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 아인슈타인도 설명 못한 양자현상, 실험으로 증명하다

정현석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2022. 10. 5.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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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얽힌 상태의 입자를 조사하고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 연 점을 인정받았다. 양자 컴퓨터나 양자 암호화 통신 등 양자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기술들의 기반이 됐다는 평가다. 노벨위원회 제공

2022년 노벨 물리학상은 알랭 아스페(75) 프랑스 에콜폴리텍 교수와 존 클라우저(80) 미국 J.F 클라우저 협회 창립자, 안톤 차일링거(77)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얽힌 광자들을 이용한 실험으로 벨의 부등식 위배를 확증하고 양자정보과학을 개척한 업적으로 수상자로 선정됐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의미로 짚고 넘어가고 싶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앙자역학이 가져다 준 세계관의 변혁이다. 이번 수상은 고전적 세계관이 잠들어 있는 관에 못을 박는 의미를 가진다. 서로 떨어져 있는 입자들 사이의 양자 얽힘은 아인슈타인조차 ‘유령같은 원거리 상호작용’이라는 표현으로 불만을 제기할 정도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상이었다. 1935년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이 국소적(local)이고 실재론적(realistic)인 고전적 세계관과 충돌한다는 사실을 통찰해낼 수 있었으나 고전적인 세계관을 버릴 수는 없었다.

고전적 세계관과 양자역학적 세계관 사이의 충돌에 대한 논의를 실험적 검증의 영역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결정적인 돌파를 가져다준 것은 약 30년 지난 1964년에 영국 물리학자 존 벨이 제안한 부등식이다. 양자 얽힘을 이용하면 벨이 고안한 부등식을 깨뜨릴 수 있는데, 이는 국소적 실재론에 근거한 어떤 고전적 이론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함을 의미한다.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데는 클라우저와 아스페를 포함한 여러 과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들은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이용해 얽힌 광자쌍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벨의 부등식이 위배된다는 사실을 보이기 시작했다. 고전적 세계관 붕괴의 시작이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가 4일 2022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알랭 아스페 프랑스 파리 사클레대 교수 겸 에콜폴리테크 교수, 존 클라우저 미국 존 클라우저 협회 창립자, 안톤 차일링거 오스트리아 빈대 교수. AP/연합뉴스 제공

그러나 클라우저와 아스페 등에 의해 1970년대와 1980년대까지 수행된 실험들은 몇 가지 간과할 수 없는 허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불완전한 측정 장치가 자주 광자들을 놓치는 문제 때문에 실험 결과를 고전적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말의 허점을 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초기의 실험을 보완하기 위한 기술적 발전은 이후 꾸준하고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벨이 부등식을 제안한 후 약 50년이 지난 2015년에 와서야 로널드 핸슨 델프트공대 교수 등 네덜란드의 과학자들에 의해 허점들이 충분히 보완된 것으로 인정된 벨 부등식의 위배 실험이 이루어졌으며, 오스트리아의 차일링거와 미국의 사에우 남 등에 의해 더욱 완전한 실험들이 즉시 뒤따라 발표됐다. 이는 고전적 세계관과의 공식적인 결별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으며, 노벨상은 관례를 따라 초기의 빛나는 업적들을 찾아갔다.

두 번째는 양자정보과학의 부흥이다. 양자 얽힘을 이용하여 벨의 부등식을 깨뜨리는 양자역학의 근본적 검증을 수행하는 것을 넘어서, 이를 제어하고 이용하는 기술들이 특히 지난 세기 말부터 많은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발전해왔다. 그중 대표적 인물인 안톤 차일링거는 얽힌 광자쌍을 이용해 여러 흥미로운 실험들을 개척했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양자 텔레포테이션(공간이동) 실험일 것이다. 차일링거는 1993년 베넷 등이 제안한 텔레포테이션 이론을 실험실에서 광자들의 얽힘을 이용하여 1997년에 최초로 구현했다. 이어서 두 개의 양자 얽힘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얽히지 않았던 광자들을 얽히게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켜 장거리 양자 얽힘의 구현과 이를 이용한 장거리 양자 통신의 초석을 놓았다. 또한 두 개의 광자를 넘어서 여러 개의 광자를 얽히게 하는 기술을 개척해 양자 얽힘의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러한 업적들은 광자가 아닌 다른 물리계를 다루는 분야들에도 영감을 주고 파급효과를 가져왔으며, 많은 과학자들이 양자 컴퓨터와 양자 통신, 양자 시뮬레이션 등의 이론을 실험실로 이끌어내 양자정보과학의 부흥기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CERN에서 입자가속기를 연구하던 양자이론물리학자 존 벨은 1964년 안식년을 맞아 EPR 논문을 연구하다 ‘벨의 정리’를 발견했다. 1982년  CERN의 실험실에서.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제공

세 번째 의미는 존 벨의 업적이 재조명될 필요성이다. 생존해 있다면 94세일 그는 1990년에 작고했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은 벨의 업적에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다. 에르빈 슈뢰딩거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이 양자역학의 이론적 틀을 만들어주었다면, 양자역학 이론의 궁극적 함의가 무엇인지를 알려준 가장 큰 스승은 벨이다.

막스 보른이 양자역학의 해석에 대한 빛을 던져 주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의문점들이 남아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대한 혁명적 전환을 가져다 줬다면, 과연 양자역학이 우리가 세계를 보는 관점과 관련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양자역학을 대체할 고전적 세계관에 근거한 이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벨이 제안한 간단하면서도 놀라운 부등식이 출현하기까지 이 모든 것은 그렇게 분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제안한 부등식은 인류 지성사의 거대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이, 대중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물리학자의 것이지만 노벨상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지는, 존 벨의 업적에 대해서 재조명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정현석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서울대 제공

[정현석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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