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쌀 시장가격으로 의무 매입" vs "과잉생산 심화, 재정도 악화"

박천학 기자 2022. 10. 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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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정기국회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가운데 한 들녘에서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청주에서는 농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충북 청주 상당공원에서 쌀값 안정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강원 홍천의 한 미곡종합처리장에서는 쌀이 적재되고 있다. 연합뉴스

■ 10문10답 -‘양곡관리법 개정안’ 갑론을박

3% 초과생산 5% 가격하락 땐

野 “수확기 강제 시장격리 하라”

의석 수 앞세워 입법 강행 의지

생산보다 소비량 감소 더 빨라

쌀 공급과잉 구조화 심각해져

농민, 목표 가격제 등 안정 요구

與 “文정부 수급추정 실패 결과”

축·수산업 등과 형평성 문제도

黨政, 일단 올 90만t 매입·격리

정부, 직불금 통해 보전해줬지만

재고 늘고 만성적 가격하락 발생

전략작물 등 생산구조 변화 모색

안동=박천학 기자, 이후민·이은지·박정민 기자

쌀값 폭락 현상으로 과잉 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169석의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개정안을 단독으로 처리하자 여당인 국민의힘이 반발하고 나선 상태다. 여기에 정부도 “쌀 과잉생산이 우려된다”는 견해를 밝힌 상태여서 대립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갑론을박하는 사이, 쌀값 하락에 성난 농민은 논을 갈아엎으며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1. 민주당 추진 새 양곡관리법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쌀 가격이 5% 넘게 떨어지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초과 생산된 쌀을 매입(시장격리)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에는 매입 기준이 정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고 매입도 의무규정이 아니라 ‘매입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쌀값 폭락에도 정부가 쌀을 추가 매입하지 않자 민주당은 농민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시장격리를 촉구하기도 했다. 개정안은 매입 시기도 구체화했는데, 쌀은 시장가격으로 수확기에 매입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또한, 쌀 초과 생산 및 쌀값 하락을 막고자 벼 이외의 타 작물의 재배 면적을 연도별로 관리하고 관련 시책을 수립·추진하도록 하며 타 작물 재배에 대한 재정적 지원 근거도 마련했다. 민주당은 신정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위 개정안을 ‘쌀값 정상화법’으로 명명하고 이번 정기국회 주요 입법 과제로 채택했다.

2. 포퓰리즘 비판 근거는

국민의힘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민주당의 당리당략에 따른 포퓰리즘 입법 과제라고 비판하고 있다. 남는 쌀을 국가가 의무로 매입하게 하면 쌀 공급 과잉을 심화할 뿐 아니라 국가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은 쌀값 폭락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정책 실패로 인한 영향이 더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에서 “2020년 수급추정에 실패해 과잉 방출한 30만t이 쌀값 하락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며 “2021년도에는 벼에서 쌀을 생산한 통계치를 제대로 뽑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보조금을 주는 타 작물 재배 지원 사업이 문 정부 당시 폐지된 것도 쌀값 폭락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타 농·축·수산업과의 형평성도 문제로 제기된다. 성 정책위의장은 “타 작물이 시장 필요량보다 더 많이 생산되면 그 작물도 정부가 사야 한다는 논리가 생성된다”며 “한정된 예산이 이쪽에 집중되면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지 못한다”고 했다.

3. 국내 쌀 생산 추세

쌀 생산량은 줄어드는 추세다. 농업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양적 측면보다 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쌀 생산액의 경우 2005년 8조5000억 원에서 2020년 8조4000억 원으로 줄었지만, 전체 농업생산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24.3%에서 16.9%로 떨어졌다. 이는 농가 고령화와 벼 재배면적 감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높아져 생산인구는 줄어도 생산량 자체는 많이 줄지 않은 탓이다. 논농사의 기계화율이 98.6%(밭농사 61.9%)라는 점 역시 높은 생산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소비는 더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연간 1인당 쌀 소비는 2005년 80.7㎏에서 2021년 56.9㎏까지 떨어졌다. 쌀 생산량 감소보다 소비량 감소가 더 빠르게 진행돼 구조적인 공급과잉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4. 양정제도의 변화와 현 실태

양정제도는 1950년 제정된 ‘추곡수매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추곡수매제는 정부가 농민에게서 직접 생산한 벼를 수매해 가격을 결정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2005년 폐지되기까지 반세기 넘게 시행됐다. 이후 수매제도와 병행돼야 할 방출제도의 한계로 양곡관리의 재정 규모와 관리적자 증가, 민간 유통 기능 위축이 문제가 됐고,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인해 양곡 수매에 따른 총 보조상당액(AMS)을 매년 일정 수준 감축해야 한다는 조건을 따라야 했다. 정부는 추곡수매제 대신 ‘공공비축제’를 시행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일정 분량의 쌀을 시가로 매입해 시가로 방출하는 제도다. 이와 함께 정부는 쌀 변동직불금 등의 보조금 정책을 통해 쌀 농가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쌀 소비가 줄어들며 산지 재고가 늘어나고 보관·관리비까지 급증하면서 정부로선 재정부담이 커지는 모습이다. 8월 말 기준으로 농협이 가진 재고만 31만t으로 전년 동기 보다 16만t이 많은 상황이다. 2년 동안 격리된 쌀을 보관하는 데만 8470억 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5. 당정 45만t 시장격리 매입한다는데

