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심야 택시 대란은 혁신 불능 국가에 주는 경고

조선일보 2022. 10. 5.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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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업계 등 기득권의 저항과 정치권의 영합 탓에 우리나라는 공유 차량 서비스의 불모지가 됐다. 2020년 3월 '타다금지법'이 통과된 직후 서울 서초구의 한 차고지에 타다 차량이 주차된 모습./뉴스1

정부가 심야 택시 호출료를 3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리고, 심야 몇 시간만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택시 기사제를 도입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택시 대란’ 대책을 발표했다. 심야 택시 영업의 수익을 올려줘 택시 기사 수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미봉책일 뿐 근본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

후진국형 택시 대란이 발생해 정부가 특단 대책까지 마련한 것은 다른 나라에선 이미 활성화된 우버, 타다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가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3년 검찰이 ‘우버’를 불법 영업으로 기소한 뒤, 한국은 세계 82국에서 이용하는 공유 차량 서비스의 불모 지대가 됐다. 이후 국내 혁신 사업가들이 법의 틈새를 찾아 어렵게 선보인 ‘타다’ 서비스는 1년 만에 회원이 170만명을 넘어설 만큼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택시 업계가 반발하자 정치권이 ‘타다 금지법’까지 만들어 사업을 원천 봉쇄했다. 지금의 택시 대란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기득권의 저항과 여기에 영합한 정치권의 합작품이다.

‘택시 대란’은 시대착오적 혁신 역행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디지털 혁신이 확산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혁신 사업가들이 잇따라 새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고 있지만, 기득권의 저항과 정치권의 영합 탓에 싹이 잘리고 있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보편화된 원격의료가 한국에선 의사 단체의 저항에 발목이 잡혀 있다. 변호사와 사건 의뢰인을 인터넷으로 연결해주는 서비스는 변호사 단체가 숨통을 죄고 있다. 환자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필요한 의약품을 고르면 의사가 전화로 처방전을 발행해주는 비(非)대면 진료 플랫폼은 약사 단체 반발 탓에 서비스 시작 한 달 만에 중단됐다. 반값 부동산 수수료를 앞세운 부동산 중개 플랫폼은 공인 중개사 단체에 핍박받고 있다.

‘타다 금지법’에서 보듯 정치권과 정부는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를 통해 혁신 산업의 돌파구를 열어주기는커녕 표가 되는 기득권 편에 서서 혁신의 싹을 잘라 왔다. 그 결과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사업 모델 중 57가지가 한국에선 아예 창업이 불가능한 황당한 규제 환경을 겪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혁신에서 사업 기회를 찾으려는 국내 자본은 해외로 나가고 있다. 현대차·SK·네이버·미래에셋 등은 동남아의 차량 호출 서비스 ‘그랩’에 앞다퉈 수천억원씩 투자했다. 자율주행 택배 사업 모델을 개발한 서울대 연구팀은 한국의 높은 규제 장벽 탓에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자 미국 실리콘밸리로 사업 무대를 옮겼다. 산업의 역사는 혁신 역주행이 소비자 피해로 돌아오고, 미래 세대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걸 보여준다. 지금처럼 정치권이 기득권과 영합해 혁신을 싹을 계속 자르면 택시 대란이 아니라 경제와 산업의 쇠퇴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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