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디지털 대전환 부작용마저 끌어안을 때 미래 위한 혁신도 가능"

정민정 논설위원 2022. 10. 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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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MZ세대가 주도하는 메타버스, 신대륙 발견에 비견
문명 전환기에 조선 쇄국정책 실패 반복하지 말아야
'따라가기'에서 '선점해야 생존한다'로 발상 전환 요구
창조적 문제 해결형 인재 양성 시급, 교육이 달라져야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디지털 신대륙의 부상을 일시적 거품으로 이해한다면 문명 교체 이후 표준의 선점자가 누리는 과실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서울경제]

인류는 스마트폰을 한 손에 쥔 채 디지털 신세계, 즉 메타버스로 시나브로 넘어오고 있다. 아마존에서 쇼핑하고 TV 대신 유튜브를 보는 것이 익숙한 MZ세대가 주도하는 디지털 대전환은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비견될 만큼 인류 문명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은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문명을 읽는 공학자’로 유명한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명의 거대한 변화에 적응하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150여 년 전 쇄국정책을 편 조선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대전환으로 인한 부작용마저 끌어안을 때 비로소 혁신이 가능하다”며 “기성세대가 살아가는 오늘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 속에 혁신의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류의 삶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인공지능(AI)이나 4차 산업혁명 도래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실질적으로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인식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이런 변화를 실질적이며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재택근무, 비대면 수업, 비대면 진료 등이 보편화됐으며 강제된 디지털화가 새로운 문명의 이점과 불가피성을 부각하는 계기가 됐다.

-2022년을 ‘뉴노멀(새롭게 떠오른 표준)’의 원년으로 규정했는데.

△이미 세상은 디지털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왔다. ‘백투노멀(Back to Normal)’은 일어나지 않는다. 뉴노멀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우리 삶의 표준이 바뀐다는 것인가.

△인류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변화에 적응하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됐다. 조선이 망하고 근대화에서 뒤처지면서 우리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대를 보냈다. 흥선대원군은 쇄국으로 이러한 변화를 막을 수 있다고 오판했지만 일본은 서구의 과학기술과 신문명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앞서나갔다. 150여 년 전 세상의 거대한 변화를 거부해 결국 고통의 역사를 감당해야 했던 조선의 과오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메타버스’를 화두로 많은 강연을 해왔는데.

△‘초월’이라는 의미의 ‘메타(meta)’와 ‘세계’라는 의미의 ‘유니버스(universe)’를 합쳐 만든 단어다. 인류가 살아가는 땅이 디지털 세계와 만나 초월적인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MZ세대가 즐기는 게임처럼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 세계를 가리킨다. 가상의 캐릭터가 코인을 주고받으면서 디지털 아이템을 거래하는 가상의 세상이다. 기성세대에게는 낯선 개념이지만 디지털에 익숙한 MZ세대는 이미 메타버스라는 신대륙에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디지털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상상의 공간을 메타버스라고 칭할 수 있다. 핵심은 메타버스가 미래를 여는 열쇠라는 점이다.

