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리 인상, 개도국 500조원 이상 피해"..유엔무역개발회의, 선진국 정책 선회 촉구

박용하 기자 2022. 10. 4.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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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금리로 물가 내릴 수 있다는 믿음은 경솔한 도박" 경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개발도상국에 피해를 주고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유발해 2008년 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19 사태보다 더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경고가 나왔다.

UNCTAD는 3일(현지시간) 발간한 올해 무역개발 보고서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포함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고집하면 개도국들에 커다란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레베카 그린스판 UNCTAD 사무총장은 제네바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 침체의 벼랑 끝에서 물러설 시간이 아직은 있다”면서 “(선진국들의) 현 정책 방향은 개발도상국들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 고통을 주고 있으며, 세계를 경기 침체로 빠뜨릴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1%포인트 올리면 이후 3년간 다른 부자 나라들의 경제 생산을 0.5%,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생산을 0.8% 각각 낮추는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올해 이뤄진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중국을 제외한 개도국들은 향후 3년간 경제 생산이 총 3600억달러(약 516조원) 감소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중간 소득 국가와 아프리카의 저소득 국가들은 올해 급격한 경기 침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UNCTAD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6%에서 2.5%로 하향 조정하고, 내년에는 2.2%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달러 가치를 끌어올리면서 생긴 문제도 지적했다. 달러 가치가 오르면 미국인들은 수입 물가 안정의 혜택을 받지만 다른 국가들은 자국 통화 가치의 하락으로 수입 물가 부담이 커진다.

올해 약 90개 개도국의 통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였으며 그중 3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국가의 통화 가치는 달러 대비 10% 이상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도국들은 환율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올해 약 3790억달러(약 543조원)를 지출하기도 했다.

UNCTAD는 “이번 보고서는 경기 침체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높은 금리에 의존해 물가를 내릴 수 있다는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믿음은 경솔한 도박에 불과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와 공급망 병목, 다국적 기업의 과도한 이윤 창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에 수요 측면의 해법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위험한 접근이란 것이다. 보고서는 “오늘날의 도전에 대응함에 있어 긴축 정책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1970년대나 그 후 수십년간을 되돌아보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UNCTAD는 각국의 정책 방향 선회를 촉구했다. 에너지난과 식료품 부족 사태 진정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금리 인상보다는 전략적인 가격 통제와 횡재세(일부 기업들의 초과이익에 대한 과세), 반독점 제재, 상품 투기에 대한 엄격한 규제 등 보다 실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날 보고서는 연준의 과도한 금리 인상에 대한 미국 안팎의 비판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최근 미국에서는 찰스 에번스 시카고연방은행 총재와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연방은행 총재 등이 정책 효과를 확인하지 않고 과도한 금리 인상을 이어가는 연준의 노선을 비판한 바 있다.

제레미 시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CNBC와 인터뷰하면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금 인상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아니며 파월이 이를 분쇄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지난 2년간의 과도한 완화정책이었다”고 말했다.

유럽 등 동맹국들도 미국의 과도한 긴축정책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강달러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전에는 달러화 가치 상승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일 보도한 바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이날 논평에서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자 국제 경제·금융 시스템의 핵심 국가로서 미국은 책임 있는 경제·금융 정책을 펴야 한다”며 “정책의 대외 파급효과를 잘 통제함으로써 전 세계에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의 위험을 수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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