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지능 아이는 다른 교육이 필요할 뿐..자기효능감 길러줘야"[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최민영 기자 2022. 10. 4.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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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선 아동심리학자
경계선 지능 전문가인 아동심리학자 박찬선씨가 서울 논현동에서 운영 중인 심리치료기관 ‘연아혜윰’에서 지난달 23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 대표는 “경계선 지능 아이가 보이는 문제행동은 교육이 필요한 행동이므로 구체적으로 설명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인지학습치료 및 경계선 지능 전문가다. 경계선 지능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및 아동~후기 청소년기 심리적응 문제의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공유한다. 성균관대 아동심리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부모와 교사들을 대상으로 상담 및 강연을 하고 있다. 경계선 지능 아동의 초기 인지 및 문해·쓰기·독해·기초수학 학습능력 증진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책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 <경계선 지능과 부모> <느린 학습자의 공부>를 썼고, 미야구치 고지 박사의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한국어판을 감수했다. 현재 심리치료 전문기관 ‘연아혜윰’의 대표를 맡고 있다.
IQ 70~85 장애와 비장애 사이
뚜렷한 원인 없는 경우가 대부분
인지 능력이 약해서 배움 느려

한국의 경계선 지능 아동·청소년은 전체의 14%로 추정된다. 학급당 평균 2~3명의 지능지수(IQ)가 70 이상~85 미만인 셈이다. 아이들은 회색지대에 놓여 있다. 지적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학급 수업은 너무 쉽고, 일반학급 수업은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어려워한다. 낮은 학령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높은 학령에선 어려움이 더 커진다. 인지능력이 약해 같은 내용을 습득하는 데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계선 지능 아동에 대한 학교 현장과 전문가들의 관심이 특히 커진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다. 정부 방역 방침에 따라 전면 등교 중단이 장기화하면서 이들은 특히 큰 타격을 입었다. 학습태도가 불량하다고 지적받거나 학교폭력 가해자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성인기가 되어서도 이 같은 어려움은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이 아이들을 더 잘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경계선 지능 치료센터 ‘연아혜윰’에서 아동심리학자 박찬선 대표를 만났다. 박 대표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가르치는 방법이 달라야 하는 ‘다른 유형의 아이’일 뿐”이라며 “배움이 느릴 뿐 누구보다 순수하고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자기효능감을 갖고 함께 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경계선 지능 문제는 비교적 최근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학습장애 또는 조용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로도 종종 오인됐는데요.

“경계선 지능은 전반적 학습영역에서 고르게 낮은 수준을 보입니다. 학교 수업에 적응하거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지구력이 부족하고 충동조절을 어려워합니다. 보통은 아이의 수업태도가 나쁘다고 여겨지지만 사실 태도 문제가 아닙니다. 이 아이들은 심리적 유아이기도 해서 또래보다는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편안해합니다. 반면 학습장애 아동은 전반적으로 안정적 지능 수준이지만 유독 한 부문에서만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ADHD의 경우 주의 집중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문제가 더 커서 이해력 부족인 경계선 지능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계선 지능 아동은 쉽거나 해봤던 과제에는 동기부여가 돼 집중을 잘하는 반면, 추상적이고 개념화된 복잡한 어휘 습득은 어려워해서 보통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쉬운 어휘를 씁니다. 경계선 지능은 자폐적 성향이나 정서장애를 동반하기도 하는데, 아이마다 원인이나 성향이 다른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 코로나19 이후 경계선 지능 아동들이 학교생활을 힘들어 한다고요.

“특징 중 하나는 등교 거부입니다. 초등학생 때 학습에 어려움을 겪다가 중학생이 된 한 학생의 경우 반복된 등교 중단의 후유증을 이렇게 겪고 있습니다. 조퇴하거나 지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경계선 지능 아동은 사고의 폭이 좁아 경험의 틀 안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합니다. 그런데 코로나 시기에 온라인 수업은 깊이있게 하기 어려웠는데, 점수는 나왔단 말이죠. 학교를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게 된 점은 경계선 아이들에게 치명적입니다.”

