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M] 인천 오피스텔 폭행사건 전말..가만히 있어야 정당방위?

이유경 입력 2022. 10. 5. 10:34 수정 2022. 10. 5.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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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인천의 한 오피스텔에서 일어났습니다. 지난달 29일 새벽이었습니다. 두 남성과 한 여성 간에 시비가 붙었습니다. 여성이 택배를 정리하던 과정에서 일으킨 소음 문제가 발단이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비가 붙은 뒤 몸싸움이 시작됐는데, 남성이 금새 기선을 제압하면서 일방적 구타로 이어졌습니다. 남성은 상대 여성의 안면 등을 수 차례 가격했고 결국 여성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습니다. 주저앉은 뒤에도 남성은 폭행을 계속했고, 다른 일행도 주저앉은 상태인 여성의 머리를 오피스텔 벽에 3차례 강하게 충돌시키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종료됐을 때 여성은 바닥에 말 그대로 '뻗어있는' 상태였습니다. 여성은 '뇌경막하 출혈'을 비롯한 중상을 입었습니다.

기자의 문제의식은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심하게 때렸는데, 일방적으로 맞다시피 한 피해자도 폭행 혐의로 입건됐다는 점이었습니다. CCTV 영상에 담긴 실제상황을 통해 경찰 판단에 문제가 없었는지, 형식논리적이진 않았는지 짚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가해자들이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이었다 해도 동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도 이후 뜻밖의 반향이 일더니 성별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사건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인물의 글이 온라인상에서 올라오더니, 사실과 다른 내용이 퍼졌습니다. 일부 언론도 검증 없이 가해자들의 주장을 일방 재생산하면서 잘못된 사실관계가 확산됐습니다. 사건과 무관한 젠더 이슈가 부각됐고, 엉뚱하게도 피해자가 공격을 받는 상황이 됐습니다.

왜 피의자?

이 사건의 제보자는 피해자의 아버지였습니다. "딸이 남성 두 명에게 맞아 심하게 다쳤는데, 경찰이 쌍방 폭행 피의자라고 한다. 경찰을 믿을 수가 없고 무서워서 조사도 못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단 전화부터 걸었습니다. CCTV 영상이 있다는 말에 '보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직접 만나서 CCTV 영상을 보여줄 순 있지만, 자신에게 문제가 생길까봐 제공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전에 담당 경찰이 아버지에게 "CCTV 영상을 확보하면 수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담당 경찰서는 인천 중부경찰서였습니다. 제보자를 만나기에 앞서 중부서 형사과에 사건 내용을 질의했습니다. 처음엔 그런 사건을 알지 못한다고 했던 형사과 관계자는 한참 뒤 다시 기자에게 전화를 해왔습니다. 남성 두 명이 '상해' 혐의로 입건됐고, 여성이 '폭행' 혐의로 입건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그러면서 경찰은 “보도할 내용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성이 먼저 폭력을 했고, 그러다 보니 남자들도 술을 마신 상태에서 화가 나서 때린 거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경찰의 설명을 듣고 '취재를 접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최종 판단을 내리기 전 CCTV 영상은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보자인 아버지와 약속을 잡고 만나서 CCTV를 봤습니다.

그런데 영상 속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습은 경찰 설명과 크게 달랐습니다. 싸움은 전혀 대등하지 않았고 일방적인 구타와 다름없었습니다.

시간 순으로 정리한 '오피스텔 폭행 사건'

방송뉴스는 방송심의 규정을 따라야 합니다. 잔인한 폭행 영상은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없고, 모자이크나 홀드(일시정지) 같은 편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폭행 또는 학대 영상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용 기사라고 해도 폭행 영상을 날것 그대로 공개하는 것은 심의규정에 저촉됩니다.

다만 지난 일요일(2일) 뉴스데스크 보도에서는 사건에 대한 왜곡을 막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 폭행 장면을 살렸습니다. 화면 상단에 표시된 CCTV 시간에도 드러나있듯 '커트 편집' 역시 하지 않았습니다.

CCTV를 통해 드러난 영상 속 모습을 최대한 정리해보겠습니다.

1. 가해자들의 귀가 - 새벽 1시 36분 54초(이하 '새벽' 생략): 가해자들이 CCTV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시각입니다. 외출복 차림인 가해자들은 함께 떠들며, 껑충껑충 뛰면서 집으로 향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당시 택배를 정리하고 있던 피해자에게 손을 흔들기도 합니다. 집에 완전히 들어간 시각은 1시 37분 21초였습니다.

