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 현대 인류의 기원과 특성을 고유전체학으로 밝히다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입력 2022. 10. 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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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는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 AP/연합뉴스 제공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 교수의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은 지난 10년 간 그가 개척한 고유전체학(Paleogenomics) 연구자로 살아 온 필자에게 무척 특별하게 다가왔다. 노벨 생리의학상이 인류 진화유전학 분야를 수상 대상으로 고려했다는 것이 무척 생경하면서도, 만약 이 분야에 노벨상이 주어진다면 반드시 수상자가 되리라 모두가 짐작했던 페보 교수의 수상은 당연한 일로 느껴졌다.

페보 박사의 연구 분야인 고유전체학은 준화석 상태의 뼈와 같은 오래된 생체조직에서 유전물질인 DNA(디옥시리보핵산, deoxyribonucleic acid)를 추출하고 DNA를 구성하는 염기서열을 해독한 후, 이를 진화 이론을 통해 해석함으로써 집단의 역사와 집단 사이의 관계를 추론하는 학문이다.

페보 박사의 공로는 1980년대 막 시작됐던 고시료 염기서열 분석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이 분야를 개척한 기술적 업적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고유전체 연구를 우리 인류가 속한 종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해부학적 현대인의 기원과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틀로 제시했다는 데 있다. 해부학적 현대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우며 상당 기간 지구상에 공존했던 대표적 고인류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 해독이 그의 핵심 연구 업적이다.

2022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 AP/연합뉴스 제공

네안데르탈인과 현대인의 유전적 관계는 현대인의 진화적 기원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페보 교수가 1987년부터 1990년까지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했던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앨런 윌슨(Allan Wilson) 교수 연구진은 당시 현대인 기원에 대한 논쟁에 유전학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중이었다.

1987년 네이처 논문을 통해 모든 인류의 모계 공통 조상인 “미토콘드리아 이브”의 연대가 약 20만 년에 불과해 이보다 오래 전에 등장한 네안데르탈인이 현대 유럽인의 직계 조상일 수 없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 대표적인 초기 연구이다. 이후 유전자 염기서열을 통한 인류 역사 연구는 꾸준히 활발하게 계속되었지만 현대인 시료만으로는 먼 과거를 추론할 때 발생하는 큰 오차범위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페보 박사와 고유전체학이 가져온 충격은 인류의 유전적 과거를 통계적 추론의 대상에서 실험적 관찰의 대상으로 바꾸었다는 데 있다. 수련 과정과 초기 교수 생활 동안 꾸준히 시도해 왔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연구를 1997년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를 설립하고 디렉터(소장)로 부임하며 본격적으로 발전시켰고 이는 2006년 핵유전체 일부 해독, 2008년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완전 해독, 2010년 유전체 초안 해독이라는 경이로운 성과로 이어졌다.

러시아 알타이 산맥의 데니소바인 동굴에서 스반테 페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의 모습. 토론토대 제공

이를 통해 네안데르탈인이 현대인과는 약 55만 년 전에 갈라진 별개의 집단이고 현대인은 약 20-30만 년 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것임을 확고히 증명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아프리카 밖으로 이주한 현대인의 조상이 약 6만 년 전 중동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혼합됐음을 밝혀, 우리와 같은 유라시아 사람들은 유전체의 약 2퍼센트 정도를 네안데르탈인 조상에게서 물려받았다는 것이 처음 알려지게 됐다.

페보 박사의 고인류 유전체 연구는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초안에서 그치지 않았다. 남시베리아 데니소바(Denisova) 동굴에서 발견된 손가락뼈에 대한 유전체 분석을 통해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데니소바인이라는 새로운 고인류 집단을 찾아낸 것이 대표적이다.

데니소바인은 유라시아 동부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의 자매 집단인데, 이들 역시 현대 뉴기니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조상과 혼합됐고, 티베트인의 조상과도 혼합해 티베트인의 대표적인 고지대 적응 유전자인 EPAS1 유전자를 물려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안데르탈인 유전체의 목록도 꾸준히 늘어나 이제는 유럽에서 알타이 산맥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얻은 열 명이 넘는 고인류 유전체가 발표됐고 이를 통해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네안데르탈인의 진화사에 대한 귀중한 정보가 축적되고 있다.

페보 소장의 가장 잘 알려진 업적은 2008년 러시아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멸종 인류 ‘데니소바인’의 DNA를 바탕으로 해당 고대인의 유전자 지도를 해독한 것이다. 당시 데니소바인의 손가락 부분 뼈에서 채취한 손상된 DNA를 재조합했다. 노벨상위원회 제공

고인류 유전체는 인류 진화의 이해 외에도 우리의 건강과 복지에 대한 유전학 연구에도 큰 함의를 갖는다. 사람들 사이의 유전적 차이가 질병 감수성, 약과 치료에 대한 반응 등 다양한 형질에 영향을 미치고 이 유전적 차이의 상당 부분을 고인류에게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중증화 가능성을 낮추는 12번 염색체 상의 변이가 네안데르탈인 조상에게서 유래했다는 페보 박사의 최근 연구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표현형의 다양성을 조사하는 이른바 “심층표현형연구(deep phenotyping)”가 계속되면 고인류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기능이 더욱 확실히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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