생활 자조의 반경·범위 넓혀주고
독서와 대화로 어휘력 키워주는 등
아이들 갖고 있는 모습 중심으로
맞춤형 교육 땐 사회에 적응 충분

- 경계선 지능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이유 모를 발달지연입니다. 영·유아기 보통 24개월이면 의사소통이 되는데 경계선 지능 아이들은 36개월에도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합니다. 부모의 인지능력이 부족한 경우 자녀가 경계선 지능이 될 가능성이 조금 더 높기는 하지만, 유전으로 결정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2008년 지역에서 돌봄이 부족한 아이들을 지원하면서 경계선 지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인지능력 성장을 위한 환경적 지지가 부족한 경계선 지능의 경우 지속적 지원을 하면 예후가 좋은 편이었습니다.”

문제행동 때 무조건 다그치는 건
아이들이 이해 못하니 삼가야

- 우리 사회는 ‘머리 나쁘다’는 것에 낙인을 찍는 나쁜 풍토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높은 지능이 곧 좋은 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그저 다른 아이들일 뿐입니다. 다른 유형의 아이는 그에 맞는 학습·지도 방법으로 인지능력을 개선할 수 있어요. ‘경계선 지능’이라는 정의 역시 사회적 낙인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하기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인지능력이 아이의 삶을 100% 결정하는 절대변수는 아닙니다. 수학 올림피아드만 나가면 1등인 멘사 회원 아이도 공부를 잘 못하거나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지적장애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저 다른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면 문제행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일본의 소아정신과 의사로 의료소년원에서 일하는 미야구치 고지 박사는 비행 청소년 가운데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아이가 많다는 사실을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동그란 케이크를 3등분하는 단순한 그림 과제를 소년들은 어려워했다. 간단한 덧셈과 뺄셈을 하거나 도형을 따라 그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야기를 잘못 알아듣거나 주위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해 집단 따돌림 대상이 되고, 이러한 일들이 비행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를 다그치거나 버릇을 고치겠다고 엄히 다스리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 소년원 내 경계선 지능 아이들의 비율 통계가 있습니까.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된 2016년 자료에 따르면 전국 10개 소년원에 보호된 약 1000명의 소년 중 정신건강 치료가 필요한 비율은 22.6%이고, 이 중 37%가 지적장애 및 경계선 지능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정확한 조사는 어렵지만 필요한 부분입니다. 미야구치 박사가 말한 것처럼 경계선 지능 아이들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잘못은 했지만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왜곡된 자아인식을 갖기도 하는데요. 왜냐하면 평범한 상황에서는 누구를 해칠 마음이 없고 자기가 한 행동이 남에게 해가 되는 행동이라는 걸 연결을 못하기 때문이에요.”

- 사회적으로 해선 안 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세세하게 교육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모르는 거네요.

“문제는 그런 행위들로 인해서 아이 자신이 처벌과 비난을 비롯한 큰 비용을 치르게 되는데도 그런 상황에 이른다는 예측을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정말 답답한 건 아이들 자신이에요. ‘나는 잘못 태어났다’는 자기비하감이 크면 극단적인 경우가 생길 수 있어요. 정서적으로 자기가 왜 화났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걱정하고 조언하는 친구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자기가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오해하기도 해요. 범죄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돈을 뺏기거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기도 합니다.”

지난 4월 KBS <시사다큐>는 술에 취해 세 명의 고등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한 13살 중학생 A양의 이야기를 다뤘다. IQ 74로 경계선 지능인 A양은 수사과정에서 집중하지 못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을 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말을 했다. 수사기관은 세 명의 가해자를 무혐의 처분했다. 우리 형사사법체계가 경계선 지능 시민에 대해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경계선 지능 장애인을 도와달라는 청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단순노동에서도 보통 지능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디게 배우고, 실수는 잦고, 융통성과 효율성은 떨어지니 경계선 지능 장애인들은 어떤 직장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나이가 들어서도 최저임금을 받는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소식에 경계선 지능 자녀를 둔 부모 마음은 무거워진다.

