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학용어의 조건] ① "용어에는 실마리가 있어야 한다"

고재원 기자 ,이영애 기자 2022. 10. 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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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세탁세제류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편집자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우리 사회엔 방역과 백신 접종 등과 관련한 의과학 용어들이 홍수처럼 쏟아졌습니다. 정부나 의과학계는 어느 때보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며 정체 불명의 감염병 실체와 대처법 찾기에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의과학 분야 전문 용어가 수도 없이 대중에게 노출됐고 새로운 개념의 방역 용어도 등장했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국어문화원연합회와 함께 3년째 의과학용어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찾는 기획을 진행해왔습니다. 올해는 세대간 격차를 넘고 소외계층도 이해할 수 있는 의과학용어 활성화 방안을 모색합니다.

“용어에는 실마리가 담겨 있어야 한다”

구연산은 시트르산을 통상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약 유기산으로 자연에서는 감귤과 레몬 등에서 주로 발견된다. 구연산은 식품의 감미제나 방향제로 많은 식품에 들어간다. 살균 효과가 있어 베이킹 소다 등 친환경 살균제로도 쓰인다. 실생활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용어다.

하지만 구연산이란 용어는 익숙치 않다. 구연산의 ‘구연’은 레몬과 비슷한 과일인 ‘시트론’을 의미하는 한자어다. 시트론은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과일이다. 구연이란 한자어 역시 낯설다. 용어만 봤을 때 용어의 뜻을 추측하기 힘든 이유다. 최근 구연산 대신 ‘레몬산’이라는 용어가 차용되고 있다. 시큼한 물질이라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2022 쉬운우리말 쓰기 자문위원 윤경식 경희대 의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교수.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지난 9월 20일 동아사이언스가 국어문화원연합회와 진행하는 '쉬운 우리말 쓰기'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 중구 모처에 모인 한글 전문가와 의과학 전문가들은 다수가 납득하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의과학 용어를 활성화하는 데 필요한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지난 2년간 진행한 기획을 공유한 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한 전문가들은 대중에게 통용돼야 하는 의과학용어는 실마리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놨다. 

윤경식 경희대 의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교수(경희의과학연구원장)는 “구연산이라는 용어는 생명공학 분야 기본 단어임에도 잘 와 닿지 않는다”며 “레몬산이라고 하면 접근이 훨씬 쉬워진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용어 순화 작업을 하는 대한생화학분자생물학회 용어위원회에 참여해보니 국내 용어들이 일본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러다 보니 용어의 느낌을 살리지 못했고 이해 못할 용어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 역시 ‘실마리’를 강조했다. 그는 “용어에는 친숙한 실마리를 담아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실마리를 심어 개념을 표현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2022 쉬운우리말 쓰기 자문위원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고재원 기자=jawon1212@donga.com

최근 구연산 혹은 레몬산은 ‘시트르산’이라는 용어로도 불리기 시작했다. 환경부에서는 지난 2020년과 2021년 시트르산으로 살균제를 만드는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며 구연산이나 레몬산 대신 '시트렉 에씨릭'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영어로 써 있는 걸 발음나는대로 쓴 것 같다”며 “학자로서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앞서 전문가들이 지적했듯 ‘용어 선택에 있어 실마리를 담아야 한다’와 같은 기준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대유행에서 등장한 ‘코로나19’란 용어도 이런 지적에 부합한다. 이 교수는 “앞서 유행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을 포함해 코로나19 역시 코로나바이러스 질병”이라며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질병이지만 다르게 이름 지어졌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메르스나 사스로 부르다가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질병인 코로나19는 왜 이렇게 부른지에 대한 기준은 없다”고 덧붙였다.

강창원 KAIST 명예교수도 "사스(SARS)는 '사스'라고 말하지 '사르스'라고 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메르스(MERS)는 '머스'라 하지 않고 '메르스'라 부른다"며 여러 감염병 사례들에서 기준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2022 쉬운우리말 쓰기 자문위원 조영욱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조영욱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는 “공식 의학용어는 코로나19가 아니고 ‘코로나바이러스병’”이라며 “감염병은 순식간에 용어가 생긴다. 의학계에서도 몇십년째 용어 작업을 해오고 있지만 감염병 용어가 특히 어려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의협 의학용어위원회에서는 감염병 의학용어와 관련해 두 달에 한번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용어에 대한 논의를 나누고 용어 1안을 도출한다. 전문가들 사이 반발이 많을 경우 재 논의를 진행하고 없을 경우 1안의 순화된 용어로 바꾸는 식이다. 국어 전문가와 의과학계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용어 정립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의학용어집 제1집은 1977년 출판됐다. 2020년 3월 6판까지 나왔다. 의협 의학용어위원회 홈페이지(http://term.kma.org/search/list.asp)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는 "용어를 고민한다는 것은 대중적 관심이 필요한 일"이라며 "전문가들이 쓰는 전문용어는 어떤 말을 쓰던 상관 없다. 일반 국민이 알아야 하는 용어를 이해하기 쉽도록 순화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재원 기자 ,이영애 기자 jawon1212@donga.com,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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