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내게 해주시던 "Great!".. 영원한 멘토, 당신이야말로 최고

기자 2022. 10. 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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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조안리(가운데) 사장과 함께 찍은 사진. 오른쪽은 한비야 교수의 남편인 네덜란드 출신 구호 전문가 안토니우스 반 쥬드판 씨. 필자 제공

■ 그립습니다 - 조안리(1945∼2022)

조안리 사장님과 나의 인연은 1990년, 홍보회사 사장님과 신입사원으로 시작됐다. 입사 첫날, 지나가는 말처럼 “점심 한번 사주세요”라고 했는데, 며칠 후 그는 진짜 점심을 사주셨다. 그날 우리는 각자 매주 산에 간다는 걸 알았고 그 주말, 첫 산행을 시작으로 전국의 산을 같이 다니는 산 친구가 됐다.

‘Great!’ 지난 33년간 조안리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일할 때는 물론이고 개인사를 의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회사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떠난다고 할 때도 ‘Great!’, 6년간 여행 후 구호 NGO에서 일 할거라고 할 때도 ‘Great!’. 59세에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첫 반응은 언제나 Great였다. “Great요? 다들 좋은 직장 그만두고 여행 갔다 와서는 뭐 먹고 살 거냐고 하던데….” 이 말에 그분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하는 지레짐작이지. 먹고 사는 게 걱정되면 나랑 만날 때 평생 점심값은 내가 낼 게!”

이 약속을 올 6월 2일 77세 생일 축하연 및 출판기념회 때, 마지막 점심을 사주면서 성실히 지키셨고, 100일 후인 지난 9월 15일, 하늘의 별이 되셨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날 잔치는 조안리의 ‘살아 있을 때 한 장례식’이었다. 남미 안데스 산맥의 원주민 케추아족 노인들은 스스로 살 만큼 살았다, 혹은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감이 들면 있는 돈을 털어 큰 잔치를 벌인단다. 그 잔치에 좋아하는 사람, 신세 진 사람들, 사이가 나빴던 사람들까지 초대해서 사랑한다, 고마웠다, 또는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상복 대신 예쁜 옷을 입고 울음 대신 웃음으로 모두 한바탕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살아 있는 장례식’. 조안리와의 마지막 점심은 그런 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로스앤젤레스(LA)에서 부고가 날아들었을 때, 놀라고 슬프긴 했지만 마음이 무겁거나 가슴이 미어지지는 않았다. 10년 넘게 신장투석을 하면서 면역력 저하로 수시로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상태라 중환자실에서 고통스럽게 가셨으면 어쩌나 했는데, 정말 다행히 추석 명절에 가족들과 즐겁게 저녁 식사하고 며칠 후 자택에서 편안하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사람들은 조안리를 사랑과 일 둘 다 성공한 사람, 국제 비즈니스계의 퍼스트 레이디, 베스트셀러 작가, 약자들의 조용한 후원자, 신실한 천주교 신자, 대단한 스타일리스트, 수많은 ‘최초의 여성’ 타이틀 등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들이 늘 감탄하며 닮고 싶은 건 그분의 강한 멘털일 거다. 지난 30여 년간, 나는 그분이 흔들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좋은 일에는 담담했고 어려운 일 앞에서는 당당했다. 23세에 49세 신부님과 결혼, 수십 년간 눈부신 국제 비즈니스와 사회 활동을 하면서 받은 세상의 과도한 관심을 그분은 놀랍도록 의연하게 온몸으로 겪어냈다.

투병 중에도 몸은 쇠약해졌지만, 눈빛은 더욱 빛났고 전보다 훨씬 많이 웃었다. 건강상태를 물어보면 담담하게 설명할 뿐 “힘들다, 견디기 어렵다”는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힘들고 어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고통을 은총의 다른 형태로 받아들이겠다는 초인적인 노력과 신앙 덕분이었으리라.

어느 인터뷰에서 조안리는 이렇게 고백했다. 투석 전후로 3년간은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억울해서 견딜 수 없을 때마다 “하느님,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라고 혼자 울며 기도했다고.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기도가 “하느님, 왜 저라고 아니겠습니까?”로 바뀌더라고.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고, 감사하는 마음도 돌아왔다고.

조안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 문자를 보내면 곧장 답장이 올 것만 같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무슨 일로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길래 “고맙긴요, 당신과 나 사이에 ㅎㅎㅎ. 앞으로도 뭐든지 부탁하세요”라고 답했더니 바로 Great!라는 이모티콘이 돌아왔다. 내게 보내는 마지막 Great였다.

나의 영원한 멘토 조안리 사장님, 당신이야말로 Great, 최고 중의 최고였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늘 기억하겠습니다.

한비야 이화여대 초빙교수(국제구호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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