경계선 지능 장애를 다룬 미국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

- 강의 때 부모님들께 강조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조급해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립니다. 부모님들은 경계성 지능의 원인을 알면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원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현재 아이가 갖고 있는 모습 중심으로 봐야 합니다. 더불어 아이가 보여주는 행동은 문제행동이 아닌 교육이 필요한 행동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선을 넘지 말아야 할지 몰라서일 뿐이에요. 옳고 그름을 판단기준으로 경계선 지능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벌점을 부과해도 아이는 문제행동이 왜 문제인지 스스로 깨닫지 못해요. 예를 들어, 선생님에게 욕설을 했다면 속상하고 서운할 때의 행동방식, 사과하는 방식, 이후의 행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줘야 합니다.”

- 부모는 경계선 지능 진단을 받은 아이에게 무엇을 더 가르쳐야 할까요.

“생활의 자조 기술입니다. 화장실, 방 정리를 비롯해서 자기 연령대에 맞는 가정 내 역할을 분담하도록 하고 청소년기에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반경과 범위를 넓혀줘서 자기효능감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걱정된다고 늘 동행하기만 하면 오히려 아이가 위축돼요. 그리고 경계선 지능 아이들이 이해력을 키울 수 있도록 어휘력을 길러줘야 합니다. 독서와 대화 경험이 중요합니다. 유아기, 초등 저학년 때 독서습관을 잡아주는 게 좋아요.”

- 우리 사회가 경계선 지능 시민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경계선 지능 장애가 지적으로 어려움이 크고 발전 가능성도 없을 것이란 선입견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분들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남을 돕는 일이에요. 이들이 다양하게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을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사회가 워낙 ‘빨리빨리’ 급하기만 한데, 일을 차근차근 가르쳐주면 인정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느린 학습자들입니다. ‘같이 간다’는 측면에서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능지수는 바뀔 수 있다


지능은 여러가지 능력 종합이며 절대적이지 않다
선천적 경계선 지능보다 후천적 경계선 지능이 고치기 어려워


지능지수 ‘IQ’가 고정돼 있다는 것은 잘못된 고정관념이라고 아동심리학자인 박찬선 연아혜윰 대표는 말한다. “지능은 여러 가지 능력의 종합이며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지능검사는 1905년 프랑스의 심리학자·의사 알프레드 비네가 처음 개발했다. 박 대표는 “애초 의도가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파악해 돕기 위한 것이었다”며 “지금껏 많은 지능검사이론들이 나왔지만 100% 지능을 설명하는 이론은 없다. 지능은 우리가 만든 개념일 뿐”이라고 말했다. IQ는 인지능력 전체 중 일부 능력을 중점적으로 측정해 계량화한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고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데 필요한 기억력, 어휘력, 상황판단력, 문제해결력에 집중해서 본다. 최근 들어선 빠르게 생각하고 답하는 정보처리속도도 중요한 요소로 평가하고 있다. 지능지수를 올리려면 어느 것 하나가 아닌 여러 요소들을 고르게 개발해야 한다.

1963년 심리학자 고테스만은 타고난 IQ도 인간이 접한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IQ의 반응범위’ 이론을 제시했다.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지적장애 수준에서 평균지능 수준이나 영재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은 아동 자신의 능력에서나 전문가의 지식과 기술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한 단계 위로 향상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현대의 많은 인지발달 연구자들은 IQ 16점 정도의 향상이 가능하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평균 지능으로 태어나도 지속적 교육과 돌봄이 결핍될 경우 아동의 인지능력이 성장하지 못하면서 경계선 지능, 더 나아가 지적장애를 나타낼 수도 있다.

박 대표는 “교육환경 부재가 반드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 등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라며 “풍족한 삶이어도 부모와 자녀 간 상호작용이 부족하거나 학습을 학원에만 의존한 채 아이가 무엇을 배우고 고민하는지 관심이 부족한 가정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또 “지나치게 아이를 과소평가해 아이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지레 포기한 채 내버려 두는 등 부모로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실제로 지도해보면 선천적 경계선 지능 아동보다 후천적 경계선 지능인 경우가 더 개선하기 어렵다. 지능 문제뿐 아니라 정서적 불안정이나 욕구불만,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방식에 길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민영 논설위원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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