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세 번 집권해본 야당의 ‘기초연금 5종 세트’

김민철 논설위원 2022. 10. 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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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액 조항 다 없애고 40만원 주면 3년 후 기초연금 예산만 50조원
80년대 야당도 아니고 집권해본 정당이 너무하지 않나

세금으로 시행하는 복지제도 중 가장 덩치가 큰 것은 무엇일까. 기초연금으로 올해 예산이 무려 20조원이다. 오랫동안 1위를 지켜온 기초생활보장제도(올해 예산 16조원)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올해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898만명인데, 이 중 소득 하위 70%에 속한 628만명이 기초연금을 받고 있다.

2020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직원이 기초연금 관련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 News1

올해 기초연금 대상자가 매달 받는 돈은 30만8000원이다. 이 돈을 65세 이상 전원에게 줄 경우 33조2000억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20조원인 것은 몇 가지 감액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소득 상위 30%를 제외하는 것 말고도 부부가 동시에 기초연금을 받으면 20%를 감액하고 있다. 부부가 한 명도 못 받는 집도 있는데 둘 다 전액 받을 경우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별 문제 제기가 없이 시행 중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를 받는 고령자에게도 기초연금을 주지만 소득인정액에 넣어 공제하기 때문에 사실상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자신의 소득·재산으로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때 보충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또 국민연금을 많이 받으면 기초연금을 최대 50%까지 감액하는 제도가 있다. 국민연금에 이미 소득재분배 기능(A급여)이 있다는 이유로 넣은 것이다. 이런 감액 조항들로 올해에만 13조2000억원의 예산을 줄인 셈이다.

그런데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얼마 전 국회 대표 연설에서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 주장을 이번 정기국회 7대 입법 과제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여기에다 부부 삭감 폐지, 노인 100%에게 지급, 기초생계급여와 연계 폐지, 국민연금과 연계 폐지 등을 지난 대선 때 공약했거나 법안으로 제출해 놓고 있다. ‘기초연금 확대 5종 세트’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기초연금 40만원을 공약했고 국정과제에도 넣었다. 하지만 연금 개혁의 틀 속에서 논의해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는 점이 다르다.

서민과 중산층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민주당이 왜 어려운 노인들을 더 두껍게 지원하자고 요구하지 않고 굳이 잘사는 사람까지 기초연금을 주지 못해 안달인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일단 논외로 치자. 감액 제도 하나하나가 맞느냐는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과 연계, 기초생계급여와 연계는 기초연금 40만원 지급을 앞둔 시점에서 보니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기초연금은 다른 제도들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데 앞뒤 가리지 않고 3종 세트, 5종 세트를 처리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기초연금만 덜컥 인상할 경우 시급한 국민연금 개혁이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국민연금 평균소득(월 268만원) 가입자가 올해부터 30년 보험료를 부어야 81만원을 받는다. 부부에게 기초연금 80만원을 주면 평생 국민연금을 낸 사람과 형평성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지급액이 늘고 65세 이상 인구도 늘기 때문에 모든 노인에게 40만원씩 지급하려면 당장 3년 후인 2025년 약 50조원이 필요하다. 기초연금 5종 세트를 도입하면 불과 3년 만에 예산이 2.5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형평성 시비에 더해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생기는 이유다. 오죽하면 평소 복지 확대를 주장해온 정의당까지 ‘막 던지고 보는 정책’이라고 비판했겠는가. 집권 경험이 없는 80년대 야당도 아니고 세 번이나 집권해본 야당이 이런 식이니 한숨이 나올 뿐이다. 이러니 현 대통령이 실수하고 서툴러도 “그래도 이재명 된 것보다는 낫지”라는 말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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