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신도리코 아산공장

윤평호 기자 2022. 10. 5. 07: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현대식 3층 건물로서 1층 점포, 2·3층은 공장임. 1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건물이면서도 환기장치가 하나도 없으며 더구나 휴식시간인 오후 1시부터 2시까지에도 햇빛을 받을 장소가 없음."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제 몸에 불을 붙이고 산화한 전태일 열사가 생전 평화시장 피복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촉구하며 1970년 노동청에 보내느라 작성한 진정서 초안의 일부다.

민현식도 본인 작품 중 최고로 꼽는 아산공장은 '대한민국 50년사에 남을 20세기 걸작 건축물 20선'에 공장 건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현대식 3층 건물로서 1층 점포, 2·3층은 공장임. 1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건물이면서도 환기장치가 하나도 없으며 더구나 휴식시간인 오후 1시부터 2시까지에도 햇빛을 받을 장소가 없음."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제 몸에 불을 붙이고 산화한 전태일 열사가 생전 평화시장 피복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촉구하며 1970년 노동청에 보내느라 작성한 진정서 초안의 일부다. 당시 평화시장의 작업장 근로환경은 참혹했다. 악취와 먼지가 넘쳐나도 환기시설은 전무했다.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작업장은 조명도 어두워 한낮에도 어두컴컴했다. 온전히 서서 허리 한번 펼 수 없는 낮은 높이의 다락방 작업장이 수두룩했다.

경제발전이 단순히 누군가 부의 덩치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삶의 고양이라면 공장의 현실도 나아져야 한다. 그리고 나아진 곳도 있다. 2010년 4월 한 회사의 사보에 벚꽃이 도열해 활짝 핀 공장 전경과 더불어 이런 글이 실렸다. "아산공장 입구부터 펼쳐진 벚꽃이 만개한 길을 따라 걷노라면 이곳이 일터임을 잊게 된다. 두 개의 육면체가 비틀어 포개진 고객안내실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태양빛을 읽는 나침반이 되고, 날렵한 유선형의 회백색 건물은 이제 막 항해를 시작하려는 유람선이 된다. 아산공장의 4월은 분홍빛 바다가 넘실대는 한 폭의 풍경화다."

이런 상찬을 받은 곳은 아산시 배방읍의 신도리코 아산공장이다. 일 하는 사람들에게 공장은 제2의 집이다. 기업가의 안목과 건축가의 철학이 화합하면 공장은 노동력과 임금으로 등치되는 삭막한 장소가 아니라 집만큼이나 때로는 집보다 더 멋진 공간이 된다. 신도리코 아산공장은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이자 건축사사무소 기오헌의 대표인 건축가 민현식이 설계했다. 급경사로 이뤄진 지형의 높이 차는 오히려 창조적 건축 아이디어로 승화해 신도리코 아산공장은 자연에 순응하면서도 사람을 위한 건축이 독보적이다.

민현식도 본인 작품 중 최고로 꼽는 아산공장은 '대한민국 50년사에 남을 20세기 걸작 건축물 20선'에 공장 건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어쩌면 그때가 아산공장의 '화양연화'는 아니었을까. 산업여건 변화 속에 아산공장은 매각돼 도시개발로 건물 전체가 헐릴 처지다. 20세기 걸작 건축물인 아산공장의 일부라도 남겨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새로운 쓰임을 부여할 순 없을까? 도시는 새로움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