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환경 트레일러닝] 지리산을 달렸다, 지리산을 더 사랑하게 됐다

박준섭(트레일러너, 세이브더 운영진) 2022. 10. 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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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트레일러너가 벌이는 '세이브더' 환경 운동
두 세 번째 세이브 더 지리 행사에 참가한 트레일러너들

박준섭, 염주호 두 명의 트레일러너가 의기투합해 2020년 10월 '세이브더Save The(@savethe_officail)'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세이브더는 매년 국내 곳곳에서 자연보호 캠페인을 벌인다. 그때마다 세이브더 뒤에 지역명 혹은 지명을 붙이는데, 지난 7월 16일부터 17일까지 경남 하동, 지리산 형제봉 일대에서 진행한 '세이브 더 지리'는 지리산과 관련된 이벤트다. 세이브더를 운영 중인 박준섭씨를 통해 행사 내용을 전한다. - 편집자 주

마침내 두 번째 "세이브 더 지리"를 소리내어 외칠 수 있게 됐다. '세이브더'는 2년 전, 장거리 하이커, 클린 하이커, 트레일 러너 등 18명이 모여 지리산둘레길을 달리고 걸으면서 시작됐다. 지금 세이브더는 산 달리기(트레일러닝)를 중심으로 환경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산을 달리는 것뿐이었다. 달리면서 환경 문제를 주변에 알리는 환경활동가가 되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일을 계획했다. 지리산을 좀 더 느린 시각으로 보고 싶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지리산은 어떤 모습일까?' 겉만 훑는 게 아니라 지리산이 갖고 있는 온갖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지리산에 더 깊숙이 들어가 섬세하게 포착한 내용을 전하고 싶었다.

하동 지리산 형제봉 아래 베이스캠프에 모인 참가자들

그래서 사람들이 다수가 좋다고 해서 따라가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산을 생각하고 아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길 바랐다. 지리산은 보통 '어머니의 산'이라고 불린다. 그런 면에서 지리산은 소중한 건 당연하고 지켜야 할 대상인 것이다. 지리산이 파헤쳐지고 망가지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순 없었다. 2년 전 그때처럼 지리산을 지키자는 작은 마음을 모아서 산악열차 개발 문제를 알리고 싶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해보자고 했다.

참가자들이 본격 달리기에 앞서 하동 형제봉 아래 '베이스캠프'에서 이번 이벤트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맨 왼쪽이 주최자 중 한 사람인 박준섭씨다.

달리면서 지리산을 들여다보자

세이브 더 지리는 언뜻 보면 그저 달리거나 걷는 모임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의도는 그것보다 더 깊다. 이를테면 '순수하게 달리는 것'이 목표다. 경쟁이나 기록을 배제하고 지리산 속을 달리면서 스치는 바람과 공기, 보이는 풍경 등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참가자들이 느낀다면 일단 목표달성이었다.

7월 중순 22명의 트레일러너들이 경남 하동 형제봉 아래 작은 마을에 모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지리산 풍경을 이들에게 보여 줘야 했다. 그래서 이곳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해 새벽과 오후에는 달리고 밤에는 쉬기로 했다. 코스는 산악열차가 놓이기로 예정된 형제봉 근처였다. 이 코스는 오르막이 길지만 중간에 활공장이 있고, 마지막엔 형제봉이 버티고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길이다.

모인 친구들의 성향은 제각각이었다. 달리기가 좋은 사람, 자연을 바라보는 걸 즐기는 사람,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 등.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트레일러너라는 것. 우리의 작은 발걸음이 큰 울림이 될 수 있도록 천천히 달릴 준비를 했다.

형제봉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 형제봉 코스는 길이 가파르지만 중간에 활공장이 있다. 지리산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세이브 더 지리를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을 준 배혜원(지리산 게더링 대표,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대책위 사무국장)은 오래 전부터 지리산 형제봉 아래에 살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면서 환경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눈은 맑다. 그 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긴장감과 불안감이 없는 그의 모습은 어릴 적 많이 봤던 만화 속 주인공 같다. 배혜원은 우리에게 공간만 빌려준 것이 아니라 생명력 넘치는 음식도 제공했다. 그의 어머니가 준비한 것으로 우리에게 큰 힘이 됐다. 그런 그가 없었다면 세이브 더 지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을의 다른 환경활동가에 따르면 하동에서 산악열차 개발을 밀어붙였던 이전 군수는 지방선거에서 떨어져 물러났다. 군수가 바뀌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하동의 산악열차 개발은 남원으로 옮겨졌다. 국내의 산악열차 기술 연구진들은 기술을 수출하기 위한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어떻게든 산악열차를 지리산에서 시범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일부 하동 사람들은 산업이 남원으로 넘어가 아쉬워하는데, 남원에서의 산악열차 개발도 반대하며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마을 주민들을 통해 지리산에서 일어나는 환경 문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산을 달리면서 직접 보고 느껴보기로 했다. 먼저 오후의 지리산을 달리기로 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지리산의 모든 풍경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다. 구름이 더해진 하늘은 그림 같았다. 우리가 달리는 길은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이런 풍경을 가진 곳에 열차가 들어선다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형제봉 아래 활공장. 산악열차는 이 활공장 근처를 지날 예정이었다. 지금 산악열차 사업은 남원으로 옮겨졌다.

