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겐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떤 방법으로 쓰느냐가 더 중요"

김용출 2022. 10. 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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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 문학상' 수상 中작가 옌롄커
문화대혁명기 다룬 장편 '사서'로 수상
지식인 탄압 등 中현대사 상처 재조명
언어적 서술·다양한 예술적 시도 강조
대만·홍콩서 출간.. 中 본토선 출판 금지
노벨상 단골 후보.. "아직 쓸 얘기 많아"

문화대혁명, 대약진운동과 대기근, 지식인들에게 가해진 혹독한 탄압….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참했고, 황폐했으며, 그래서 중국 사회가 가장 잊고 싶고 감추고 싶었던 시대를 되살려보고 싶었다. 펄펄 살아 뛰는 인물과 감성적인 이야기로.

음, 또 다른 ‘서랍 문학’이 될지도 모르겠군. 문화대혁명을 다룬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작가 옌롄커는 작품 출간을 염두에 두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환경’에 맞는 출판을 지향한 게 아니라, 자신의 ‘현실’을 반영하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소망했다. 이를 통해 모든 구애,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가 옌롄커가 ‘사서’로 제6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을 수상한 뒤 최근 방한해 기자회견과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강조했다. 서울 은평구청 제공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아 자유롭다는 말은 잡다한 내용을 적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글을 쓸 때 정말로, 철저하게 어휘와 서술에서 자유로워져 새 서술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새 서술 질서’ 속에서 저는 필묵과 출판의 노예가 아닌 글쓰기의 황제가 됩니다.”(‘한국어판 저자 서문’ 중에서)

장편소설 ‘사서’의 집필을 끝마치자, 그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출판사 동료들이나 책임자들에게 출간을 타진했다. 스무 군데가 넘는 출판사와 접촉했지만, 책을 출판하겠다고 나서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완곡하거나 아주 단호하게 거부했다. 어렵게 2011년 대만과 홍콩에서 출간됐다. 한국에서도 이듬해 자음과모음에 의해 번역 출간됐다. 예상대로 중국 정부는 공산당 정권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본토에서 출판을 금지했다.

‘사서’는 문화대혁명 당시 지식인들이 수용된 황하 유역의 강제노동수용소 99구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통해 권력의 무자비함과 비정함, 지식인들에게 가해진 탄압, 생존을 위한 기회주의적 처신 등을 다채롭게 그린 작품이다. 네 권의 책 ‘죄인록’ ‘옛길’ ‘하늘의 아이’ ‘시시포스의 신화’를 액자 소설처럼 배치하고 ‘밀고자’와 후일 권력자 ‘아이’ ‘작가’ ‘학자’라는 각기 다른 등장인물의 시각으로 문화대혁명의 의미와 그 상흔을 중층적으로 파헤친다.
중국 작가 옌롄커가 소설 ‘사서’로 제6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을 수상한 뒤 최근 방한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승렬 선정위원장은 ‘사서’에 대해 “문화대혁명 시절 공산당 정부의 전체주의가 개인 주체의 개별성을 어떻게 완벽하게 허물어뜨리는 폭력성을 지녔는가를 장중한 서사를 통해 그려냈다”고 평했다.

옌롄커는 영화로도 제작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비롯해 ‘사서’ ‘레닌의 키스’ 등을 펴내면서 중국 당국과 불화를 겪었다. 작품 가운데 여덟 권 이상이 중국에서 금서로 지정됐지만, 미국과 영국 등 세계 20여개국에 번역 출간돼 글로벌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최근 들어선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도 꾸준히 거론된다.

작가 옌롄커는 ‘사서’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고,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의 작가적 행로를 어디로 가고 있을까. 작가를 지난달 29일 서울 중국 프레스센터에서 내외신 기자들과 함께 만났고, 이후 다시 개인적으로 만났다.

―수상작 ‘사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서’는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책이다. 선정위원장이 거론한 문화대혁명이나 대약진, 대기근을 이야기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저에게는 소설 언어와 구조, 서술, 시시포스 신화에 대한 예술적 탐색이 더 중요하다. 한국 독자들도 작품을 읽을 때 내용뿐만 아니라 언어적 서술이나 표현 방법, 서양과 동양의 종교 같은 것들을 이해하면서 읽어주기를 부탁한다.”

