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윤석열차' 논란 관련 문화예술계 공동 성명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문화체육관광부는 블랙리스트 범죄를 잊었는가?
윤석열 정부는 반문화적이고, 반민주적인 검열을 중단하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개최한 제25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이 전시되었다. ‘윤석열차‘라는 이 작품은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카툰 부문 금상(경기도지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4일 언론보도설명을 통해 “부천시 소속 재단법인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만화영상진흥원)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하여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나기 때문에 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또한 “비록 전국학생만화공모전을 주최한 만화영상진흥원이 부천시 소속 재단법인이긴 하나 국민의 세금인 정부 예산 102억 원이 지원되고 있고 이 공모전의 대상(大賞)은 문체부 장관상으로 수여되고 있다”며 “이 행사의 후원명칭 사용승인 시, 행사와 관련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 승인사항 취소’가 가능함을 함께 고지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 예술인들은 문체부가 말한 이러한 엄중 경고와 협박성 조치가 낯설지 않다. 국정농단 당시, 정부를 비판하거나 정치적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가가 문화행정 조직을 총동원하여 예술인과 예술작품을 검열과 지원 배제로 탄압한 블랙리스트 사건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블랙리스트 재발방지를 목적으로 제정한 ‘예술인권리보장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9월 25일부터 시행되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은 그동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권리침해로 인한 피해 예술인에 대한 구제절차를 제도화시켰다. 특히,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들이 스스로 법의 제안과정부터 시작해서 입안하고 논의하는 과정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법을 주관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이하 문체부) 는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 발표 10일도 지나지 않아 직접 예비 예술인의 꿈을 짓밟고 표현의 자유 권리를 침해하였다. 문체부는 지금까지 무엇을 한 것인가? 블랙리스트 사건을 주도한 문체부는 대국민 앞에 사과하며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 않았는가? 문체부는 정권이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언제든 인격체를 바꿀 수 있는 아수라 백작인가?
그간 윤석열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가치는 ‘자유’였다. 취임사에서 21번 자유를 언급하고, UN 연설에서 35번 자유를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얼굴을 바꿔 문화예술인의 ‘표현의 자유‘를 부정한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이번 공모전의 주제는 ’자유‘였으며, 전시에 참여한 다른 작품들도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문체부는 왜 유독 이 작품에 대해서만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이라고 표현했을까? 윤석열 대통령 부부에 대한 과잉 충성심에서 비롯된 검열이자 권력 남용은 아닌가?
지난 20년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정부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가졌다는 이유로 지원사업에서 배제되도록 지시한 것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후적인 제한으로서 표현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 위헌으로 판결한 바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민주주의와 문화정책의 근간을 뒤흔든 국가범죄로 앞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신종 예술탄압의 사례로 국제 보고서에 등재되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왜 이러한 ‘블랙리스트’ 사건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되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사후 대응 과정과 연결된다. 당시 블랙리스트 사건은 정부의 주도하에 수천 명의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단체를 감시·검열하고, 배제 차별하기 위하여 수많은 공공기관이 총동원된 국가범죄였다. 하지만, 블랙리스트에 가담했던 수많은 이들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고, 블랙리스트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과 제도개선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며, 국가는 블랙리스트 국가범죄를 마치 몇몇 사람들의 일탈과 부정행위 정도로 정리해버렸다.
결국 우리사회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라는 국가범죄 행위를 목도하고도, 충분한 반성과 성찰을 하지 못했고 어떠한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블랙리스트에 가담했던 수많은 공직자들은 면죄부를 받은 채, 여전히 문화예술행정 요직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반면, 블랙리스트 사건에 맞서 싸운 우리 문화예술인들은 지난 5년간 한 번도 이 싸움을 멈춘 적이 없다. 광화문에서 청와대 앞에서 법원 앞에서 우리는 기자회견을 했으며, 눈을 맞으며, 비를 맞으며, 피켓을 들고 싸웠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블랙리스트’의 시대에 살고 있다.
블랙리스트로 인한 피해자들은 지금도 고통받고 있으며, 블랙리스트로 인한 새로운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블랙리스트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블랙리스트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변화와 혁신에 대한 국가 책임과 노력도 미흡한 상황이다. 이미 헌법재판소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위헌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법원 역시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국가폭력행위를 모두 인정하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부의 반성과 성찰, 재발 방지 노력일 텐데, 그러한 노력 의지는 희미해진 가운데 또다시 블랙리스트를 연상시키는 사건이 터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블랙리스트 범죄의 악몽을 벌써 잊은 것인가?
우리 문화예술인들은 ‘윤석열차’ 검열 사건이 국가범죄 블랙리스트가 재발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문체부에 엄중 경고 한다. 문체부는 보도 설명자료와 카드뉴스까지 내며 ‘윤석열차’ 검열 정당화를 멈추고 피해 학생에게 사과하라!
윤석열 정부는 반민주적인 검열을 멈추고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약속하라!
2022년 10월 5일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문화연대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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