지리산과의 '합일'

모두 가파른 오르막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곧 활공장에서 마주한 풍경에 힘들었던 순간을 싹 잊은 듯했다. 지리산은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장관을 펼쳐보였다. '어떻게 이 산을 망가트릴 수 있을까?' 산이 갖고 있는 것들, 산이 사람에게 주는 온갖 좋은 것들을 확실히 알고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천국을 본 듯 모두의 표정은 편안했고 행복해 보였다. 마음속에 지리산의 에너지를 가득 담고 산에서 내려왔다.

우리를 기다린 건 배혜원의 어머니가 정성을 듬뿍 담아 만든 음식들이었다. 도시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이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혜원처럼 여유롭고 마음이 따뜻했던 어머니는 길을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땅의 힘을 알고,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 있는 것들에 충분히 고마워하고 있다. 열차가 개발되어서 관광지로 변한다면 땅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 지역이 가진 고유한 문화도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혜원씨의 어머니가 참가자들을 위해 차린 음식들. 모두 지리산에서 난 농작물로 만들었다

우리는 새벽의 지리산을 바라보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났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한번 달릴 준비를 했다. 어두컴컴했고 빛나는 달만이 세상을 비추었다. 도시에선 할 수 없었던 새벽 달리기였고, 머릿속으로 거대한 일출의 모습을 상상했다. 다시 한번 숨 막히는 오르막길을 올랐다. 전날 오후엔 볼 수 없었고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 살아났다. 모든 것이 또 새로웠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어둠은 서서히 사라지고 따뜻한 기운이 발끝을 따라 가슴까지 올라왔다.

마침내 형제봉에 다다랐을 때 자욱했던 안개가 걷혔다. 그리곤 해가 떠올랐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해방감을 느꼈다. 자유로웠다. 비로소 진짜 '나'와 마주했다. 진짜 나는 지리산과 함께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 거대한 숨결 안에서 경직됐던 마음이 풀어졌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세이브더는 참가자 본인이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마음을 가져가길 원한다.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아야만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 테니깐. 어쩌면 육체는 작은 지구일 수도 있어서 보이지 않게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보고 느끼는 자연이 건강해야만 우리도 건강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지리산 일출. 산악열차가 들어서면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점점 끝을 향해 갔다. 오직 달리고 자고 먹고를 반복했다. 그러는 중에 지리산을 처음보다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형제봉을 세 번 달렸고, 네 번을 달린 사람도 있었다. 가능하다면 조금 더 머물면서 계속해서 형제봉을 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헤어지기 전에 작은 방에 모여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지, 함께 달리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아주 늦었지만, 각자의 삶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우리의 달리기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달리기가 아니었다. 자신을 위한 달리기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자연을 위해서 달렸다. 지리산을 위한 달리기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을 가졌지만, 지리산에서 느꼈던 감정과 기억은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슴에 깊게 새겼다.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지리산을 지켜내야 한다는 걸. 그렇게 두 번째 세이브 더 지리를 외치며 우리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다시 길 위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산악열차는 만들면 손해, 지리산 가만히 내버려둬야"

박준섭은 트레일러너인 동시에 환경활동가다. 제주도와 지리산을 대상으로 한 세이브더 행사를 운영하는 주축이다. 그에게서 지리산에 산악열차가 생겼을 때 벌어질 일에 관해 들었다.

지리산 산악열차 건립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환경파괴다. 지리산은 여러 동식물의 서식지다.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지정된 반달가슴곰, 하늘다람쥐, 담비, 삵 등이 살고 있다. 개발이 진행되면 공사 과정에서 온통 파헤쳐질 것이다. 완공 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지금보다 더 훼손될 수 있다. 지금은 개발지가 남원으로 옮겨졌지만 하동군과 지리산 형제봉이 대상이었을 때 하동군은 산림휴양관광진흥법을 제정해 산지 활용 규제를 완화하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전국의 산에 산악열차와 비슷한 개발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껏 우리가 경험하고 누려온 멋진 지리산 자연환경을 그대로 다음 세대가 이어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산악열차 건립 찬성에 대한 반론이 있을까?

"지금 남원에서 추진 중인 산악열차는 '친환경 전기열차'다. 앞에 친환경만 들어가고 하동의 경우와 똑같다. 개발에 따른 환경훼손과 오염은 그대로일 것이다. 그리고 전라북도에서 작성한 자료를 보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지수는 0.0679%에 불과하다. 산악열차가 만들어져도 이용자는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며, 코로나 같은 유사 재난 상황이 발생해 인근 관광 사업이 타격을 받으면 산악열차는 적자 더미에 올라앉을 가능성이 크다. 만들어져도 손해인 셈이다."

세이브더 지리를 통해 어떤 성과를 얻었나?

"첫 번째 행사 땐 800명의 서명을 받았다. 450만 원 넘는 후원금이 조성됐고.

이 중 300만 원 이상을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에 기부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세이브 더 프렌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그동안 지역을 대상으로 환경보호운동을 했다면 다음에는 야생화, 철새, 연어 등 동식물을 관찰하면서 이들의 소중함을 전파할 생각이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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