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간 누적된 부패"..3주째 이어지는 이란 시위, 진짜 원인은

김예슬 기자 2022. 10. 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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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美 제재로 경제 악화일로
중산층 몰락..정치권에 희망 걸기도 어려워
히잡 규칙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2살 이란 여성이 '도덕경찰'에 구타 당해 숨진 가운데,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발생했다고 현지 언론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 AFP=뉴스1 ⓒ News1 이서영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이란에서 '히잡 미착용' 혐의로 체포돼 옥중에서 사망한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22) 사건으로 촉발한 시위가 반정부 시위로 격화한 지 3주째.

이번 시위는 단순히 히잡을 둘러싼 여성 인권 문제가 아닌 43년 동안 누적된 부패와 권력 남용과 같은 전체 시스템에 대한 진정한 분노라고 외신들은 평가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던 시위는 사회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는 이슬람 통치 체제의 종식을 요구하는 것으로 빠르게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이란 사업가 모스타파 파자드는 "여성, 기술, 빈곤의 삼각관계가 시위의 원동력"이라며 "젊은이들은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무거운 구속 때문에 삶이 말 그대로 낭비되고 있다고 느낀다"고 WSJ에 전했다.

이란 시민들이 1일 테헤란에서 이란 이슬람혁명의 아버지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1900∼1989)의 대형 초상화가 그려진 입간판 앞을 지나고 있다. 이란은 이슬람혁명 37주년을 맞아 이날부터 열흘 동안 축제를 벌인다. ⓒ AFP=뉴스1 ⓒ News1 최종일 기자

◇반미 정권 집권하며 철권통치…미국의 제재로 경제 '휘청'

1979년 친미 정권이었던 팔레비 왕조를 몰아내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이슬람 혁명이 시작됐다. 이란 최고지도자가 된 호메이니 아래에서 이란은 반(反)미 국가로 돌아섰고, 미국의 제재도 시작됐다.

1981년부터는 여성의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등 이슬람에 기반한 철권 통치가 이어져 오고 있다. 여성의 복장을 단속하는 도덕경찰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현재 모든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나라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두 국가뿐이다.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도 호메이니가 집권하면서다. 전체 수출량에서 석유의 비중이 60%에 달하는 이란은 미국의 제재와 전 세계적인 저유가 현상이 겹치며 휘청이기 시작했다. 이후 2016년 제재가 해제되며 성장률도 10%대로 반등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이란에 대한 제재를 전면 복원했다.

경제 제재 복원과 함께 이란 경제도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이란의 지난 7월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52.5%에 육박했다. 공식적인 실업률은 10%를 상회하지만, 청년 실업률은 40%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21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해 혼잡해진 도로 위 상황 2022.09.21 ⓒ AFP=뉴스1 ⓒ News1 정윤미 기자

◇이란 경제 지탱하던 중산층의 몰락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이란 경제가 그나마 유지된 데는 중산층의 공이 크다. 중산층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을 안정적으로 유지했으며,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이란의 경제 엔진으로 작동했다. 지난 40년 동안 인구의 60%를 차지하던 중산층은 전쟁과 몇 차례의 유가 폭락에도 불구하고 전문직과 사업가들을 배출할 수 있게끔 했다.

그러나 이란 경제를 지탱해오던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2015년 20%였던 저소득층은 3분의 1 이상으로 늘었고, 중산층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중산층의 위기는 석유 생산이 급감한 데 이어 코로나19 여파로 물가가 살인적으로 오르면서 시작됐다. 과거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였던 이란은 현재 하루에 약 25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한다. 1970년 660만 배럴, 지난 2016년 400만 배럴이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이란 복지부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가 국민총소득(GNI)의 31%를, 하위 10%가 국민소득의 2%를 차지한다. 세계은행(WB) 역시 이란이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이스라엘과 같은 이슬람 지역보다 경제적 불평등이 훨씬 크다고 발표한 바 있다.

파샤드 모메니 이슬람인문학연구소장은 ILNA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의 빈곤 규모는 지난 100년 동안 전례 없는 수준"이라며 "국가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테헤란 북부 거리에서 시위에 나선 52세의 주부는 "이번 시위의 뿌리는 경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2년마다 한 번씩 새 차를 살 정도로 여유로웠지만, 이제는 대출 상환을 위해 차와 부동산을 팔았다고 WSJ에 전했다.

이란 핵 합의(JCPOA) 복원 로드맵 마련을 위해 지난 4월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고 있는 회담의 7차 협상이 2021년 12월3일 진행된 모습, ⓒ 로이터=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핵 합의 실패에 희망 없는 정치권

특히 이란의 경제 제재 해제를 약속한 이란 핵 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타결이 좌절되자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한때 이란 중산층은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이란을 이끈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과 같은 개혁주의 성향의 후보들에게 기대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개혁파에 제동을 걸며 정치권에 대한 기대마저 시든 상황이다.

영국 왕립연구소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부국장 사남 바킬은 "이란에는 방출 밸브가 없다"며 "경제, 사회, 정치 모든 방면에서 기회가 없고, 오직 억압의 구름만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테헤란에 있는 알라메 타바타바이 대학의 학생들도 "빈곤, 부패, 폭정.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시위에 동참했다.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지 3주째 접어들며 이란 현지에서는 130명 넘는 시민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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