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권영길 "내 아버지는 빨치산…생전에 존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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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1세인 권영길은 투병 중이다.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빨치산 활동을 하다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주변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다 7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병에 걸렸다.
생활 중에도 마음에 맞는 기자들끼리 독서회를 만들어 사회과학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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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난치질환 투병…"나의 오만과 교만이 병 됐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 올해 81세인 권영길은 투병 중이다. 희귀성 난치질환을 앓고 있으며 설암 수술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사단법인 '평화철도와 나아지는 살림살이' 이사장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언론노동조합연맹 초대위원장, 민주노총 초대위원장, 민주노동당 초대 대표를 지냈다. 17·18대 국회의원으로도 일했다. 1997년, 2002년,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로 출마했으나 떨어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빨치산 활동을 하다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주변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 진보정당을 통합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했으며 통합된 진보정당은 강령에 사회주의 지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 건강 상태는 어떤가.
▲ 2015년에 온몸의 피부에 물집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에 걸렸다. 지리산에 들어가 요양도 했는데, 지금은 80%가량 회복됐다. 합병증으로 설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다.
나는 병들기 전에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데 건강 하나는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노동운동, 진보 정치운동을 하면서 밤새우는 날이 많았고 술자리도 자주 갖게 됐는데, 10여 명의 사람과 일일이 술잔을 주고받으면서도 다음날 가장 활기차게 일했다. 선후배들은 나를 철인이라고 했다. 기자 생활을 할 때도 '술로는 권영길을 못 이긴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대주가'였다. 그러다 7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병에 걸렸다. 나의 오만과 교만이 병으로 이어진 것이다.
-- 아침 기상 시간은.
▲ 저녁 약속이 없으면 오후 9시 전에 잠들고 오전 4시 10분쯤 일어난다. 기상 후에는 세수하고 그날의 일정을 점검한 뒤 1시간가량 독서를 하거나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체크한다. 오전 5시 30분부터 1시간가량 스트레칭을 한 다음 집 부근 산에서 걷기 운동을 한다. 집에 돌아오면 오전 8시 30분 정도 된다.
-- 삶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 나에게 주어진 삶을 그날그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요즘은 산길을 걸으며 윤동주의 '서시'를 읊는데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란 가난하고 탄압받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 어릴 때 가정형편은 어떠했나.
▲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나 1945년 해방과 함께 고향인 산청으로 돌아와 10세까지 살았다. 전쟁이 일어난 다음 해에 부산에 살던 작은아버지가 장손인 나를 공부시켜야 한다면서 데려가 공부시켰다. 고향 집이나 작은아버지의 집이나 끼니를 거르지 않았지만 겨우 밥 먹고 사는 가난한 집이었다. 서울대 농대에 들어갔지만 돈이 없어 기숙사에서 나왔고 친구와 함께 자취했다. 겨울 난방은 물론이고 먹거리도 없어 굶다시피 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막걸리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아버지는 빨치산 활동을 하다 돌아가셨다. 6·25전쟁 당시 인민군이 북으로 철수할 때 지리산에 들어가셨는데. 구체적 상황은 모른다. 아버지는 생전에 마을 이장을 했고 초등학교 설립 운동을 주도하셨다.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주변 마을 할머니들이 초등학교 시절 때 나를 만나면 "너의 아버지는 정말로 훌륭한 분이었다, 생각 바르고 모든 사람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었다"고 전하곤 했다.
-- 학창 시절에 독서는 많이 했나.
▲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도서반을 지원했고 독서에 몰두했다. 주로 사회과학책을 읽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책들이었다. 나는 이 비판서들을 읽으며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독학으로 공부했다. 부산의 다른 고교 학생들과 함께 독서 모임을 조직하고 야학도 운영했다.
기자(서울신문) 생활 중에도 마음에 맞는 기자들끼리 독서회를 만들어 사회과학책을 읽었다. 책 읽기는 파리 특파원 생활에도 이어져 사회과학 전공 유학생들과 독서 자리를 가졌다. 요즘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기후 위기, 인공지능,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책을 읽는다.