2. 반복적인 문 열고 닫기 - 1시 38분 05초 : 집에 들어간 지 40여 초 지난 뒤였습니다. 가해 남성은 문을 열고 밖을 잠시 살피더니 다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 1시 40분 11초 : 가해자들의 문이 다시 열리고 닫힙니다. - 1시 42분 06초 : 또 문이 열리더니 이번엔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속옷 차림으로 나와 여성을 살피다가 다시 들어갑니다. - 1시 42분 49초, 58초 : 다시 문이 열리더니 이번엔 상의를 탈의한 남성이 밖으로 고개를 내밉니다.

3. 몸싸움 시작 - 1시 44분 14초 :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집 밖으로 나오고, 다른 남성이 흰옷을 입으며 나옵니다. 흰옷을 입은 남성이 여성을 향해 걸어가자, 여성이 택배를 벽으로 집어던집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향해 다가갑니다. - 1시 44분 27초 : 여성이 손을 올리는 모습과, 남성이 여성을 밀어내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곧바로 몸싸움이 시작됩니다. 남성은 주로 손을, 여성은 손과 다리를 날리며 기선제압을 시도합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은 팔을 벌려 CCTV를 가리는 듯한 행동을 취합니다.

4. 일방적인 구타 - 1시 44분 36초 : 몸싸움 시작 8~9초 만에 남성이 뻗은 주먹이 여성의 안면을 가격했습니다. 여성을 벽 쪽으로 밀치고, 추가 타격이 이어지자 여성이 중심을 잃었습니다. 남성이 본격적으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하면서 싸움 양상은 일방적인 구타로 바뀌었습니다. 충격을 입은 여성은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았습니다. 그럼에도 구타는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 1시 44분 50초 : CCTV를 향해 팔을 벌리던 검은 옷 남성이 여성을 때리는 흰옷 남성에게 다가가 등을 살짝 때립니다. 그만하라는 의미의, 말리려는 뜻이었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구타가 계속되자 가만히 둡니다. - 1시 45분 26초 : 지켜만 보던 검은 옷 남성도 폭행에 가세합니다. 검은 옷 남성이 여성의 머리를 붙잡고, 흰옷을 입은 남성이 여성의 등을 주먹으로 칩니다. 그리고 검은 옷 남성은 여성의 머리를 잡아 벽에 세 차례 충돌시킵니다. 결국 여성은 실신하듯 쓰러졌습니다.

5. 가해자들의 경찰 신고 - 1시 47분 12초 : 흰옷을 입은 남성이 어딘가 전화를 합니다. 경찰은 이 시각 즈음 남성의 신고가 접수됐다고 확인했습니다. 경찰은 당시 남성이 "사람이 택배 물건을 벽에 던지고 있다. 시끄럽다고 항의하면서 시비가 걸렸는데, 취객이 행패한다. 친구가 행패자와 대치 중이다"는 내용으로 신고했다고 전했습니다. - 1시 58분 02초 : 출동한 경찰이 폭행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피해자는 이때도 누워 있었습니다. 당시 출동 경찰은 폭행 사건 발생보고서에 "여성이 양쪽 이마에 혹이 난 채로 복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말도 잘 못하고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다"고 적었습니다. - 2시 13분 56초 : 경찰의 요청으로 119 구급대가 출동해 피해자를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병원에서 피해자는 뇌출혈 등으로 전치 6주 판정을 받았습니다.

"가만히 있어야 정당방위"?

경찰의 당초 설명과 CCTV의 기록 사이엔 큰 괴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형사과 관계자에게 CCTV 내용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제서야 이 관계자는 CCTV 영상을 직접 보진 못했다고 시인했습니다. 상해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 측 진술과 담당 형사의 보고 내용만 받았다는 것입니다.

피해자는 현재까지 경찰 조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했다 최근에서야 퇴원했고, 당시 상황을 떠올리길 무척 어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선 "당시 죽는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수 차례 힘들어하는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게다가 ‘피의자 조사’를 받으라는 경찰 측 통보에 당황해 변호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기자는 CCTV 영상을 직접 보고 다시 판단해달라고 경찰에 요청했습니다. 기자가 남성이 밀치면서 폭행이 시작된 것 아니냐고 묻자, 경찰 관계자는 “여성이 삿대질을 하니까 남성이 확 밀어버린 것”이라며 “여성의 정당방위가 성립되려면 여성이 가만히 있었어야 한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그게 경찰의 공식 입장이냐고 재차 묻자 경찰은 “피해자 조사를 마친 뒤, CCTV 내용 등을 분석해 여성의 정당방위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알려왔습니다.

