷한 새들을 보고 ‘펭귄’이라 불렀다. 원래 펭귄이라 불리던 바다쇠오리는 이제 속명 ‘펭귀누스’(Pinguinus)로만 기억된다.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때 한 종은 완전히 멸종합니다.” 그가 새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이유다.
글·사진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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