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넥타이·콧수염 상징 '보수논객'.. 정·재계 인사 조문행렬

박양수 2022. 10. 5.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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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원로 인사인 김동길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4일 밤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5일 유족에 따르면 숙환으로 입원 중이던 김 교수는 전날 오후 10시 30분께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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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대표 보수 원로·논객 활동
사회운동·현실정치 깊이 관여
2월 코로나 확진후 건강 악화
김동길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 <연합뉴스>
안철수 의원 만난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연합뉴스]

한국 대표 원로 인사인 김동길 연세대 사학과 명예교수가 4일 밤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5일 유족에 따르면 숙환으로 입원 중이던 김 교수는 전날 오후 10시 30분께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지난 2월 코로나19에 확진됐다가 회복했지만, 3월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해 입원 뒤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못했다.

1928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6년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자 월남해 연희대(현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에반스빌대와 보스턴대에서 각각 사학과 철학을 공부해 문사철(文史哲)을 섭렵했고 100권 안팎의 저서를 남겼다.

귀국 후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회운동·현실정치에도 깊숙이 관여했던 그는 군부독재 시절 사회·정치 비판적인 글을 쓰다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기소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도 연루되며 대학에서 두 차례 해직됐다가 1984년 복직했다. 그는 훗날 박정희를 회고하며 "유신체제가 잘못된 것이 많지만 조국의 경제를 이만큼 만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후 민주화운동과 거리를 둔 고인은 1991년 강의 도중 강경대 치사사건을 비하하는 언급을 했다가 학생들 반발에 강단을 떠났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에 합류,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뛰어든 그는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1994년 신민당을 창당하고 이듬해 고 김종필 전 총리의 자유민주연합에 합류했다가 15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하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나비 넥타이와 콧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그는 '이게 뭡니까'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말년에는 보수진영 원로이자 보수논객으로 활동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생전에 "자살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까지 유튜브 채널 '김동길TV'를 운영했다. 올해 초에는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여권은 고인의 별세 소식에 잇달아 애도의 뜻을 표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교수님께서는 일생을 민주화와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바치셨다"며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바른길을 제시해주시던 교수님의 통찰력과 혜안은 그 깊이를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고 애도했다.

윤상현 의원도 페이스북에 "한평생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며 바른 말씀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해온 선각자셨다"라며 "링컨과 같은 정치인이 되어 국민을 위해 보다 차원 높은 정치를 하라고 하신 말씀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고인은 생전 서약에 따라 시신을 연세대 의과대학에 기증했다. 서대문구 자택은 누나인 고(故) 김옥길 여사가 총장을 지낸 이화여대에 기부한다.장례는 고인이 누나를 기리기 위해 자택 마당에 건립한 김옥길기념관에서 가족장으로 오는 7일까지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여동생 옥영·수옥 씨가 있다. 장지는 고인의 부모가 모셔진 경기 양평군 소재 가족묘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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