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의 과학풍경] '인종차별 거든 과학' 부끄러운 역사 고백

한겨레 2022. 10. 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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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통계학자 프랜시스 골턴(1822~1911)은 인종주의를 부추긴 우생학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우생학의 근거를 증명한다는 그의 통계학 논문은 1904년 과학저널 <네이처> 에도 버젓이 실렸다.

네이처는 곧 나올 특집호를 예고하는 이번 사설에서 인종차별 과학에 일조한 자신의 어두운 역사를 스스로 밝히고 나섰다.

네이처의 뒤늦은 고백이 더욱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우생학의 그림자인 차별과 혐오가 21세기 과학계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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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의 과학풍경]

1921년 미국 뉴욕에 열린 제2회 국제 우생학 학술대회의 포스터 그림. “우생학은 인간 진화의 자기 방향이다”라는 표어가 보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오철우 ㅣ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영국 통계학자 프랜시스 골턴(1822~1911)은 인종주의를 부추긴 우생학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869년 펴낸 책에서 “흑인의 평균적인 지능 표준은 우리 앵글로색슨족보다 대략 두 등급 낮다”고 말했다. 우생학의 근거를 증명한다는 그의 통계학 논문은 1904년 과학저널 <네이처>에도 버젓이 실렸다. 논문에서 골턴은 “영국 왕립학회 회원 가족들에 나타난 성공과 자연적 능력의 분포”를 보여주며 “이례적으로 천부적 능력을 지닌 가문이 존재하는 게 틀림없고 이들은 나라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결론을 제시했다.

지금은 널리 알려졌다시피, 우생학은 인종과 인간을 등급으로 나누고 우수 형질을 대물림하자는 인간 개조 프로젝트로 나아가며 제국주의 국가들의 차별과 혐오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이후 우생학은 과학의 이름을 빌린 ‘나쁜 과학’의 대명사가 됐고, 과학계에서 퇴출당했다.

골턴 논문이 오늘날 정통 과학을 대표하는 네이처에 실렸다는 사실은 지금 돌아봐도 부끄러운 일이다. 그 흑역사를 네이처가 지난달 29일 장문의 사설을 통해 스스로 들춰냈다.

갑작스러워 보이는 네이처의 자기비판은 2년 전인 2020년 5월 미국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사건에서 비롯했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이후 이를 규탄하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확산했고, 과학계에서도 인종차별 문제가 자성의 주제로 떠올랐다. 당시 네이처는 백인 우월주의 역사에 책임이 있다며 인종주의 종식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하고, 네명의 유색인 객원 편집위원이 특집호 발행을 준비해왔다. 네이처는 곧 나올 특집호를 예고하는 이번 사설에서 인종차별 과학에 일조한 자신의 어두운 역사를 스스로 밝히고 나섰다.

사설에는 강도 높은 자기비판이 이어졌다. 1869년 창간 이후 네이처는 백인 유럽인 중심의 ‘전용 클럽’처럼 운영됐고, 과학의 무대가 그들만의 리그처럼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다. 네이처는 제국주의 팽창과 더불어 성장했다. 생태학, 진화론, 인류학 논문들은 식민주의 흐름과 어울렸다. 네이처는 사설에서 “네이처의 많은 사료에 제국주의, 성차별, 인종차별이 스며 있다”고 반성했다.

네이처의 뒤늦은 고백이 더욱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우생학의 그림자인 차별과 혐오가 21세기 과학계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네이처는 “(우리는) 불의의 뿌리를 이해하고 대처하고자 한다. 과학 활동이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고 환영받게 하는 것이 우리 목표”라고 말한다. 흑역사를 넘어서려는 진정성에 대한 평가는 네이처가 표방하는 다양성, 평등, 포용성을 실제 어떻게 실천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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