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테니스의 흥행 무드, '위닝샷'으로 만들자[박준용의 인앤아웃]

박준용 스포츠 에이전트(라이언컴퍼니)·전 테니스 전문기자 2022. 10. 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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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ATP 투어 코리아오픈 결승전이 열린 올림픽공원 센터코트 전경. 코리아오픈 조직위원회 제공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하나은행 코리아오픈과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유진투자증권 코리아오픈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올해에는 지난 1996년 KAL컵 이후 26년 만에 국내에서 ATP 투어까지 열리며 올림픽공원 테니스 코트는 그 어느 때도 볼 수 없었던 ‘가을 테니스 축제’ 열기로 뜨거웠다.

최근 테니스 열풍이 고스란히 코리아오픈 흥행으로 이어졌다. 주말마다 센터코트는 만원관중을 기록했고, 평일에도 많은 젊은 테니스 팬들이 경기장을 찾으면서 달라진 문화를 실감케 했다. 출전 선수 면면도 화려했다. 그랜드슬램 우승자인 옐레나 오스타펜코(라트비아), 에마 라두카누(영국)를 비롯해 올해 US오픈 남자단식 준우승자 캐스퍼 루드(노르웨이), 데니스 샤포발로프(캐나다) 등 톱랭커들이 대거 방한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테니스 팬들은 수준높은 샷 하나하나에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대회 기간에 방한한 앨리슨 리 ATP 부회장은 “한국 관중들은 환상적이다. 결승까지 5만 여명이 입장한다고 들었는데, 아시아에서 열리는 ATP 250시리즈 중 최고 기록”이라며 놀라워했다.

테니스계는 모처럼 찾아온 테니스 열기에 들떠 있다. 그러나 그 속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WTA투어 코리아오픈에서 본선에 진출한 한국 여자 선수는 4명이지만, 자력으로 출전한 선수는 장수정(대구시청)이 유일하다. 한국 선수의 최고 성적은 한나래(부천시청)의 2회전이다. ATP 투어 코리아오픈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식 본선에 4명의 한국 선수가 이름을 올렸지만, 3명은 1회전에서 탈락했다. 한국 테니스의 에이스인 권순우(당진시청)도 2회전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한국 테니스가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과 큰 격차가 있음을 재확인했다. 파워에 정교함이 더해진 샷을 받는 것도 벅찼다. 무엇보다 현대 테니스에서 강조되는 세컨서브에서 크게 뒤처진 점이 두드러졌다. 일반적으로 두 번째 서브는 더블폴트로 실점하지 않기 위해 플레이스먼트에 초점을 맞춰 안정적으로 넣는다. 그러나 톱랭커들은 수많은 연습을 통해 세컨서브도 퍼스트서브 못지 않은 파워 또는 스핀으로 때리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더 과감하게 공격하는 리턴게임 트렌드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ATP 투어 코리아오픈 우승자 니시오카(왼쪽)와 준우승자 샤포발로프. 연합뉴스



사실 테니스는 체격적인 조건에서 열세인 아시아 선수들에게 불리하다. 그렇다고 아시아 선수들이 세계 테니스 무대에서 늘 성공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리나(중국)와 니시코리 게이(일본)가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다. 리나는 지난 2011년 프랑스오픈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 정상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고 2014년 호주오픈에서 다시 한번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했다. 니시코리는 2014년 US오픈에서 아시아 남자 선수 최초로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ATP투어 코리아오픈 우승자인 니시오카 요시히토(일본)도 키 170㎝에 불과한 단신 선수다.

한국 테니스도 한때 이덕희, 이형택 등의 투어 우승자를 배출했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 테니스는 오히려 세계적인 수준과는 멀어져 있다. 현재 세계무대에서 활약 중인 선수는 권순우 외에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꾸준히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과 상황이 다르다.

주니어 시절만 보면 우리도 세계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들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프로 데뷔 후에는 대부분 조용히 사라진다. 세계의 높은 벽을 넘으려 하기 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국내에서 안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권순우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권순우는 주니어 시절 평범한 선수였지만 끊임없이 세계 무대에서 도전하면서 세계 50위권까지 올라섰다. 더 나은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계 무대에 도전하려는 선수의 자세와 의지가 중요하다.

김장준.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이에 앞서 협회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과 훈련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테니스 강국인 미국, 캐나다 등은 협회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 지난 2012년 당시 조동길 대한테니스협회장은 침체기에 빠진 한국 테니스를 살리기 위해 세계적 육성 전문가 더그 맥커디(미국)를 초청해 주니어 육성팀을 발족했는데, 그때 선수들이 지금의 권순우, 홍성찬 등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현재 주니어 육성 시스템은 전무하다.

수준 높은 지도자도 필요성도 강조된다. 나무 라켓을 사용한 과거와 달리 현대 테니스에서는 베이스라이너가 대세다. 선수들은 더 빨라졌고, 베이스라인에서 전략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음에도 우리 지도자의 수준은 제자리 걸음 중이다.

한국 테니스는 ‘희망’과 마주하고 있다. 얼마 전 윔블던 U14 대회에서 초대 챔피언에 오른 조세혁과 김장준 등 뛰어난 주니어 선수들도 등장하고 있다.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인 만큼, 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는 지원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시점이다.

높아지는 테니스 인기가 언젠가 톱10 플레이어 배출이라는 ‘위닝샷’으로 이어질 날을 기대해본다.

박준용 스포츠 에이전트(라이언컴퍼니)·전 테니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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