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민의 글로벌 경제 톡톡 <26>] 공급망 혁신 민간이 주도해야..'한국판 카길' 육성

최용민 2022. 10. 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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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근 자타가 공인하는 글로벌 경제의 핵심 이슈는 공급망 관리라는 데 이견이 없을 듯하다. 물가 상승 억제라는 국내 경제 목표를 달성하고 안보를 튼튼히 하는 데 핵심적인 자원 확보가 최대 화두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를 올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통상 과제로 선정하고 출범식까지 개최하는 등 일사천리다. 

IPEF는 공급망뿐만 아니라 디지털 경제, 에너지·기후변화 대응, 선진적인 노동·환경 기준, 공정한 자유무역 환경 조성 등을 망라하는 보다 포괄적인 경제 협력 체제이자 넓은 의미의 안보 협력체다. 

미국이 선두에 서고 한국, 일본, 호주, 인도 등 쟁쟁한 나라가 모두 출사표를 던지고 같은 배를 탄 상황이다. 그러나 무역 현장에서 관세 인하 같은 손에 잡히는 실질적인 조치가 없는 선언적인 정책에서 머무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적지 않다. 정작 중국만 자극하는 등 대결 구도를 고착화해 오히려 공급망 갈라치기가 일반화해 원자재 대란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다.

공급망을 정부 간 협력체를 통해 관리한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외교적 화려함과 일사불란함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먼저, 정부가 시장 플레이어로 뛰어드는 모양새여서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당연히 상대국의 반발과 경계가 반사적으로 나타나면서 보복성 대응책이 강구된다. 그동안 문제가 없던 품목 중 어떤 것을 무기화할 것인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원자재 교역이 위축되고 수비가 아닌 공격을 위한 대비책이 검토되면서 진영 대결로 긴장도가 높아진다. 

둘째로 교역 촉진책이 아닌 규제책이 일반화하면서 단기간에 부분적인 수출입 마비는 물론 산업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원자재는 태생적으로 특정 지역(국가)에 편중돼 있고 대체를 위한 기술 진보는 엄청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정부가 공급망 관리에 전면적으로 나서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기업만큼 시장 수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집단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영역 확대는 수시로 가격이 변하고 거래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글로벌 시장 흐름과 맞지 않는다. 더구나 미국같이 글로벌 공급망을 좌지우지할 힘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 주도형 공급망 관리 정책은 한계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정부, 기업의 공급망 리스크 덜어 줘야 

정부는 정교한 정책과 외교적 뒷받침을 통해 기업을 밀어주되 본질적인 공급망 관리는 민간기업이 주도하도록 판을 깔아 줘야 한다. 공급망 관련 조기 경보 시스템을 통해 관리되는 품목이 40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주체는 민간기업일 수밖에 없다. 

우선적으로 종합상사 등 무역 업체가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하고, 그다음은 실수요 업체가 뛰어야 한다. 

기업은 상품 거래에 대한 노하우가 많은 데다 직접적인 교역이 막히더라도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우회로를 뚫을 비법을 갖고 있다. 이들이 핵심 원자재 확보에 선봉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험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산업용 요소수 문제가 불거졌을 때 실질적인 해결 수단을 제공한 곳이 종합상사였지만 같은 상황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다시는 안 나설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요소수를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입했지만 곧바로 물량 과다로 가격이 급락해 ‘애국’하려다 ‘쪽박’ 차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유가 고공행진에도 미국 셰일가스 업계가 증산하지 않는 것은 정부 정책을 믿고 증산했다가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부진으로 대대적인 손실을 본 악몽 때문이다. 

현행 환율보험제도처럼 향후 불확실한 시장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원자재를 확보한 경우 이윤은 아니더라도 원가 확보에는 문제가 없도록 디딤돌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100쪽이 넘는 정부 정책보다 효과가 큰 실질적인 원자재 확보 방안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원자재 확보 과정에서 종합상사들이 감내해야 하는 리스크나 피해를 금융 혜택을 통해 보전해 주는 방안도 중요하다. 비슷한 사례가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무역조정지원 사업’이다. 이 제도는 제조·서비스업 분야의 업력 2년 이상 기업 중 FTA에 따른 수입산 증가로 6개월, 또는 1년간의 매출액(생산량)이 작년 동기보다 10% 이상 감소한 곳에 2%대의 낮은 금리로 업체당 최대 60억원까지 6년 내에 시설 투자는 물론 운전 자금을 빌려줘 자금난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또한 농수산물의 원활한 수급과 가격 안정을 도모하고 유통 시설의 근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운용하고 있는 ‘농수산물가격 기금법’을 벤치마킹해 중요 원자재 가격 안정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고 거래 안정성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핵심 원자재에 대한 공급망 관리를 위해 확실한 거래선을 민간을 통해 복수로 확보하는 것은 대부분 단기 대책이다. 이와 함께 필수적인 중장기 조치가 해당 원부자재에 대한 해외 투자다. 정부가 공기업을 통해 직접 확보하는 것보다 민간기업이 보다 능동적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이를 위해 투자보험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 

현재도 한국무역보험공사는 국내 민간기업이나 금융기관이 해외 투자를 한 후 투자 상대국에서의 수용 위험, 전쟁·소요 위험, 송금 위험, 약정 불이행 위험, 상환 불이행 위험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을 보상하는 제도를 운용 중이다. 보상 분야에 필수 원자재 투자 분야를 추가해 해외 투자에 따른 위험으로부터 원자재 실수요자와 종합상사들을 보호함으로써 선제적으로 원자재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원자재의 원활한 확보를 위해 세제 지원도 지원책 리스트에 추가해야 한다. 원자재를 적기에 확보하는 것은 이제 최우선 국책 과제가 된 상황이다. 이를 위해 민간기업이 열심히 뛸 수 있도록 리스크를 제거하고 금융을 제공하는 직접적인 지원은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안정적인 원자재 조달선 구축은 중요 사회 인프라 건설(SOC)이라고 간주하고, 이에 소요된 비용에 세제 혜택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세계 시장 이기는 국가는 없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시장 플레이어가 아니다. 정부는 애로를 해결해주고 뒷받침해주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연구개발(R&D)과 혁신을 이끌고 이를 통해 시장 주도자인 기업이 마음껏 뛰게 만들어야 필수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정부는 지휘하고 뒤에서 조용하게 뒷받침할 때 외국과 분쟁도 소멸한다. 정부가 직접 성과를 내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시장을 관장하려고 하면 무리수가 따른다. 

민간 주도의 보다 창의적인 방안을 통해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원자재를 확보해야 한다. 치솟고 있는 곡물과 소재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한국판 카길(Cargill)’이라는 민간 차원의 글로벌 자원(곡물) 기업을 키워야 한다. 카길은 글로벌 곡물 시장을 지배하는 미국 소재 다국적 기업으로 1865년에 설립됐다. 16만 명을 고용하고 매출 규모는 포천 500대 기업 중 10위권으로 미국의 먹거리를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미쓰이물산(三井物産) 등 종합상사들이 원유, 석탄, 천연가스, 철광석 등 자원 사업에 대한 해외 투자와 글로벌 거래로 일본의 공급망을 책임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은 있어도 세계 시장을 이기는 국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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