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물가·킹달러·무역적자 위기인데..기재위 국감선 종일 '대통령실·영빈관 예산' 공방만

세종=전준범 기자 2022. 10. 4. 18:1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영빈관 신축에 비선 실세 개입?"
"대통령실 이전비용 1조원" 주장도 꺼내
추 부총리, 경제정책 아닌 정쟁 해명만
풍전등화 韓경제.."여야 힘 합쳐야 할 때"

올해 8월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5.7% 올랐다. 6%대를 기록한 7월보다는 상승 폭이 둔화했지만, 여전히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치(2%)를 3배 가까이 웃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행보로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426.5원(10월 4일 종가 기준)까지 치솟았고, 달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통화 가치는 폭락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무역수지가 25년 만에 6개월 연속 적자를 낸 가운데 올겨울 유럽발(發) 에너지 대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런 경제 위기 상황에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획재정부를 대상으로 경제재정정책 분야 국정감사를 실시했다. 윤석열 정부 경제팀이 출범한 이후 열린 첫 번째 국감인 만큼 정부 안팎의 관심도 뜨거웠다.

그러나 기재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윤 정부 경제 정책을 점검하고 대책을 주문하는 대신 대통령실 이전과 영빈관 신축 예산 등을 도마 위에 수시로 올리며 거의 모든 질의 시간을 정쟁과 대립각 세우기에 썼다. 여당 의원들도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강조하며 전 정권의 무능함을 부각하느라 바빴다. 국감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전 세계 경제가 풍전등화(風前燈火) 위기인데 정치권만 느긋하다”고 비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민주당 ‘대통령실·영빈관 예산’ 총공세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기재위 국감에 출석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입에서 가장 자주 나온 말은 ‘대통령실 이전 비용’ 또는 ‘영빈관 신축 예산’이었다. 포문은 더불어민주당 양기대 의원이 열었다. 양 의원은 “영빈관 신축 논의 과정에 비선 실세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관련 논의를 한 적 있나”라고 물었다.

추 부총리는 “대통령 비서실이 기재부 실무진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예산을 편성했던 것이다. 일일이 말하지 못하는 건 (영빈관이) 보안 시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논의 여부에 대해선 “실무진 사이에서 오가는 내용을 보고받았다. 개별 사업에 관해 직접 대화하진 않았다”고 했다.

민주당 정태호 의원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 비용을 문제 삼았다. 정 의원은 “대통령실 이전 비용을 저희가 1조원으로 추정했는데 인정하나”라고 물었다. 지난달 30일 민주당 대통령실 관련 의혹 진상규명단이 주장한 내용을 꺼내 든 것이다. 추 부총리는 “대통령실 이전 비용은 496억원 규모로 편성한 예비비와 약간의 추가 부대비용이 더 들어간 정도”라며 “1조원이 어떻게 나왔는지 사실 납득이 잘 안 된다”고 했다.

민주당은 오후 질의에서도 비슷한 공세를 이어갔다. 민주당 고용진 의원은 추 부총리에게 “영빈관 신축이 취소된 해프닝과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할 용의가 있느냐”고 했다. 추 부총리는 “외빈을 위해 필요한 시설이라는 부분과 경제가 어려운데 지금 꼭 해야 하나의 부분을 함께 고려하다가 그래도 필요하다고 판단해 예산을 편성했던 것”이라며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리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공세에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무능함을 거론하며 맞섰다.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은 “지난 5년간 정부는 기업이 사업을 일구면 포퓰리즘으로 원천 봉쇄하고, 각종 준조세 부담을 늘리고,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고, 공공부문을 방만하게 운용해 민간 부분 경쟁력을 악화시켰다”고 했다. 송언석 의원은 “2017년부터 공공기관 임직원 수가 11만4000명 늘었다. 부채가 늘고 영업이익은 추락했다”고 지적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 달러 지폐 뭉치가 놓여있다. / 연합뉴스

◇ 달러만 강세에 무너지는 韓 경제…6개월 연속 무역적자

이번 기재위 국감을 지켜본 경제 전문가들은 “갈 길 바쁜 한국 앞에 놓인 경제 위기의 심각성을 정치권만 모르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침체 상황에서 여야가 합심하지 않고 정쟁에만 몰두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우리는 과거 많은 위기 사례를 통해 경험했다”며 “국회가 경각심을 갖고 건설적인 대화에 나서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62(2020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5.7% 상승했다. 올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연초부터 3%대를 기록하다가 3~4월 4%대로 올라섰다. 이후 5월에 5%대를 기록한 뒤 6월과 7월에는 6%대까지 치솟았다. 8월 소비자물가는 6·7월과 비교하면 진정된 것이지만,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이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환율 영향 등 물가 불안 요인은 남아있다”고 했다.

물가뿐 아니라 환율도 비상이다. 미 연준의 3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 인상)’ 이후 심화한 ‘달러만 강세’에 주요국 통화 가치가 곤두박질치고 있어서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 중앙은행이 자국 화폐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선 상태다. 연준이 고물가를 확실히 잡을 때까지 공격적인 긴축 행보를 지속할 것임을 예고한 상태여서 강달러 이슈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수출 경쟁력마저 무너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2.8% 증가한 574억6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은 지난 5월 21.3%에서 6월 5.4%로 16개월 만에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이후 7월(9%)과 8월(6.6%)에 이어 지난달(2.8%)까지 4개월 연속 부진한 흐름을 지속했다.

수출은 위축하는 데 반해 수입 물가 부담은 이어지면서 지난달 무역수지는 37억7000만달러 적자를 나타냈다. 4월부터 6개월째 적자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6개월 연속 무역 적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윤덕룡 한국개발연구원(KDI) 초빙연구위원은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경상수지 흑자를 위협하고 환율 불안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