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의 팔팔구구] 나그네의 삶을 산다는 것

2022. 10. 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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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작 이 세상에서 하나의 나그네, 한가닥 편로(遍路)에 지나지 못한다. 그대들인들 이밖에 더 무엇이 있겠는가.'

독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년)는 자신을 나그네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인류 문명이 생긴 이래 철학자를 비롯해 많은 학자와 현자가 '세상에 잠깐 왔다 가는 나그네 같은 인생'을 연구했다는데 이들이 내린 결론은 다기망양(多岐亡羊)처럼 하나로 통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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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같은 인생’ 다기망양
1965년 ‘하숙생’ 가사 심오
‘공수래공수거’ 불경의 말씀
삶이 얼마나 덧없는지 표현 
짧은 인생 비우는 연습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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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작 이 세상에서 하나의 나그네, 한가닥 편로(遍路)에 지나지 못한다. 그대들인들 이밖에 더 무엇이 있겠는가.’

독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년)는 자신을 나그네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나그네라는 말이 어쩐지 마음에 든다. 순수한 우리말이라 그런가 정겹기까지 하다.

나그네는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임시로 머무르거나 여행 중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다. 그런데 한번은 오랫동안 이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려보다 엉뚱한 생각으로 빠지고 말았다.

나그네의 첫번째 글자 ‘나’는 나 자신을 말하는 것으로 그야말로 ‘나’가 중심이다. 두번째 글자 ‘그’는 그대라는 말의 앞글자와 같다. 그대는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타인’을 일컫는다. 마지막 글자 ‘네’도 사뭇 쓰임새가 많다. 철수네·영희네처럼 타자의 가족이나 집을 뜻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세 글자 모두 사람을 뜻하는 것이니 나, 타자, 타자의 가족이나 지인이 서로 어울려 얽히고설키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해석해봤다.

이 세 글자를 한통속으로 본 이유는 간단하다. 먼저 내가 중심이 돼 타인을 바라보면 이들은 다 나그네다. 반대로 나그네가 나를 바라본다면 나 또한 나그네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그네를 파자하기에 이르렀다.

인류 문명이 생긴 이래 철학자를 비롯해 많은 학자와 현자가 ‘세상에 잠깐 왔다 가는 나그네 같은 인생’을 연구했다는데 이들이 내린 결론은 다기망양(多岐亡羊)처럼 하나로 통일할 수 없다. 나그네의 뜻풀이에 ‘자기 고장을 떠나’란 부분이 있는데 도대체 자기 고장이 어디란 말인가. 이 부분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굳이 많은 철학자가 생겨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 말인즉슨 ‘자기 고장’을 굳이 지구의 어디쯤이라고 점찍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철학자들은 원래 자신이 지구에 떨어지기 전 지구 밖 우주 공간이나 행성에 있었을 거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요즘 천문학자 가운데 전파천문학 전공자가 꽤 있다고 들었다. 전파천문학자들은 지구 외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전파를 잡아 여러 천체의 성질을 알아내려 노력한다. 그렇다면 지구보다 먼저 태어난 별에는 인간보다 훨씬 진화한 지적 생명체가 있으리라는 추론을 해볼 수 있다. 우주 공간으로부터 나오는 자연적인 전파와 지적 생명체가 만들어낸 조작적인 전파를 구분해낸다면 인간의 추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겠다.

1965년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으로 큰 인기를 끈 ‘하숙생’이라는 가요가 있다. 가사는 쉬운데 내용은 철학자가 고민했던 것과 다를 게 없다. 잠깐 최희준(1936∼2018년)이 부른 곡의 가사를 감상해볼까.

‘인생은 나그네 길/어디서 왔다가/어디로 가는가/구름이 흘러가듯/떠돌다 가는 길에/정일랑 두지 말자/미련일랑 두지 말자/인생은 나그네 길/구름이 흘러가듯/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1절)/인생은 벌거숭이/빈손으로 왔다가/빈손으로 가는가/강물이 흘러가듯/여울져 가는 길에/정일랑 두지 말자/미련일랑 두지 말자/인생은 벌거숭이/강물이 흘러가듯/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2절)’

쉬운 말로 적혀 있는 데다 가수 최희준의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더해져 철학자의 심오한 사유보다 우리 마음에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불경에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란 말이 있다. 빈손으로 와서(태어나) 빈손으로 간다(죽는다)는 뜻이다. 삶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너무나 짧은 인생 내려놓고 비우는 연습을 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근후 (이화여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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