―중국 문화대혁명을 다양하게 다뤘는데.

“문화대혁명은 수천 년의 중국 역사를 생각해도 거대하고 큰 사건이었다. 어떤 독특하고 잔인한 상황은 시대를 초월해 어느 시대에도 사유의 대상이 된다. (오늘날과 유사성은 없는지) 문화대혁명이 중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지금도 당시 영향이 일부 남아 있는데, 제일 큰 부분은 역시 언어다. 폭력적인 언어, 언어의 폭력성이 가장 크게 남아 있다.”

―한국에선 ‘사서’와 함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가장 화제가 됐는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와 ‘사서’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화제가 됐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론 ‘사서’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비교적 흥미롭고 읽기 쉬운 책이라면, 저는 ‘사서’에서 다양한 예술적인 창조나 시도를 했다.”

1958년 중국 허난성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옌롄커는 1979년 잡지 ‘전투보’에 단편 ‘천마 이야기’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장편소설 ‘일광유년’(1998) ‘물처럼 단단하게’(2001) ‘레닌의 키스’(2003)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2005) ‘딩씨 마을의 꿈’(2006) ‘사서’(2010) ‘작렬지’(2013) 등을 펴냈다. 제1회, 제2회 루쉰문학상과 제3회 라오서문학상, 2014년 카프카상 등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관심을 갖고 있거나 구상 중인 작품은.

“아직도 쓰고 싶은 이야기, 아마도 영원히 다하지 못할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저에겐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보다 어떤 방법으로 그 이야기를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떤 방법으로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출판 여부와 상관없이, 제가 만족할 수 있고 기존 글쓰기를 초월할 수 있는 작품을 써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꾸준히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데.

“(그는 질문을 세 번이나 받은 뒤에야 짧게 답했다) 저는 이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저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썼던 소설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다. 세계 독자들이 읽은 적 없는 작품을 쓸 것이라고 믿고 있고, 그런 노력을 하고 있으며, 그런 야심을 가지고 있다. 이 일이 가장 중요하고, 그 외의 일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옌롄커는 생활상 필요로 한 기관에 제출하기 위해 자신이 받은 각종 문학상의 증서 원본을 넣어둔 원통이 손녀에 의해 버려진 사건을 겪으면서 글쓰기의 어떤 운명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원통이 베이징 외곽의 쓰레기처리장에 버려져 찾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엔 낙담했다. 2년 뒤인 2018년, 60세 생일을 맞은 그는 홀연히 죽음을 대면하게 되고 죽음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제가 말했습니다. ‘죽음, 잘 지냈지!’ 죽음이 말했습니다. ‘살아 있군.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이 있는 건가?’ ‘가장 쓰고 싶은 소설을 아직 쓰지 못했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장 쓰고 싶어 하는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네.’ 죽음이 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조용히 서재로 돌아가서 네가 가장 쓰고 싶은 소설이 무엇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를 잘 생각해봐. 다 쓰고 나면 내가 다시 널 부르러 올게.’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약속이 생겼습니다.”(‘서면 수상소감’ 중에서)

그는 이때 비로소 손녀가 글쓰기에서 유래한 모든 영예와 허영을 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는지, 원통이 어떻게 베이징 교외 쓰레기처리장까지 가게 됐는지를 깨달았다. 글쓰기의 운명을. 만약 천국이 도서관이라면, 모든 작가의 서재는 아주 좁고 누추해서 책상 하나와 몇 권의 책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천국의 다락방이나 사랑채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다락방과 사랑채는 결코 영예의 증서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 제게는 젊은 시절의 분투와 목표가 없습니다. 생명의 마지막 구간에서 글쓰기 속에 침묵과 무언, 미소가 있을 뿐입니다. 이제 저는 철저하게 서재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투고 싸워야 하는 유일한 사람은 저 자신이고 저 자신의 펜과 원고지일 것입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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