-- 왜 농대에 들어갔나.
▲ 고등학교 2학년 때 농민운동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대학도 사회학과에 갈까, 농대로 갈까 고민하다 농민운동을 하려면 농사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농대로 진학했다. 간신히 대학을 졸업한 후에 기자가 된 것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직업이 없을까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나의 할아버지다. 그분은 농사짓는 필부였지만 나에게 깊은 영향을 줬다. 할아버지는 성장기의 나에게 한학을 가르치며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도리를 실천토록 했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오시면 온종일 일본 강점기 때의 독립운동사 등 역사책을 읽고 나에게 당신의 생각을 말씀하시곤 했다.
-- 본인의 장단점은.
▲ 장점이면서 단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결정을 할 때 너무 깊게, 오래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결정하면 과감하게 끝까지 밀고 나간다.
-- 본인 인생에서 아쉬운 대목은 무엇인가.
▲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민주노총 창립과 민주노동당 창당인데, 민노당이 분열돼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 녹색당, 사회당 등 여러 정당으로 나눠진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민노당이 분열되는 과정의 몇몇 대목을 떠올리며 "당시에 분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며 가슴을 치고 있다.
--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는 무엇인가.
▲ 빈부 격차다. 세계에서 한국의 빈부 격차가 가장 심한 편이다. '1%대 99%' 사회의 표본국이다. 빈부 격차를 해결하지 않고는 어떤 문제도 풀 수 없다.
-- 사회주의가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까.
▲ 인류사회는 사회주의로 인해 삶의 질이 개선되고 발전해왔다. 한국도 사회주의를 지향한 민노당 활동으로 정치, 경제. 사회에 개혁 바람이 일어났다. 주5일제, 재벌개혁, 소득 평등 추진도 민노당이 투쟁하고 선도한 결과다. 유럽에서는 좌·우파 정당이 집권하면서 사회주의 정책들이 유지돼 삶의 질이 나아졌다.
-- 본인은 사회주의자인가.
▲ 사회주의자임을 언제 글로 공식 선언할까 고민 중이다.
-- 과거 소련 방식은 사회주의인가.
▲ 관료적, 전제주의적인 소련 정권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소련은 혁명 이후에 문제가 많았다. 스탈린 때에는 말할 것도 없고 복합적인 문제가 있었다.
-- 북한이 핵 포기를 거부한다면 남한도 핵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 북한은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남한의 핵무기 보유를 미국이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긴장 지대로 남는 것이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대결에서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북한은 중국의 영향권, 남한은 미국 영향권에 있는 것이 미국의 패권 유지에 가장 좋은 길이다.
-- 민주당은 진보정당인가.
▲ 민주당이 대표적인 진보정당으로 돼 있는 것이 한국 정치의 비극이고 모순이다. 민주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국민의 힘이나 민주당이나 강령의 차이가 없다. 민주당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중도를 표방하는 것이 맞다. 북한에 대한 태도 때문에 민주당이 진보정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창업주의 딸과 결혼했다고 하는데 의외다.
▲ 빨치산의 아들이 재벌가의 무남독녀와 결혼했으니 좀 특별하긴 하다. 나의 장인어른은 동방생명 창업주로 내가 결혼했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당시 그분이 살아 있었다면 나와 아내 두 사람은 결혼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 당시 처가는 이미 재벌가가 아닌 상태였다. 아내는 절친한 친구의 고종사촌 동생이다. 친구가 소개해준 것이다.
-- 앞으로 포부가 있다면 무엇인가.
▲ 갈라져 있는 진보정당이 하나가 되는 길에 기여하고 싶다. 진보정당이 다시 통합돼 집권 정당으로 발돋움하는 것을 보는 것이 나의 꿈이다. 통합된 진보정당은 사회주의를 강령에 명문화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80대 후반까지 산다면 '건강하게 살기' 강연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90세 가까운 나이가 돼야 하는데. 그때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취재지원 정한솔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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