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예능 속 아이들, 괜찮은 걸까? [놀이터통신]

임지혜 입력 2022. 10. 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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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경수술하는 모습·성기 만지거나 욕하는 아이, 여과 없이 방송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 "온라인에 박제, 아이 과거 삶 소환 "
KBS2 예능 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이하 살림남2)가 지난 17일 미성년자 출연자의 포경수술 장면을 방송해 논란에 휩싸였다. KBS 시청자 청원에도 관련 항의가 빗발쳤다. 사진=방송화면, KBS 시청자 청원 게시판 캡처

단체로 포경수술을 받은 아이들이 허리를 숙인 채 어기적 걸으며 “못 움직이겠다”고 고통을 호소합니다. 이 모습에 박수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최근 논란이 된 KBS2 예능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살림남2)’의 방송 내용입니다. 

TV 속 가족 관찰 예능 프로그램 속 아이들의 사생활이 공개되고 인격권이 침해당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 등에도 성기를 만지는 아이, 타인을 향해 거친 욕설을 내뱉거나 때리는 아이, 이혼 위기 가정에서 불안에 떠는 아이 등의 모습이 그대로 방송을 탔습니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자라 자신의 어린시절 모습을 온라인에서 보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온라인에 퍼지는 아이 사생활…“아동, 가십거리 되지 않게”


물론 이같은 가족 관찰 예능은 실제 생활을 기반으로 출연자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습니다. 상담소에 가지 않아도 방송을 보는 이들에게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어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도 큽니다.

하지만 방송에 나온 아이들의 모습은 장면마다 캡처돼 온라인에서 떠돕니다. 실제 블로그와 카페, 커뮤니티, SNS에서 검색하면 수년 전 방송에 공개된 아이들의 얼굴과 행동을 일일이 캡처한 게시물이 수없이 쏟아집니다. 방송 영상은 삭제해도 이같은 개인의 기록을 전부 삭제하긴 어렵습니다. 부모는 간절한 마음에, 고민 끝에 공개적인 방송 출연을 결정했지만 자칫 아이에겐 평생 꼬리표가 될 수도 있는 셈입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걱정이 되는) 그런 경험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전 국민이 보는 TV에서 벗겨진다면 어떨까. 영상은 지워질 수 있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 아이는 지워지지 않는다”

최근 기자와 만난 심리상담가 A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담가의 직업윤리에서 중요한 ‘비밀유지’가 지켜지지 않은 채 자극적인 소재로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한 아이들이 가십거리가 되는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습니다. 

이런 방송을 보는 게 불편하다는 부모들도 적지 않습니다. 세 자녀를 둔 김기형(40)씨는 “단체 포경 모습을 방송으로 내보냈다는 것에 얼마나 사회가 남성성을 가볍게 생각하는지 개탄스러웠다”며 “일반인 부모와 아이의 동의를 얻었다고 해도 아직 미성숙한 미성년자를 공개적으로 방송에 내보내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단순한 육아 방송도 아니고 아이의 문제를 보여주는 방송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경기도 광명에서 3세 아이를 키우는 이지영(34)씨는 “아이의 사생활이 과도하게 방송에 노출되는 것 같다”며 “아이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명목으로 아이의 인격권을 침해해도 되는걸까”라고 말했습니다. 

채널A ‘금쪽같은 내새끼’ 방송화면 캡처

“보호자가 동의? 개인정보 결정권=아동”


예능 방송 속 아동의 잊힐 권리를 위한 제도와 관심도 매우 낮은 게 현실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5월 아동을 성적 대상화하는 듯한 클립 영상 제목을 홍보에 사용한 방송사와 포털사이트를 상대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했는데요. 하지만 심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영상을 공개한 주체들이 심의가 진행되기 전 논란이 된 영상들의 제목과 URL을 변경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세이브더칠드런은 방심위로부터 “문제가 된 콘텐츠를 찾을 수 없어 심의가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미 단시간만에 관심이 쏠리면서 많은 사람이 영상을 봤지만 심의 전 영상의 제목 등을 고쳤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입니다. 또 불법 정보나 유해정보로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 이상 규제 조치가 이뤄지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 강미정 권리옹호부문 아동권리정책팀장은 “예능 방송에 출연하는 아동들이 ‘이미지·영상이 공개됐을 때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어른들이 정보를 제공하고 그 동의를 구했을까’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게 제 생각”이라며 “실수하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아동발달기적 특성이 있는건데 이런 부분이 온라인상에 기록처럼 박제돼 그 아이의 (과거) 삶이 소환될 것이다. 이는 현재 평판이나 친구들과의 관계, 자신의 명예 등 미래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팀장은 “일부 가족 예능 방송 제작자들은 ‘보호자가 동의했다’고 말하지만 이는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 결정권이 보호자에 있다고 생각하는 낮은 인식”이라며 “아동도 자신의 삶을 어디까지 공개하고 누구에게까지 공개할지, 공개를 원하지 않을 때는 철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주체이다. 사회적인 인식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오는 2024년까지 아동·청소년 개인정보보호법을 만들겠다는 계획입니다. 김 팀장은 “시범 사업 설계에서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기록들이 어떻게 퍼지는지 이런 부분을 잘 고려해 세심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 법적으로도 사각지대가 없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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