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 시대의 '갈라파고스'[이종섭의 베이징 리포트]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2022. 10. 4.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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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둥성 선전시의 봉쇄 지역 주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며 봉쇄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홍콩 명보 캡처·연합뉴스

중국 서남부 구이저우성(貴州)에서 지난달 18일 새벽 버스 1대가 전복됐다. 버스에는 구이저우성 성도 구이양(貴陽)을 출발해 남동쪽으로 200㎞ 떨어진 첸난부이족먀오족자치주 리보(荔波)현으로 가던 주민 45명과 운전기사 등 47명이 타고 있었다. 27명이 숨지고 20명이 다치는 대형 사고였다. 인명피해도 인명피해지만 중국 내에서는 사고가 일어난 경위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사고 버스는 코로나19 격리 대상자들을 다른 지역의 격리 시설로 이송하던 중이었다. 중국은 아직도 감염자가 1명이라도 발생하면 밀접 접촉자는 물론 2차 접촉자까지도 시설에 강제 격리시키는 강력한 코로나19 방역정책을 취하고 있다. 사고 당시에도 한 아파트 단지에서 감염자와 같은 동에 사는 주민들이 시설로 이송되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상에서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당국이 외부 접촉과 노출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새벽에 주민들을 이송했고 운전자가 시야를 방해받을 수 있는 방호복을 입고 있어 사고 위험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과도한 방역정책이 결국 참사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언제 똑같은 일이 자신에게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표출했다.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제로(0) 코로나’ 정책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벌써 3년 가까이 강도 높은 방역정책이 이어지면서 당과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 경향이 짙은 중국인들의 인내심도 임계점에 다다른 모습이다. 지난달 말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시에서는 코로나19 봉쇄에 항의하는 주민들의 시위도 벌어졌다. 수천명의 주민이 경찰과의 대치 속에 봉쇄 해제를 요구하며 ‘자유를 달라’고 외쳤다. 중국에서는 보기드문 광경이다.

최근 중국의 유명 보수 논객도 현재 방역정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후시진(胡錫進) 전 환구시보 총편집인은 중국의 국경 개방에 대한 찬반 논란을 소개하면서 “반개방파도 대부분 자의적인 ‘정태관리(봉쇄)’와 과도한 방역에 반대하며 일률적인 방역은 관료주의 때문이라 여긴다는 점에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세계 각국이 코로나19와 전쟁에서 패배해 그 결과를 모두 받아들였지만 중국만 여전히 싸우고 있다”며 “끊임없는 저울질 속에서 상대적으로 폐단이 가장 적은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관변 논객으로 잘 알려진 후 전 편집인의 견해는 중국 내에서도 방역정책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방역 완화와 국경 개방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때마침 홍콩은 지난달 26일부터 해외입국자의 호텔 격리 규정을 없애 중국 본토와는 다른 국경 개방의 길을 선택했다. 대만도 오는 13일 해외입국자 격리 규정을 폐지한다. 포스트 코로나와 엔데믹 시대에 중국만 점점 세계와 단절된 ‘갈라파고스’가 되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안팎에서는 오는 16일 시작되는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이후를 주목한다. 당 대회가 끝나면 방역정책의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다. 하지만 짧게는 내년 3월, 길게는 앞으로 1~2년 뒤까지도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결단이 늦어질수록 고립된 섬에 갇힌 인민들의 아우성은 커져만 갈 것이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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