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동의 안 하면 못하는데..20대 9% 지지율에 다시 '여가부 폐지' 꺼내든 당정
국힘도 "국감 기간 중 정부조직 개편안 발표 가능" 가세
정부와 여당이 4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여성가족부 폐지에 다시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등으로 국정 지지율 하락세가 완연한 가운데 특히 낮은 지지율을 보이는 청년층의 마음을 붙잡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다만 당 안팎에서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 등 여성 정책의 필요성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야당을 설득할 방법도 없이 국면 전환을 위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당정은 지난 3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여가부를 폐지하는 대신 고용과 관련한 기능은 고용노동부로, 이외의 기능은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 출산 등 전담 기구를 만들어 이관하기로 뜻을 모았다. 복지부 산하에 신설되는 기구는 차관급 지위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차관급보다 너무 격을 낮추면 반발이 있을 수 있으니 차관급으로 높이자는 얘기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드라이브를 걸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대책회의 직후 기자들이 ‘정부조직 개편안이 국감 기간 중에 발표될 수 있나’라고 묻자 “국감 기간 중에 발표될 수도 있다고 본다”며 “정기국회 중에 결론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여가부 폐지를 의원 입법 형태로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 5월 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발의한 법안 대신 새로운 법안을 발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정이 갑작스레 여가부 폐지를 들고 나온 것은 최근 하락하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1월 지지율이 급락하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20%대까지 떨어진 지난 7월에도 윤 대통령은 “여성가족부 폐지 로드맵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비속어 논란이 불거진 최근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지난달 27~29일(9월5주차) 전국 성인 1000명에게 조사한 결과 국정 지지율은 24%(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를 기록했다. 그 중에서도 18~29세 청년층 지지율은 9%로, 전주 조사보다 12%포인트 하락했다. 30대 지지율도 15%로 10%대였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갑자기 안건이 생긴 건 아니고 비공개 안건이었다”며 “(여가부 폐지는) 공약이고 하기로 돼 있었던 건데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당 일각에서는 다수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를 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분위기 반전을 위해 여가부 폐지를 추진해 구호에만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야당을 설득할 제대로 된 방안도 없이 폐지만을 추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여가부를 폐지한다면) 여가부 기능을 어떻게 제대로 살리는가를 봐야 할 것 같다”며 “야당이 동의를 안 해주면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정부조직법도 안 바꾼 바보들이라고 했더니 이 타이밍에 이걸(정부조직법) 건드는 더 바보짓을 한다”며 “해야 할 시점에는 안 하고 안 해야 할 시점에 한다”고 비판했다. 야당의 반대가 덜한 허니문 기간을 놓쳤다는 것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7월 인터뷰에서 “인수위에서 ‘병사 월급 200만 원’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상징적 공약부터 밀고 나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걸 안 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의 여가부 폐지 추진에 비판 의사를 밝혔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전 서면 브리핑에서 “외교참사 국면 전환을 위해 여가부 폐지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이겠다는 것인가”라며 “여가부 폐지에 대한 국민의 우려와 반대 목소리를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듣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모른 척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등 여가부의 역할이 더욱 요구되는 사회 분위기와 동떨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대통령의 무능이 드러날 때마다 여가부 폐지를 휘두르는 구태정치의 전형”이라며 “대통령의 안일한 현실 인식이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과 디지털 성폭력의 반복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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