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 수위 끌어올린 北..이번에는 日 머리 위로 IRBM 넘겼다

박수찬 2022. 10. 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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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화성-12형 1발 추정"
비행거리 4500여km 관측
韓·美, 10시간 만에 맞대응
공군 합동훈련 대북 경고
북한이 4일 오전 일본 열도 너머로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했다. 북한은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7차 핵실험과 같은 추가 도발을 벌일 것으로 우려된다. 군은 북한이 최단기간 내 SLBM 시험발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한·미 군 당국은 북한 미사일 발사 10시간 만에 F-15K 4대와 F-16 4대를 투입, 서해 직도사격장에 합동직격탄(JDAM)을 투하하는 등 대북 경고메시지를 발신했다.
북한이 4일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합참)가 발표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역 대합실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뉴스를 보고 있는 시민들. 연합뉴스
◆5년 만에 일본 열도 넘은 북 미사일… 괌기지 타격

합동참모본부는 4일 오전 7시23분 북한 자강도 전천군 무평리에서 발사돼 일본 상공을 통과한 IRBM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비행거리는 4500여㎞, 고도는 970여㎞, 속도는 마하 17로 탐지됐다. 미 전략자산 발진기지인 괌을 타격할 수 있는 거리다. 일본 정부는 북한 미사일이 일본 도호쿠(東北)지방의 아오모리(靑森)현 상공을 통과해 7시44분 동쪽 3200㎞ 해상 배타적경제수역(EEZ) 바깥쪽에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지나친 것은 2017년 이후 5년 만이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김성한 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이번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 방안을 점검했다. 이날 NSC 회의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이번 도발이 유엔의 보편적 원칙과 규범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한·미·일을 포함한 역내외 안보 협력을 더욱 강화시킬 뿐”이라며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강화 및 한·미·일 안보 협력을 높이기 위한 협의를 지시했다.
김성한 안보실장은 이날 오전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각각 전화통화를 하면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평가하고 대응 방안을 협의했다고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이 전했다. 이 부대변인은 “한·미, 한·미·일 간 긴밀한 공조를 통해 단호히 대응하는 한편 다양한 대북억제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미 국방장관도 긴급 전화통화를 하고 북한의 IRBM 도발 등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미 공군 E-3G 공중조기경보기는 한반도 남부 상공에서 대북 감시활동을 펼치는 게 포착됐다.

◆최대사거리 비행한 IRBM… 북 ICBM 완성 노리나

북한이 이날 발사한 IRBM은 화성-12형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2017년 5월 처음으로 발사장면을 공개한 화성-12형은 지난 1월까지 수차례 발사됐다. 하지만 이날처럼 4500㎞를 날아간 것은 처음이다. 2017년 9월 태평양에 낙하한 화성-12형의 비행거리(3700㎞)를 넘어선 수준이다. 군 당국은 북한이 이번에 최대사거리로 쏜 것으로 보고 있다. 고각발사 대신 정상각도(30~45도) 발사 방식을 적용했다는 의미다.
정상각도로 미사일을 쏘면 고각발사보다 더 오랜 시간 비행을 한다. 이는 중장거리 미사일 재진입체(RV) 기술을 점검할 기회를 제공한다. 핵탄두를 탑재하는 재진입체 기술은 북한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다. 재진입체는 대기권에 돌입할 때, 고열과 고압에 의해 표면 등이 깎인다. 이를 균일하고 적절한 수준으로 깎이도록 하지 않으면 탄두가 폭발한다. 이 기술은 국제적으로 제3국 이전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북한이 재진입체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려 하는 이유다.

기술 개발과 검증을 위해선 미사일 실사격이 필요하다. 북한이 IRBM 최대사거리 발사를 통해 재진입체와 탄두, 유도장치가 오랜 시간 고온·고압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핵탄두 탑재 탄도미사일이 실전에서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도 커진다. 이를 토대로 ICBM 재진입체 기술의 완성도를 높일 수도 있다. 이는 미 본토를 겨눈 북한 핵위협이 실질적 의미를 갖는 것을 뜻한다. 미국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셈이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북한이 쏜 IRBM) 재진입체가 정상적인 대기권 재진입에 성공했다면, 북한은 IRBM과 ICBM의 성공에 가까워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급속한 위협 확장… ICBM·핵실험 조기 감행 가능성

