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재난 만큼 무서운 가족 갈등

이한나 2022. 10. 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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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명 개인전 11월 20일까지
사비나 미술관 회화 68점 펼쳐
20년간 부분과 전체 관계성 탐구
아름다운 풍경과 재난의 엇갈림
세대갈등 표현으로 새로운 시도
홍순명 작가 [사진 제공 = 사비나미술관]
32년생 어머니와 59년생 아들의 사진이 겹쳤다. 온 가족이 창경궁에 놀러 간 흑백 사진과 작가가 유학한 파리의 미술학교 컬러 사진이 파편처럼 교묘하게 겹쳤다. 어린 작가 자리에는 성인이 된 작가가 대신 서 있다. 다리 발파로 폭죽이 터지는 장면까지 합쳐져 한눈에 어떤 그림인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홍순명,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2020) [사진 제공 = 사비나미술관]
대규모 재난 연작을 펼쳐왔던 홍순명(63) 작가가 파편 같은 실루엣을 담은 새로운 연작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 19점을 처음 선보였다.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 -재난, 가족'에서 압도적인 크기의 재난 회화 등 총 69점을 펼쳤다.

작가는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보도사진을 소재로 애용해 왔으나 코로나19를 계기로 작업에 집중할 시간이 늘자 그토록 거부해왔던 개인의 서사를 화폭에 담았다. 충돌하는 세상의 재난처럼 세대 갈등에 평생 시달려온 본인만의 '살풀이'를 펼친 것이다.

홍순명,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2021) [사진 제공 = 사비나미술관]
"대한민국의 너무 빠른 변화의 부작용으로 생긴 세대 간의 갈등은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머니를 근대화의 상징, 나를 현대화의 상징으로 두고 그사이에 벌어진 대한민국의 많은 사건을 접목해 작업했는데 결과적으로 서로 너무나 다른 가치관으로 누더기처럼 되어버린 상황을 연출해 봤다."

작가는 중심과 주변의 고정된 역학 관계를 전복시킬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독창적 미학 개념인 '사이드 스케이프'에 천착해 왔다. 지난 20년간 이분법적 대립 논리, 양자택일적 사고, 위계와 차별의 경계를 해체하고 중심이 아닌 주변의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새롭게 인식하려는 시도다. 전혀 눈길을 끌지 못한 단역에 불과한 존재를 선택해 주역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홍순명 개인전 전경 [사진 제공 = 사비나미술관]
미술관 2층에 펼쳐진 가로 10m가 넘는 대형 작품 '풍경=아이러니'(2022)가 대표적이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역동적인 구름은 고전 명화의 한장면 같이 장엄하다. 하지만 아래 노란 불줄기를 추적하면 9·11테러 당시 보도사진에서 세계무역센터(WTC) 폭발 장면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그 윗부분 연기만 그렸다. 60×50㎝의 캔버스 100~120여개를 재조합한 이미지다. 화면을 작게 나눠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제거하고 색이나 붓 터치 등 순수한 회화적 감각만으로 그림을 그리려고 애썼다. 압도적 크기와 엄청난 힘으로 숭고의 체험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도 담겼다.
홍순명 개인전 전경 [사진 제공 = 사비나미술관]
홍순명 개인전 전경 [사진 제공 = 사비나미술관]
태풍이 덮친 해운대 바다 모습을 일부러 노랗게 표현해 파도가 구름 같다거나, 윤슬이 가득한 붉은 바다는 세월호 사건과 결부 지어지며 죽음의 기억에 섬뜩해진다.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인 재난 장면이 거대하고 광활한 자연 풍경 그 자체로서의 아름다움도 뿜어내니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3층에서는 가족 간 갈등과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탐색한 연작들은 보는 재미가 더해졌다. 전문가 수준으로 서예를 익혔던 부친의 글씨 연습장을 신혼 때 어머니 사진과 겹쳐 그리거나 작가와 할머니를 소나무와 겹친 표현은 흥미롭다. 부모님과 자신의 어린 시절이 담긴 이미지 위에 마스킹테이프를 붙이고 그 위에 청년 또는 중년이 된 자신의 이미지를 덧그린 뒤 떼어내는 이중, 삼중 작업을 통해 부모 세대와 자신 간 접점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화면에 흑백과 컬러가 섞이고, 기억의 '흉터'처럼 낯선 이미지가 드러난다. 4층은 서서히 사라지는 작은 얼음조각 등 '빙산' 연작을 펼쳤다. 한순간 존재하다 쉽게 사라지는 작은 것들에 대한 연민과 무력한 존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생성과 소멸의 회화적 표현이다.

전시는 11월 20일까지.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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