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시선 걱정 없이..편안하게 머리했어요"[현장에서]
전국 첫 장애인 친화 미용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오픈
‘장애 편의법’ 따라 내부 설계
‘높낮이 조절’ 샴푸대 설치해
커트 후 머리도 감을 수 있어
미용실 의자는 대개 거울 앞에 고정돼 있다. 높낮이가 조절되지만 의자를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특히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미용실 의자로 옮겨 앉아야 한다. 염색·파마·커트 후 머리를 감으려면 휠체어로 다시 옮겨 앉아 이동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샴푸대로 가야 한다. 장애인 중 상당수가 미용실에서 염색과 커트 등을 한 뒤 머리를 감지 않고 집에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설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장애인의 머리 손질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들고 손도 많이 가다 보니 따가운 시선도 견뎌야 한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문을 연 장애인 친화 미용실 ‘헤어카페 더휴’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미용실은 시범운영을 거쳐 4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노원구가 조성하고 마들종합사회복지관이 운영하는 이곳은 전국 최초의 장애인 친화 미용실이다.
장애인 전용 미용실이라고 복지시설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지난달 30일 찾은 미용실은 외관부터 여느 분위기 좋은 고급 미용실 못지않았다. 미용실 내부는 철저하게 ‘장애인 등 편의법’에 따라 맞춤 설계했다. 우선 입구에 문턱을 없앴으며 경사로를 설치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안전하게 들어설 수 있도록 경사로와 출입문까지의 이동 거리도 1.2m가량 확보했다.
시설과 장비도 장애인 편의에 초점을 뒀다. 헤어룸 2곳에는 360도 회전하는 고정형 의자를 설치했으며, 나머지 1곳에는 휠체어에 앉아서도 서비스받는 손님을 위해 이동형 의자를 배치했다. 헤어룸마다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샴푸대가 달려 있는데, 그 자리에서 샴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체장애 1급인 김지희씨(43)도 이날 생전 처음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의 활동보조인 이순형씨는 “집 앞 미용실에서는 짧게 커트만 하고 염색은 주로 집에서 내가 해준다”며 “머리는 목욕하면서 감는데, (여기서는) 스타일을 살려 드라이까지 해주니 너무 새롭다”고 말했다. 이씨가 “머리가 마음에 드냐”고 물어보자 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용실에는 사회복지사 1명과 미용사 2명이 상주한다. 이들은 꾸준히 장애인 유형과 특성 등에 대한 인식 교육을 받고 있다. 미용사 안혜영씨(34)는 “한 손님이 (입구에) 문턱이 없는 것을 보고 ‘미용실이라고 하면 내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미안하게 하는 곳이었는데,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장애인을 생각하는 마음은 미용실 곳곳에 묻어 있다. 미용실 한쪽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마련돼 있다. 화장실 변기와 세면대 등에는 안전 보조기구가 각각 설치돼 있다. 반대편 공간에는 붙박이 침대가 설치된 탈의실도 있다. 뇌병변 중증장애인의 경우 기저귀를 교체해야 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 옆에는 장애인들과 함께 움직이는 활동보조인들이 쉬거나 복지서비스를 상담받을 수 있도록 미니 카페가 조성돼 있으며, 장애인 전동보장구 급속 충전기도 설치돼 있다.
비용도 저렴하다. 시중가보다 50% 이상 저렴한데,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대상자는 추가로 50% 할인된다. 이용대상은 노원구 등록 장애인이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노원구는 서울 자치구 중 두 번째로 장애인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앞으로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다양한 장애인 친화 사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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