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외국인 육아 도우미 도입하자"는 서울시장이 무시한 현실[플랫]

플랫팀 기자 입력 2022. 10. 5. 10:41 수정 2022. 10. 1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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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낮은 출생률 극복에 외국인 가사 도우미가 도움이 될까.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제안하면서 다시 부상한 이 제도를 놓고 설왕설래다. 아이 돌봄의 인력 부족을 해결할 접근법이라는 의견도 있는 반면 법적으로 국내 적용엔 무리가 있고, 저렴한 서비스 가격에만 집중해 가사노동 환경에 대한 국제 문제를 간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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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시에 따르면 오 시장이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공식 제안한 외국인 육아 도우미 제도에 대해 서울연구원 등이 외국 사례 검토, 현안 파악 등에 들어갔다. 오 시장은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한국에서 월 200만~300만원이 드는 육아 도우미가 싱가포르는 외국인 가사 도우미로 월 38만~76만원 수준”이라며 “양육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라고 밝혔다.

경제 성장과 산업구조 변화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싱가포르와 홍콩 등에서는 1970년대부터 외국인 가사 인력 도입을 시작했고, 필리핀 등 이웃 동남아의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됐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 싱가포르에는 26만명, 홍콩은 39만명에 이르는 외국인 가사 노동자가 체류했다.

2014년 홍콩의 HSBC빌딩 앞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이들 국가에서 아이를 둔 맞벌이 가정은 도우미와 함께 사는 것이 보편적이다. 한국 돈으로 월 100만원을 밑도는 급여로 입주해 가사·육아를 전담으로 맡기 때문이다. 이같은 ‘값싼 노동력’은 가사 노동자들을 고용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최저임금이 없거나(싱가포르), 별도의 최저임금(홍콩)을 적용하는 등 내국인과 다른 근무 환경을 용인하면서 가능해졌다.

문제는 저임금 가사노동자들이 사회 보호망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는 점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세계 7650만명의 가사노동자 가운데 17%가 이주노동자다. 또 90% 이상이 비공식적으로 고용되며, 70%는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제됐다. 이로인해 통상 가사노동자들은 근로자 평균 임금의 56% 수준 밖에 벌지 못한다.

입주 도우미의 경우 명확한 근무 시간·업무 영역 없이 일하는 탓에 부당한 처우를 받거나 고용주의 물리적·언어적 폭력, 성폭력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다. 여권을 뺏기고, ‘가족 문화’라며 원하지 않는 규칙을 강요받기도 한다. 도우미의 임신을 금지하는 조항(싱가포르) 등이 인권 침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세계 최저 출산율 대책 필요한 현실
취업비자·최저임금 등 한국 현실과 상충

제도의 한계에도 외국인 도우미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의 합계출산율을 거론한다. 서울의 경우 2021년 0.63까지 떨어졌다. 현재 외국인의 가사 서비스업 취업은 불가능하며, 동포에게만 허용돼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동포 인력도 줄어 사람을 구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가사 도우미는 입주의 경우 월 250만~300만원, 출퇴근은 월 15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

이에 시장을 개방해 더 낮은 비용으로 더 쉽게 도우미를 구할 수 있도록 해야 육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월 50만~70만원 수준으로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는 것은 어렵다고 분석한다.

이민정책연구원은 2017년 비슷한 논의가 이뤄졌을 당시 발간한 보고서 ‘싱가포르 정부의 이주가사노동자 도입과 관리방식’에서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은 최저임금의 적용 여부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지급을 지향하는 정책 방향과 맞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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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고용허가제에 ‘가사’를 추가한다고 해도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법은 내국인과 동일하게 적용해 임금과 근무 조건을 산정해야 한다. 특히 올 6월부터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돼 승인 기관을 통해 고용된 가사 서비스 종사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도 의무화됐다. ‘저임금’ 가사 도우미를 용인하려면 법을 바꿔야 하는 셈이다.

2014년 홍콩에서 2명의 인도네시아인 가사노동자가 학대를 당한 일로 고용주가 호송되자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가사노동에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다른 일자리로 이탈하는 등 외국인 노동자 관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규용 선임연구위원은 “외국인 노동력이 필요하기는 하나 ‘가사’에 적용하려면 나라마다 환경, (고용 등)기준이 달라 (법적·법률적으로) 검토할 게 많다”고 설명했다.

급여 외에 제도 자체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 등도 고려해야 한다. 이민연구원은 “저렴한 노동력 활용을 위해 정부와 고용주 개인이 사실상 치르는 관리비용이 상당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싱가포르의 경우 외국인 고용 가정에 일정 세금을 부과한다. 가사 도우미의 건강보험, 병원비, 6개월마다 받는 검진비, 입국 교육비, 2년마다 본국 귀환 때 드는 항공료도 고용주 부담이다. 최근 노동권에 대한 국제 사회의 기준이 높아지면서 관행적으로 무시했던 고용주의 책임은 강화되는 추세다.

여기에 싱가포르 등은 도우미 공간이 포함된 주택 설계가 보편적이라서 숙소 제공에 따로 돈이 들지 않는 특징도 있다.

고용노동부도 이같은 복잡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8월 저임금 외국 가사 인력 도입을 촉구하는 언론 보도에 대해 “내국인 중·고령 여성 일자리 잠식과 근로 조건 저하, 저임금으로 인한 외국 인력 이탈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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