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초점] 마릴린 먼로 픽션 영화 '블론드'가 놓친 것

류지윤 2022. 10. 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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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서 공개
앤드류 도미닉 연출

넷플릭스 최고 수위(NC17 등급)을 받아 화제가 됐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블론드'가 공개됐다. 그러나 베일을 벗은 이 작품의 진짜 문제는 수위가 아닌, 마릴린 먼로를 대하는 시각이었다. '블론드'는 할리우드 최고 스타 마릴린 먼로의 삶을 조명했지만 전기 영화는 아니다. 마릴린 먼로의 다사다난한 인생에 상상력을 더한 조이스 캐럴 오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즉 실제로 마릴린 먼로의 삶을 기반으로 허구적인 이야기들이 삽입돼 있다.


'블론드'는 마릴린 먼로가 정신분열증이 있던 어머니 밑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입양과 고아원을 전정 긍긍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후 할리우드에 입성해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면에 아버지로부터 구원을 바라는 결핍, 여러 남자들과의 사생활, 실패한 결혼, 반복된 임신과 낙태, 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과의 스캔들에 집중했다.


앤드류 도미닉 감독의 손에서 166분 동안 상상력이 가미된 마릴린 먼로의 불행이 조각돼 극대화 됐다. 영화가 실제의 이야기라고 밝히지 않은 채, '블론드'를 실제 마릴린 먼로의 삶이라고 착각할 만한 여지들이 다분하다. 사실과 픽션의 경계를 오가며 마릴린 먼로의 출연작들과 이미지들을 그대로 재현했으며 무엇보다 마릴린 먼로를 연기한 아나 데 아르마스가 비주얼과 목소리까지 표현했다.


영화의 가장 큰 아쉬움은 마릴린 먼로가 아버지가 언젠가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할리우드의 시스템 내에서 착취와 학대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한 채 약물로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단조로운 인물로 그렸다는 점이다.


특히 픽션으로 그려진 부분이 확인되지 않은 마릴린 먼로의 추문을 연상시킨다는 점이 불쾌감을 안긴다. 영화 제작사 대표에 의한 강간, 찰리 채플린 주니어와의 임신, 존 F. 케네디와의 스캔들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커뮤니티에서는 '블론드'의 시청 거부 바람이 불고 있다. 마릴린 먼로가 생전에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불안, 결핍, 금발의 백치미 등의 이미지에 가둬놓고, 조롱했다는 실망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마릴린 먼로는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욕망과 돈이 투영된 시스템 내에서 고군분투해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오른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여배우 최초로 독립 레이블을 설립했으며 인종차별 반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마릴린 먼로는 '금발의 백치미' 이미지로 소비됐지만 실제 톨스토이를 비롯한 작가들의 저서 200여권을 보유했으며, 독서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모 뿐만 아니라 연기, 노래, 모델 등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재능을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도 했다.


마릴린 먼로의 성취나 노력에 대한 설명에 대해선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과잉된 고통으로 계속 밀어 넣을 뿐이다.


흑백과 컬러 장면을 오가며 영화의 톤을 맞추고 미장센도 훌륭하다. 마릴린 먼로를 연기한 아나 데 아르마스의 열연 역시 뛰어나지만, 시대의 아이콘을 배려하거나 존중하는 시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실존 인물들은 영화계에서 거부하지 못하는 매력적인 소재다. 실제를 기반으로 만들되 허구의 이야기를 더하더라도 실존 인물을 다룰 땐, 사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걸 우선으로 한다. 이런 점을 잘 활용해 호평을 받았던 영화 '스펜서'가 떠오르며 '블론드'가 더욱 아쉬워진다.


'스펜서' 역시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영국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찰스 왕세자의 불륜과 왕실의 냉대로 인해 힘들어했던 이야기를 집중 조명했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다이애나비의 실제 이야기에 다이애나비가 느꼈을 법한 심리적인 고통을 상상력으로 만들어냈다. 특히 헨리 8세에게 처형당한 왕비 앤 불린의 환영을 더해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몰입감을 줬다. 다이애나란 얼굴 뒤에 불안을 느꼈던 스펜서의 이야기에 누구도 불쾌해하지 않았다.


'블론드'에서 마릴린 먼로는 자신의 영화 '나이아가라'가 끝난 후 '나이아가라와 마릴린먼로,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구경거리'라는 광고 문구를 본다. '블론드'가 마릴린 먼로를 대하는 태도가 가장 잘 투영된 한 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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