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13] 가거도 삿갓조개탕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2022. 10.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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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국물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산골에서는 개울가에서 잡은 다슬기로, 갯마을에서는 갯고둥에 된장을 풀어 국물을 만든다. 가거도처럼 거친바다에 돌섬이 아니면 버티기 힘든 곳은 어떨까. 그곳에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도 독실산이다. 이곳에서 시원한 국물은 배말이 만들어낸다. 삿갓조개다.

조도군도에서 만난 맹골도, 독거도에서도, 동해를 지키는 울릉도에서도 삿갓조개는 요긴한 식재료이다. 무안군 남악에는 가거도에서 삿갓조개를 가져와 가거도식으로 조개탕을 끓여내는 집(가거도맛집)이 있다. 삿갓조개는 갯바위에 붙어 사는 복족류다. 거친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썰물에 햇볕에 견딜 수 있도록 조간대 상부에 몸을 딱 붙이고 삿갓모양의 껍데기를 뒤집어썼다.

삿갓조개탕./김준 제공

삿갓의 높이라고 해야 1cm 내외, 너비와 폭도 큰 것이 3cm 정도다. ‘자산어보’는 흑립복, 백립복, 오립복, 편립복 등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살은 전복과 비슷하지만 둥글고, 전복처럼 납작해서 돌에 붙는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삿갓조개류는 진주배말, 큰배말, 애기삿갓조개 등이 있다. 가거도에서 가져온 배말은 애기삿갓조개일 가능성이 크다.

소라나 피뿔고둥 등 고둥류와 달리 움직임을 관찰할 수 없는 고착생물이다. 그렇다고 촉수를 내밀어 부유성 생물을 잡아먹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점액질을 분비해 아주 느리게 움직이며 바위에 붙은 아주 작은 미세조류 ‘규조류’를 갉아 먹는다. 삿갓조개가 남기고 간 점액질을 좋아하는 규조류가 다시 모여드니 주변을 맴돌며 먹이활동을 하는 것이다.

김준제공

섬 주민들은 물이 빠진 갯바위에서 몸을 찰싹 바위에 붙이고 다음 물때를 기다리는 삿갓조개를 무딘 칼로 채취한다. 된장국을 끓이고, 부추를 썰어 넣고 삶은 배말 살을 넣고 무쳐 반찬으로 내놓기도 했다. 울릉도 등 경상북도에서는 따개비라고도 부른다. 따개비칼국수는 배말을 넣고 끓인 것이다.

가거도가 고향인 안주인은 섬 주민들에게 부탁해 채취해온 삿갓조개, 홍합, 문어 등으로 상차림을 한다. 여기에 불등가사리를 넣었다. 가사리국은 오래 끓이면 녹아서 흐물흐물해지기에 마지막에 살짝 넣어서 먹어야 한다. 삿갓조개의 육질에 가사리 같은 해초가 잘 어울린다. 마치 소고기국에 무를 넣어 시원함을 더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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