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연의 사각지대] '블로킹' 가르쳐야 했던 세자르 감독..전패가 감독만의 잘못?

권수연 2022. 10. 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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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잘레스 감독ⓒ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MHN스포츠 권수연 기자) 정말 세자르 감독이 전부 잘못했을까?

지난 3일, 세계선수권대회 일정을 모두 마친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오전에 귀국했다. 성적은 총 5경기에 1승 4패.

좋은 성적이라 하기 어렵다. 도미니카 공화국, 튀르키예, 폴란드, 태국에 차례로 꺾이고 마지막 날 크로아티아를 세트스코어 3-1(25-21, 27-29, 29-27, 25-23)로 잡으며 첫 승을 신고했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세대교체의 진통을 앓고있다. 성장통에 가깝다. 2020 도쿄 올림픽 4강 신화를 이끌었던 '배구여제' 김연경(흥국생명)이 빠지고는 뚜렷한 해결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주장 박정아(한국도로공사)를 비롯해 황민경(현대건설), 염혜선(KGC인삼공사)가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지난 여름 열린 2022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받은 첫 성적표는 12전패. 경기 도중 세자르 감독이 선수들에게 기본기를 지적하는 모습도 중계되었다. 

당시 세자르 감독은 국내 선수들의 블로킹 자세에 대해 지적했다. 팔을 벌려 둥근 형태를 만든 그는 "블락할때 블로킹 자세를 이런 식으로 (둥글게) 팔을 벌리고 뜨면 안된다, 그러면 항상 늦는다"라고 말했다. 기술적인 어드바이스가 아니라 기본기 지적이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해외 해설 측에서는 "고교 배구에서나 강의할 내용이다" 등의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국내 배구판에서는 일부 공격수들에게 리시브 면제를 시키며 기본기가 미숙한 선수를 키워내는 현상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여론은 "김연경이 없는 상황이라 예상했다, 가능성을 확인하는 경기"라는 의견과 "한심하다, 국가대표가 가능성을 키우는 자리인가"는 의견까지 분분했다.

2022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선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FIVB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살레스 한국 여자배구팀 감독이 27일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열린 2022 국제배구연맹(FIVB) 세계여자선수권대회 B조 2차전 튀르키예와의 경기 중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FIVB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 가지는 어겨져선 안됐다. 어쨌든 국가대표 차출에는 차질이 없어야 한다. 국가대표는 분명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자리다. 그러나 국내 배구에서만큼은 V-리그가 태극마크보다 위였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부상선수가 대거 발생하며 엔트리에도 차질이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국제대회를 포기할 수는 없다. 세자르 감독은 맞출 수 있는 엔트리를 최대한 긁어모아 폴란드로 떠났다. 누구도 성적에 기대를 갖지 않았다. 결과는 4연패에 겨우 1승이었다. 1승도 기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16연패를 만들고 국내로 돌아온 세자르 감독에게 국내 배구인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VNL 당시부터 국내 배구 관계자들과 세자르 감독의 사이는 냉랭했다. 당시 원로 배구인 중 한 명은 "국내 정서에도 좀 맞춰줘야 하는데 한국 배구를 무시한다,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한다"며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또한 최근 몇몇 매체에서는 세자르 감독의 경질 가능성과 내부 논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매체를 통해 한 배구협회 관계자는 16패 끝 1승만 거두고 돌아온 세자르 감독이 "아무 책임도 없다는 듯 행동한다"고 책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6패 끝 1승, 객관적으로 봤을때는 물론 크게 문제가 있는 성적이다. 감독에게도 책임은 분명 있다. 그러나 이것이 오로지 세자르 감독'만'의 잘못이라고 보기엔 더더욱 문제가 있다. 

주요 선수들이 부상으로 대거 이탈하고, 한국 여자배구에 그토록 필요한 '독보적 에이스'가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떤 감독이 획기적인 성적을 낼 수 있을까? 현재 국내 배구판은 김연경이 없는 팀에 김연경만이 낼 수 있는 성적을 바라고 있다.  

국제무대, 중계 카메라 앞에서 기본기 지적을 받는 국가대표팀이다. 그런데 이는 철저히 간과되었다. 그러나 한국 배구계는 근본적인 대책 해결보다 그저 에이스의 텅텅 빈 자리만 닦았다. 대표팀의 성적이 바닥을 친 이유는 단순히 '김연경이 없기 때문'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전(前) 여자배구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던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은 "제2의 김연경을 기다리기보단 전체의 평균을 올려야한다, 김연경같은 선수는 3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연합뉴스

본지 취재진은 지난 달 30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태국에게 패한 뒤 배구협회 측에 연락해 선수들의 정확한 귀국 스케줄을 물어보았다. 당시 통화했던 협회 측 관계자는 "아직 한 경기가 남았고, 2라운드 진출 여부를 혹시 모르니 일정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태국에게 패배한 순간 2라운드 진출은 이미 무산이다. 배구협회 측의 대답은 납득할 수 없었다. 단순히 국제대회 일정조차 확답하지 못하는 협회 측에서, 세대교체 이후 국가를 대표해서 나선 선수들에게 기본기까지 가르쳐야 했던 세자르 감독에게 과연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 있을까?

배구협회는 지난 6월, KOVO와 손을 잡고 해외 우수 배구지도자 초청 세미나를 열었다. 파나소닉 팬더스 로랑 틸리 감독 등 해외 명지도자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는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 대한항공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 KGC인삼공사 고희진 감독 등 소수의 감독들만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해외 선진 배구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음에도 국내 감독들이 무관심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보여준 기본기 부재, V-리그에서 나타나는 '몰빵배구'로는 더 이상 국제대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데도 말이다.

세자르 감독이 제보대로 국내 스태프를 무시하고 안하무인으로 굴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분명 비판받아야 한다. 부상당한 선수들에게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했다면 그 점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과 비난은 객관적으로 제시된 증거와 더불어 익명에서 벗어난 뚜렷한 증언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배구협회는 세자르 감독에게 연패에 대한 책임도 물을 전망이다. 다만 세자르 감독에게 책임을 물은 이후에는 분명 더 나은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물론, 국제대회 일정 숙지까지 포함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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