-메타버스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디지털 신대륙의 탄생은 새로운 세계관의 탄생이자 새로운 문명으로의 대전환이다. 디지털 신대륙 문명의 창시자는 누가 뭐래도 애플이다.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마켓에서 누구나 돈을 벌고, 누구나 애플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세계관을 도입했다. 제한된 기업들이 지배했던 시장 생태계를 오픈플랫폼의 생태계로 전환해 권력의 탈중앙화를 이뤄낸 것이다. 디지털 문명은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보는 사회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신문명의 주인공인 MZ세대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가치관이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5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인류가 스마트폰이라는 새 도구를 들고 디지털 신대륙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디지털 대전환을 거품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디지털 신대륙의 부상을 일시적 거품으로 이해한다면 수많은 역사에서 목격했듯이 문명 교체 이후 표준의 선점자가 누리는 과실을 얻을 수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보기술(IT) 산업이 발전하면서 디지털 양극화가 심화한 것처럼 메타버스 시대 역시 미리 준비한 나라·기업과 그렇지 못한 나라·기업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생길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삶을 좌우하는, 즉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시대에는 개인에게 요구되는 경쟁력도 과거와 달라질 텐데.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적은 에너지를 소비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식을 선택해왔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디지털플랫폼을 선택했다면 진화의 역사와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암기에 의존했던 지식은 이제 많은 부분을 검색에 의지하게 됐고 언제 어디서든 지식을 빠르게 흡수해 즉각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책에서 정보를 얻고 학교 교육을 통해 생각의 기반을 만들어온 인류의 뇌가 디지털 신대륙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인류가 스마트폰이라는 새 도구를 들고 디지털 신대륙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타다 금지법’은 모빌리티 혁신을 멈춰 세운 대표적인 사례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민국의 세계관은 2022년에도 2010년의 표준에 머물러 있다. 2010년은 우버가 세계 최초로 차량 공유 서비스를 시작한 해다. 세상은 우버로 이동하고 에어비앤비로 숙박을 해결하는데 우리는 타다마저 멈춰 세웠다. 메타버스·대체불가토큰(NFT)·블록체인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변화에 따른 이점보다는 부작용만 얘기한다. 카카오·네이버 등 플랫폼 기업은 골목 시장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취급된다. 타다 금지법의 대가는 참담했다. 모빌리티 혁신은 요원해졌고 택시 대란까지 빚어지고 있다. 사회 취약 계층을 보호하자는 명분만 내세웠을 뿐 혁신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자신의 돈이라면 어디에 투자할까. 백이면 백 택시 조합이나 골목 상권이 아닌 테슬라나 IT 기업에 투자할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자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혁신을 거부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2030년의 미래는 지금 2022년의 변화와 기준을 바탕으로 준비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10여 년 전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

-메타버스 시대의 기업에 요구되는 리더십은.

△개발도상국 시대에는 선진국 제품이나 서비스를 카피(모방)해 물건을 만들고 비즈니스모델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금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만큼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따라가야 하는 시대가 아니라 먼저 가서 선점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개도국이 아니라 선진국의 입장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처럼 세계 최초 기술로 성공하는 게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를 결합해 좋은 경험을 제공해야 성공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혁신의 리더십이다. 바짝 다가온 메타버스 시대에는 좋은 경험,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 핵심 경쟁력이다. 그런 만큼 창조적인 문제해결형 인재가 절실히 필요하다.

-창조적 문제해결형 인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그런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는데.

△지난 10여 년 동안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바뀌었지만 교육 현장은 달라진 게 전혀 없다. 교육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실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이 과거와 달리 매우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각자의 재능을 살리도록 이끌어주고, 대학에서는 전공을 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창조적 교육과정을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교육은 여전히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데 맞춰져 있다. 대학에 진학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대학 자체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그동안 대학에 대한 투자를 전혀 늘리지 않았다. 10여 년 동안 일관되게 추진된 정책은 등록금 동결 정도였다. 학과 간 융합 교육이나 창조적 수업을 진행하려고 하면 많은 혁신과 변화가 필요한데 투자가 없으니 처음부터 벽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교육 부문의 미스매치는 일자리 문제로 연결되는데.

△거의 모든 산업이 디지털 혁명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당연히 기업들은 디지털 역량을 가진 인재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일자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부가가치 일자리나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디지털 혁명의 영역에서 창출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 현장은 이런 인재를 양성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메타버스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우리는 그동안 디지털 문명의 부작용만 부각시켰을 뿐 디지털 문명이 가져올 혁신과 미래 가치는 간과했다. 디지털 대전환으로 인한 부작용마저 끌어안을 때 비로소 혁신과 새로운 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지금은 인류 문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다. 놓치면 미래는 없다. 디지털 대전환에 따른 각종 부작용은 우리 사회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것들을 조금씩 개선하면서 미래로 나아갈 때 혁신의 역량이 쌓일 것이다. 기성세대가 살아가는 오늘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 어떤 미래를 만들어야 우리 아이들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 속에서 혁신의 동력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He is···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캐나다 워털루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현재 스마트융합디자인연구소장과 창의적설계기술연구소장 등을 맡고 있다. 비즈니스모델 디자인과 공학, 심리학과 공학의 융합 등 학문 간 경계를 뛰어넘는 활동으로 ‘문명을 읽는 공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기업, 정부 기관 등을 대상으로 수많은 강연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인류 문명이 초래할 혁명적 변화와 대응 방안 등을 설파하는 데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최재붕의 메타버스 이야기’ ‘포노사피엔스’ ‘체인지 9’ 등이 있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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