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無知와 해프닝으로 얼룩진 과방위 국감

변지희 기자 2022. 10. 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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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진행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정감사는 ‘종이 보고서’ 논란으로 시작해 ‘커닝 페이퍼’ 의혹으로 끝났다. 과기부가 의원들에게 종이 보고서 대신 파일로 업무보고 문서를 전달했다는 이유로 개회하자마자 정회하더니, 막판에는 국정감사 주요 쟁점에 대해 답변 지침을 적은 총리실 문건을 과기부도 받았느냐는 의혹으로 다투다가 폐회했다. 이날 국감은 12시간가량 진행되며 밤늦게까지 이어졌는데, 정책과는 상관 없는 다툼으로 시작과 끝을 마무리한 것이다.

이 두 가지 논란은 총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해프닝의 전말은 이랬다. 이날 오전 개회 직후 류광준 과기부 기조실장이 업무보고를 하는 동안, 일부 의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파일을 못찾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과기부가 업무보고를 소홀히 준비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류 실장은 말을 여러 번 멈췄다.

의원들의 각종 변명과 궤변도 이어졌다. “50~60대는 종이 없는 회의가 굉장히 어렵다, 파일로는 종합적인 업무 현황 개관이 안 된다(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파일을 몰라서 내놓으라는 게 아니라, 어느 것이 조금 더 편리하고 익숙하냐는 문제다(윤두현 국민의힘 의원)”, “디지털 시대지만 인간 친화적인 아날로그 감성이 필요하다(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 류 실장은 업무보고를 하다가 중단해야 했고, 20여분간 정회한 뒤 의원들에게 종이 문서가 전달된 후에야 이어서 업무보고를 할 수 있었다.

오후 9시에는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총리실 문건’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정 의원은 이종호 과기부 장관에게 “총리실에서 ‘국정감사 주요 쟁점에 대한 답변 기조’라는 제목의 문서를 정리했다는데 장관도 받았느냐”고 물었다. 상임위별로 국감에서 나올 주요 쟁점에 대해 총리실이 답변 기조를 정리한 문서라는 것이다. 예컨대 ‘망 이용대가 관련 이슈’와 관련해선 답변 기조로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 소송 진행 중, 망 이용계약 제도화를 위한 법안이 발의되어 있음, 향후 국회 입법 논의에 참여하겠음”, “통상 문제로 확대될 우려에 대해서는 담당 부처인 산업부와 소통·협의하여 문제가 없도록 대응하겠음”이라고 적혀 있다.

정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은 이 장관이 총리실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답한 것 아니냐고 몰아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런 문서가 작성되는 건 매해 국정감사마다 통상적으로 진행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총리실 국정감사에서는 의원들이 모든 현안에 대해 질의를 하는데, 총리실은 전문성이 부족한 현안에 대해 각 부처로부터 정리된 내용을 보고받는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총리실이 내부적으로 작성했던 문건이 외부로 유출됐던 것뿐이었다.

이 논란에 대해선 이렇게까지 긴 시간을 들여 다툴 일은 아니었다. 굵직한 현안이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오전 시간은 정책과 관계없는 논쟁으로 시간을 거의 다 날리다시피 했다. 종이 문서 논란도 있었지만 이 장관이 지난 전체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을 두고 여야 간 정무적인 논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국민이 관심 있는 사안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국민은 이번 국감에서 통신사들이 왜 5세대 이동통신(5G) 중간요금제, 듀얼심 요금제를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똑 닮은 것을 내놨는지, 20배 빠른 인터넷인 줄 알았던 28㎓ 5G 정책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언제쯤 통신 품질이 좋고 고객 응대도 잘 되는 알뜰폰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인지, 넷플릭스가 국내 통신사에 망 이용료를 낼 것인지 안 낼 것인지, 그래서 매일 즐겨보는 넷플릭스를 지금 가격과 품질 그대로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런 현안에 대한 논의는 이날 깊이 있게 다뤄지지 못했다. 물론 긴 시간 동안 국감이 진행됐던 만큼 어느 정도 언급은 됐다. 다만 “5G 품질은 나쁜데 요금제는 비싸다”는 지적은 지난해에도, 재작년에도 나왔던 이야기다. “28㎓ 대역 기지국 수가 부족하다”는 것도 누구나 안다. 알뜰폰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는 이날 언급도 안 됐다. 의원들의 해묵은 질문에 대해 이 장관도 제대로 대답을 한 게 없다. 듣다 못한 정청래 과방위원장은 이 장관에게 “국정감사 잘 받는 법에 대해 과외받고 왔느냐. (이 장관은 지금) 모르는 사안에는 ‘잘 살펴보겠다’, 대답하기 곤란할 땐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대답하는데 이렇게 하지 말라. 국정감사 하는 의미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는 24일 과방위 종합국감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날 과연 얼마나 심도 있는 이야기가 나올지 의문이다. 올해는 통신 관련 이슈가 국감 주요 현안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증인으로 통신 3사 대표 대신 각 부문장들이 나오는데 그쳤다. 지난해도 통신 3사 대표들은 국감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올해도 불참한 것이다. 최근에는 고물가 대책으로 5G 중간요금제가 나왔지만 이마저도 비판을 받고 있어 국감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각 부문장들이 얼마나 책임 있는 이야기를 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의미 없는 논쟁 대신 국민 피부에 와닿는 심도 깊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란다. 앞으로 어떻게 정책이 변화하고, 그로 인해 각자의 생활이 어떻게 나아지는지가 국민의 진정한 관심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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