결국 피해자가 이사

사건 현장을 찾아가봤습니다. 피해자 집과 가해자 집 사이 거리는 약 10m 정도였습니다. 피해자가 자신의 집으로 가려면 엘리베이터 위치 때문에 가해자 집 앞을 지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폭행을 당했던 장소도, 가해자가 사는 곳도 피해자 거주지와 너무나 가까웠습니다.

취재진이 해당 오피스텔을 찾아갔을 당시에도 가해자는 집 안에 있었습니다. 가해자에게 직접 폭행 이유를 물었습니다. “할 말이 없다”던 남성은 “왜 남성 두 명이서 여성 한 명을 때린 것이냐”고 물었더니 “여자인 줄 몰랐다”고 답했습니다. 택배를 정리하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때린 것이냐고 물었지만, 남성은 “할 말이 없다”는 얘길 반복했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피해자 보호 조치의 가장 기본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피해자에 대해 신변보호 조치를 하거나 남성에 대한 체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그럴 사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신변보호조치에 대해선 피해자가 신청을 하지 않아서 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피해자는 뇌출혈로 3주간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뒤 닷새간 외부 숙소를 전전하다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가해자들의 주장

비교적 쟁점이 명확한 이 사건을 두고 논란이 확대된 건 가해 남성들이 인터넷에 남긴 글로부터였습니다.

자신을 '사건 당사자'라고 밝힌 이가(영상 속 검은 옷을 입은 남성) "폭행은 잘못이지만 여성이 먼저 빌미를 제공했고 여성도 분명히 친구를 때렸다"고 주장한 겁니다.

"자신은 친구와 술을 마시다 12시쯤 잠이 들었는데, 새벽 1시쯤 복도에서 계속 나는 소리 등에 잠에서 깨기를 반복했다"고 했습니다.

이어 "친구가 짜증내며 밖을 살피고 옆집 사람이 택배를 요란하게 정리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다시 잠을 청했는데 그 후로도 소리는 8분간 이어졌고 계속된 소음에 참지 못했다"고 적었습니다.

폭행 상황에 대해선 "여성이 먼저 욕을 하며 걸어왔고, 친구가 다가서자 여성이 '먼저' 제 친구를 밀쳤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폭행에 가담한 적이 없고, 여성이 제 옷가지를 잡고 늘어지자 어떻게든 떼어내려 애쓰는 장면이 제가 바닥에 쓰러진 여성을 벽에 박으며 폭행하는 장면으로 왜곡됐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한 팩트체크는 위에 정리한 영상과 시간대별 상황만 봐도 가능할 겁니다. CCTV 영상을 보면 가해 남성들이 외출복 차림으로 껑충껑충 뛰며 귀가한 시각이 1시 37분이었습니다. 이후 처음 문이 열린 게 1시 40분이었고, 시비가 붙기 시작한 건 4분 뒤인 1시 44분이었습니다.

'잠을 청했는데 소리가 8분간 이어졌다'는 주장은 기억의 오차범위 내로 볼 수 있다 하더라도, '12시쯤 잠이 들었다가 새벽 1시쯤에 깼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전혀 갖지 못합니다. 애초에 글쓴이의 주장대로 남성들은 잠을 자고 있는데 여성의 택배 정리 소리가 시끄러워서 깬 상황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또 영상을 보면 흰옷의 남성이 먼저 여성을 밀어내는 모습이 잡혔고, 검은 옷의 남성은 분명히 3차례에 걸쳐 실신 가까운 상태인 여성의 머리를 벽에 강하게 충돌시키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그런데도 '폭행에 가담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건 다소 뻔뻔하게까지 느껴집니다.

피해자는 뇌출혈과 타박상 등 전치 6주의 중상을 입었고 의식까지 잃기도 했습니다. 병원에 3주나 입원해야 했고 지금도 신경외과와 정형외과, 정신과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기성 언론의 확대 재생산‥문제없나?

이 사건에서 조선일보, 뉴스1 등 기성 언론에서도 가해 남성들의 댓글을 검증없이 인용해 보도한 것은 안타까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논란이 있다면 기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기자는 가해자의 주장이 사실인지 검증해야 합니다. 그 기자들이 당장 CCTV를 입수하거나 피해자를 인터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보도의 당사자인 제게 문의를 해올 순 있었을 겁니다.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사를 쓰면서 그런 문의를 해온 기자는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 해당 보도들은 사실관계와 다른 정보를 확산시켰고, 불필요한 젠더 갈등을 부추긴 측면도 적지 않습니다.

아울러 MBC의 추가 보도로 가해자들의 허위 주장이 다수 확인된 상황인데, 이 같이 달라진 상황을 후속 보도하지도 않고 있는 점 또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유경260@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414087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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