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조사하라" 인도네시아 축구장 참사에 커지는 진상규명 목소리

김서영 기자 입력 2022. 10. 4. 16:04 수정 2022. 10. 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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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동부 자바주 말랑 칸주루한 경기장 인근에 4일(현지시간) 사람들이 모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축구장 참사’ 희생자가 125명으로 최종 집계됐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경찰의 과잉 진압을 규탄하고 진상을 규명하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4일 현지 매체 안타라통신을 보면, 인도네시아 보건부는 동부 자바주 말랑 칸주루한 경기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숨진 이들의 명단을 최종 정리했다. 3일 기준 정부가 집계한 사망자는 125명이며, 치료 중인 환자는 26명이다. 사망자 중엔 4~17세 여아 8명과 남아 25명 등 33명의 아동이 포함됐다.

이번 참사는 지난 1일 저녁 칸주루한 경기장에서 인도네시아 프로축구 1부 리그(BRI리가1) 아르마FC와 페르세바야 수라바야 간 경기가 끝난 뒤 발생했다. 이날 홈팀인 아르마FC가 3-2로 패배하자 흥분한 아르마FC 팬들이 경기장 안으로 난입했다. 경찰이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최루탄을 쏘자, 최루탄을 피하려는 인파가 출구 쪽으로 달려가다 넘어지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사상자 대다수가 특정 출입구에서 발생했다.

세계 축구 사상 손꼽히는 이번 참사를 두고 경찰의 과잉 대응이 비판에 올랐다. 관중들이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가 압사하거나 질식사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현지 경찰이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최루탄을 쏘기 전 예방조치를 했다”고 해명했으나, 이에 상반되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한 목격자는 “경찰이 최루탄을 그라운드로 내려간 팬들 뿐 아니라 관중석에 남아있던 관중들에게도 쐈다.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았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또 다른 팬은 “최루탄 가스에 목이 졸려와도 관중석에서 버텼다. 20년 동안 아르마FC 팬으로 살아오면서 그날 밤만큼 무서웠던 적이 없다”고 했다.

이번 참사로 친구 둘을 잃은 한 청소년은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한 이후 친구들이 다시 관중석으로 달려갔다.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왜 경찰에 구타당했는지도 모르겠다”고 CNN인도네시아에 말했다. 이름을 조슈아라고 밝힌 한 생존자는 사망자 대부분이 관중석에 있던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관중석에 최루탄을 쏘는 바람에 출구를 통해 나오거나 피할 곳을 찾아 많은 이들이 그라운드로 내려갔다. 자기 자신을 구하려고 한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한 아르마FC 팬이 4일(현지시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칸주루한 구장을 찾아 울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무엇보다도 국제축구연맹(FIFA)는 축구 경기에서 경찰과 안전요원이 최루탄 등을 소지·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국제앰네스티 인도네시아 등을 비롯한 인권단체는 인도네시아 당국에 최루탄 소지·사용을 비롯한 대응 조치를 투명하게 조사하라고 촉구한 상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이누딘 아말리 청소년스포츠부 장관 등 13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아울러 말랑 경찰서장 외 경찰 고위직 9명이 해임됐으며 경찰 관계자 18명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 안타라는 조사가 2주에서 한 달 가량 지속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경찰의 과잉진압은 인도네시아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국제앰네스티는 2020년 한 해 인도네시아 15개 주에서 경찰의 무력 행사로 희생자 411명이 발생했다고 밝히며 경찰의 폭력 진압과 과잉 대응을 지적한 바 있다. 2019년 수도 자카르타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재선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는 동안 경찰이 10명을 사살했다. 지난 4월 테르나테에서 학생 시위대에 최루탄을 발사해 3명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경찰이 과잉진압으로 처벌받은 전례가 드물다고 NYT는 지적했다. 위랴 아디웨나 국제앰네스티 인도네시아 부국장은 “경찰력의 과도한 사용에 대한 재판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자퀴 페이커 호주 머독대 교수는 “(이번 사태는) 지난 20년 간 인도네시아 경찰 개혁이 실패한 결과”라며 “개선점이 종종 경찰 당국에 전달됐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밝혔다. NYT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경찰의 최루탄 예산은 2020년 전년 대비 6배 증가했다. 올해 경찰 예산은 2013년의 2배가 넘고, 그 증가량의 대부분은 최루탄, 곤봉 및 방독면에 사용됐다.

칸주루한 경기장에서 발생한 참사를 추모하기 위해 4일(현지시간) 추모객들이 경기장 인근에 모였다. AFP연합뉴스

참사가 발생한 칸주루한 경기장 인근을 포함한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추모집회가 일어났다. 소셜미디어엔 ‘칸주루한을 위해 기도하자’는 해시태그가 번졌으며, 경기장 주변에도 추모의 꽃이 놓였다. AFP통신에 따르면, 칸주루한 경기장 벽면엔 ‘내 형제들이 살해당했다. 철저히 조사하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경찰은 모두 나쁜 놈들이다’(All Cops Are Bastards)의 약자 ‘ACAB’가 곳곳에 적혔다.

참사 현장에 있었던 무하마드 파미(22)는 이번 경험이 축구에 대한 생각을 뒤바꿔놨다고 CNN에 밝혔다. 그는 “평생 축구를 보고, 하고, 응원하면서 자랐다. 그런데 축구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축구가 없다고 해서 죽지는 않지만, 축구를 보면서는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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