북한은 앞서 2017년에도 미사일 발사를 거듭하며 미국에 대한 위협수위를 끌어올렸다. 당시에는 단거리-준중거리-중거리-ICBM을 쏘면서 긴장 수준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이번에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여러 차례 쏜 뒤 곧바로 일본을 넘기는 IRBM 발사 카드를 꺼내는 ‘충격요법’을 썼다. 미사일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과시하면서 긴장 수위를 급격히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F-15K 합동직격탄 투하 북한이 4일 오전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1발을 일본 열도 너머 태평양 쪽으로 시험발사한 가운데 한국 공군 소속 F-15K가 이날 오후 서해 직도사격장으로 출격해 가상표적에 공대지 합동직격탄(JDAM) 2발을 투하하고 있다. 한·미 군 당국은 이날 북한의 IRBM 발사 10시간 만에 F-15K·F-16 4대씩을 투입해 합동직격탄을 투하하는 정밀폭격 훈련을 실시했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이와 관련해 북한이 SLBM을 쏜 뒤 ICBM 시험발사나 7차 핵실험을 빠르게 진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방부는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북한은 핵실험 가능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신형 액체추진 ICBM과 SLBM 기술 완성을 위한 시험발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속도전을 통해 핵·미사일 능력을 최대한 고도화하고 국면 전환을 모색할 수 있다”며 “그 끝에는 7차 핵실험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이르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는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끝난 뒤인 이달 말쯤 7차 핵실험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유관 각 측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방향을 견지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피차 우려를 균형 있게 해결하길 희망한다”며 북한 핵실험 용인 가능성을 내비쳤다. 또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인 ‘비욘드 패럴렐’(Beyond Parallel·분단을 넘어)은 3일(현지시간) 풍계리 핵실험장 위성사진(지난달 19∼29일) 분석 결과 최근 복구된 3번 갱도에 이어 4번 갱도에서도 건설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美 전문가 “北 SRBM 실전배치 단계”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이 시험 단계를 넘어 실전 배치 단계에 진입했고, 미사일의 정확도를 높이면서 한국 내 군사시설을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1년 1월 조선중앙통신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노동당 8차대회를 기념하는 열병식 모습을 보도하며 공개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북한판 이스칸데르'의 개량형. 연합뉴스
제프리 루이스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제임스 마틴 비확산센터 국장은 3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에 북한이 최근 일주일 새 다양한 장소와 시간대에서 단거리 미사일을 쏜 것은 이미 실전 배치 단계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루이스 국장은 “중요한 것은 북한이 밤에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나서면, 이는 더 이상 미사일 시험이 아니라 미사일을 사용할 군부대들의 훈련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이미 해당 단거리 미사일들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이러한 발사들은 미사일 시험이라기보다는 군사 훈련이나 연습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편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위협에 대비해 동해에 미군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 국방연구센터 브렌트 새들러 해전·첨단기술 선임연구원은 이날 공개한 보고서에서 “동해에서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면 극복할 수 없는 국내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며 “동해 위기에 대한 체계적 인식과 적절한 대응 계획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만해협에서의 중국의 위협 증가 등을 강조하며 “현재 동해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 병력만으로는 임무에 적합하지 않다”면서 “동해에 미군 주둔을 늘리고 남서부의 억제력 약화를 피하기 위해 추가 함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미지와 함께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속보를 전하는 일본 도쿄 시내의 대형 스크린 아래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도쿄=AFP연합뉴스
◆“지하로 대피하라”… 日 ‘발칵’

일본은 4일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5년 만에 머리 위를 지나 태평양에 낙하하자 충격에 빠졌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통과한 것은 이번이 7번째다.

일본 정부는 이날 오전 7시23분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감지한 직후인 7시27분, 29분 두 차례에 걸쳐 궤도상에 있는 홋카이도(北海道), 도호쿠(東北) 지방의 아오모리(靑森)현 지역 주민 등에게 전국순시경보시스템(J-ALERT)을 통해 “건물 안에 있거나 지하로 대피하라”는 피난 지시를 내렸다. 전국순시경보시스템은 방재, 국민보호와 관련된 정보를 인공위성을 통해 수 초 안에 지방자치단체에 전달하는 체계로 일본의 모든 지자체가 도입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안전 확보를 위해 등굣길 학생들이 대피하거나, 교통 운행이 일시 중단됐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주일미군 기지가 있는 아오모리현 미사와(三澤)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등교 중 피난 지시에 따라 인근 골목길로 대피했다.
4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보 겐(神保謙) 게이오(慶應)대 교수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경우에 따라서는 미군의 전방 전개 거점인 괌을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내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탄도미사일의 비행거리는 4600㎞로, 명백히 괌(북한과의 거리 3500㎞)에 대한 공격능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사히신문은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에 일본 견제 목적도 있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지난달 30일 일본도 가담하는 형태로 한·미·일이 대북 잠수함 작전을 가정한 공동훈련을 5년 만에 실시한 것에 대한 강한 견제로 보인다”며 북한이 핵실험을 다시 하면 일본으로서는 더욱 큰 우려 사안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한 것을 계기로 소위 반격능력(적기지공격능력) 보유 등 일본 정부의 방위력 강화 정책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반격능력은 원거리 타격을 가능하게 해 미사일 등을 통한 공격을 억제하겠다는 개념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는)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이라며 “반격능력을 포함해 (일본의 방위력 강화를 위한)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찬·홍주형·이우중 기자, 도쿄·워싱턴·베이징=강구열·박영준·이귀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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