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맹점 60%가 제로페이 실적 제로, 공공이 더 잘할거라는 착각
서울시가 고 박원순 시장 시절 자영업자들의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한 제로페이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실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제로페이를 설치한 전체 가맹점의 63%가 누적 결제액 0원일 정도로 사용 실적이 미미했다. 결제액이 100만원 이하인 곳도 수두룩했다. 대다수 가맹점이 제로페이 시스템을 설치만 하고 전혀 활용하지 않거나 가끔 한 번씩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로페이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은 이용하는 데 불편이 많기 때문이다. 일반 카드와 카카오페이 등 민간 결제 서비스에 비해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이 많지 않고 혜택도 별로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 굳이 제로페이를 써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공공이 사업을 주관하다 보니 실적을 높이기 위한 마땅한 유인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민간기업이었다면 사업을 접었거나 어떻게든 시장 점유율을 높였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제로페이 확대를 위해 가맹점 QR키트와 단말기 보급 등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2019년부터 4년간 지원 예산 액수는 400억원에 달한다. 이에 힘입어 제로페이 연간 결제액은 2019년 700억원대에서 지난해 2조4600억원대로 급증했다. 하지만 가맹점당 결제 액수는 33만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제로페이로 할인 판매했던 지역사랑상품권과 온누리상품권 결제액 수천억 원을 포함한 금액이다. 민간 결제 서비스와 비교하면 민망할 정도로 저조한 사용 실적이다.
제로페이의 실패는 공공이 더 잘할 것이라는 착각의 결과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공공성만으로는 시장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소비자가 원하는 편익을 제공할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자영업자의 중개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명분으로 만든 공공 배달 앱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간 배달 앱에 비해 가맹점이 적고 이용이 불편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사업의 이런 한계점을 인정하고 제로페이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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