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아웃룩] 극심한 두통 잦아져도 응급실 가야… 간과해선 안 될 우리 몸의 ‘빨간 깃발’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22. 10.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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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후반 여성 최모씨는 최근 극심한 두통을 느꼈다. 1~2분 내 최고조에 이르는 강렬한 통증이었다. 팔다리는 잘 움직였다. 최씨는 119에 전화했다. 15분 후 구급대원이 왔을 때, 두통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앞머리만 무거운 정도였다. 이에 최씨는 당장 응급실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앰뷸런스를 돌려보냈다. 병원 외래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몇 시간 후 극심한 두통이 재발했고,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실려간 대학병원 응급센터에서 최씨는 뇌동맥 파열 진단을 받았고, 생명이 위태로운 처지가 됐다.

뇌동맥류는 뇌동맥의 약한 부위가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상태를 말한다.

◇움직이는 시한폭탄, 레드 플래그 사인

최씨 사례를 검토한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최씨가 처음 겪은 극심한 두통이 전형적인 뇌동맥류 파열 ‘레드 플래그’ 사인이라고 말한다. 레드 플래그(red flag·빨간 깃발)는 겉으로는 괜찮아진 것 같거나, 크게 중한 증상처럼 보이지 않지만, 실은 초응급을 요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응급의학계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이런 환자를 가볍게 봤다가 지연 처치로 의료 사고가 날 수 있다고 하여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이라고 말한다.

뇌동맥 일부분이 꽈리처럼 부풀어오른 뇌동맥류가 파열되면 급속한 뇌출혈로 생명이 위태롭다. 최씨처럼 뇌동맥류 일부가 파열되면서 극심한 두통을 일으키고, 잠잠해졌다가, 시간 차를 두고 본격적으로 파열이 생기는 경우가 상당수다. 극심한 두통이 생겼다가 잠잠해졌다고 안심할 게 아니라, 뇌동맥류 파열 직전으로 봐야 한다. 지난 5월 뇌동맥류 파열로 세상을 뜬 영화배우 강수연씨도 극심한 통증으로 119 구급대를 불렀으나, 두통이 줄면서 돌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강씨와 최씨가 극심한 두통이 한 차례 왔을 때, 이를 레드 플래그 사인으로 보고 응급실로 바로 갔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응급의학계는 보고 있다. 뇌동맥류 출혈로 응급의료센터를 찾는 환자들은 한 해 9386명이며, 이 중 17%가 목숨을 잃는다.(2020 중증응급질환 응급실 내원 현황 보고서)

그래픽=백형선

◇곳곳서 나타나는 중병 암시 신호

레드 플래그 사인은 응급을 다퉈야 할 중한 질병 곳곳에 있다. 화장실서 배변하려고 배에 힘주다가 발생한 극심한 두통도 뇌동맥류 파열 신호로 볼 수 있다. 노래방에서 고음의 노래를 부르다가 발생한 극심한 두통도 마찬가지다. 한쪽 다리에 마비가 왔다가 몇 분 후 풀린 경우는 뇌경색 발생 신호다. 멀쩡해졌다고 안심할 게 아니라 급히 병원을 찾아야 한다. 뇌동맥이 순간 막혔다가 풀렸지만, 다시 막혀 뇌경색이 본격적으로 생기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말이 어눌해졌거나,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안 나오거나, 시야가 겹쳐 보이는 복시 등이 갑자기 생겼다가 사라진 경우도 뇌경색 레드 플래그로 봐야 한다. 한 해 8만5000여 명이 뇌경색으로 응급센터에 오고, 이 중 5.1%가 사망한다. 뇌경색 초기에 응급센터에 오면 막힌 뇌혈관을 약물이나 시술을 통해 재개통하는 치료를 하여 신경학적 후유증 없이 나을 수 있다. 열이 나면서 두통이 생기는 경우는 뇌수막염으로 의심되니, 신경학적 후유증이 커지기 전에 바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

레드 플래그 사인은 심장 질환에도 많다.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은 듯한 압박감 또는 통증은 심장 관상동맥이 막힌 심근경색증 발생 신호다. 박정호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이런 경우 대개 쉬면 통증이 줄어들기에 응급실 방문이 지연되는데, 쉬면 좋아지는 게 되레 전형적인 레드 플래그 사인”이라며 “가슴과 등을 압박하는 묵직하고 강렬한 통증이 발생했으면 119 구급대를 호출해서 즉시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3만5717명의 심근경색 환자가 응급의료센터를 찾았고, 이들의 사망률은 9.7%로 높았다. 박 교수는 “가슴 통증이 식은땀을 동반하거나 환자가 창백해지거나 실신을 동반하는 경우도 심근경색증 레드 플래그 사인”이라면서 “흉통이 심한 호흡곤란을 동반하거나 기침할 때 객혈이 함께 나온다면 폐색전증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폐색전증은 폐에 혈액을 공급하는 폐동맥이 막힌 상태를 말한다. 갑자기 분당 90회 이상으로 심박수가 빨라진 고령자는 내부 출혈을 의심해야 하고, 암환자에게서 발생한 요통은 암 척추 전이, 아스피린 장기 복용자의 명치 통증은 위궤양 출혈 레드 플래그 사인으로 볼 수 있다.

◇119 응급의료 전화 상담 활성화해야

레드 플래그 사인이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119에 전화해서 응급의료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소방청 119 구급상황 관리센터에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당직 대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응급의학과 의사가 대개 한 명이고, 아예 없는 지역도 있어서 전화를 통한 응급의료 상담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2017년 41만건이던 것이 2021년에는 37만건으로 줄었다. 당직 응급의학과 의사는 주로 출동 현장의 구급대원이 요청하는 응급처치 지도를 맡고 있다. 현재 119에 전화해도 응급의학과 의사와 연결이 쉽지 않다. 예전에는 응급의료정보센터 1339에서 여러 명의 공중보건의사가 당직을 서며 응급의료 상담을 했는데, 2012년 1339가 119로 통합되면서 응급의료 상담 기능이 줄었다는 평이다.

송경준(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응급의료지도의사 협의회 이사장은 “요즈음에는 스마트폰을 통한 영상 통화가 가능하니 전화로도 응급 상태 진단 정확도가 높다”며 “응급의학과 의사가 119를 통해 응급 상황을 판단하여 지도하는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원표(응급의학과 전문의) 소방청 119구급과 품질팀장은 “응급의료 지도 의사를 양성하고 교육하는 것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내년부터는 영상 통화 등을 이용한 스마트 응급의료 지도 사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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