정부는 올해 수확기 공공비축미를 45만t 매입하고,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 쌀 45만t을 추가 수매해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했다. 앞서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달 25일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시장에서 다 팔리지 못하고 남는 쌀 45만t을 국가 재정으로 사들이기로 했다. 올해 수확기인 10~12월 쌀 45만t을 매입, 시장에서 격리하는 것이다. 2005년 공공비축제 도입 이후 수확기 시장격리 물량으로는 최대치다. 격리 물량은 올해 초과 생산이 예상되는 25만t보다 20만t 많은 수치다. 정부는 과거 사례에 비춰 이번 수매에 잠정적으로 1조 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격리 물량과 별개로 정부는 수확기에 공공비축미 45만t을 매입한다. 정부가 올해 수확기에 적극적인 시장격리, 공공비축미 수매 정책을 펴기로 하면서 총량으로 거의 100만t에 가까운 물량이 시장에서 격리되는 효과가 생기는 셈이다. 시장에서 격리되는 90만t은 올해 쌀 예상 생산량의 23.3%에 달한다. 지금껏 수확기 시장에서 격리되는 비율은 8.3~18.1% 수준이었다.

6. 농민 시위 현황 및 요구 조건은

농민들은 안정적인 쌀값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연일 개최하고 있다. 전남, 충남, 경남·북 등 쌀 주산지 곳곳에서 삭발 항의, 논 갈아엎기 등을 이어가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 중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오는 11월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농민들은 올해 물가는 5% 이상 상승했지만, 쌀값은 45년 만에 최대로 폭락해 손해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밥 한 공기(100g)에 300원이 돼야 그나마 생계를 유지하는데, 지난달 25일 기준 20㎏ 정곡 산지 쌀값(4만393원)으로 치면 밥 한 공기는 약 202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양곡관리법을 개정해 생산량이 예상소비량보다 3% 초과하거나 시장 평균 가격이 5% 이상 하락하면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라고 요구 중이다. 아울러 최저임금제 보장처럼 목표가격제를 도입해 공정한 가격에 쌀 가격이 형성되도록 할 것도 촉구 중이다. 또 수입쌀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에 대한 재협상도 필요하다고 한다. 이 물량은 연간 40만8000t이다. 농민들은 이 물량이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며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7. 쌀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은

통계청이 지난해 논벼 재배농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a(1000㎡) 1기작 기준 쌀 생산에 투입된 비용은 직접 생산비로 종묘비 2만4666원, 비료비 5만1984원, 농약비 3만780원, 농기계비·영농시설비 3만4527원, 노동비 18만7653원, 위탁용역비 12만6296원 등 총 50만266원이다. 여기에 간접생산비로 토지용역비 28만4269원, 자본용역비 7730원 등이 투입돼 직간접 생산비 총액은 79만2265원이다. 또 연간 쌀 생산량은 정곡 기준 530㎏으로 산지 가격은 129만4243원(20㎏ 기준 4만8839원)이다. 이에 따라 쌀 생산액에서 직간접 생산비를 뺀 순수익은 50만1978원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올해는 물가상승으로 지난해 대비 농업용 면세유 100% 이상, 비료비 45%, 농기계비·영농시설비 20% 이상, 농약비 10% 이상, 노동비 10.7% 정도 오르는 등 직간접 생산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으로 농민단체는 분석했다. 이 때문에 올해 쌀값을 감안하면 영농 자재비 대출금 이자 상환조차 못 할 정도로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게 농민들의 입장이다.

8. 쌀 농가 소득보전을 위한 정부 정책

정부는 ‘식량안보’를 명분으로 다른 품목과 달리 쌀 농가에 대해선 가격 등락에 따라 소득을 보전해주는 정책을 폈었다. 2002년 시행된 ‘쌀소득보전금제’가 대표적이다. 당해 연도에 생산한 쌀 가격이 기준가격보다 하락한 경우 하락액의 일정분을 정부가 농업인에게 보전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이후 2004년까지 시행되다가 2005년부터 ‘쌀소득보조금제’로 바뀐다. 통상 ‘쌀직불금제’로 불린다. 정부는 단위 면적당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변동직불금’과 수확기 평균가격이 목표가격에 미달하는 경우 보조금을 주는 ‘변동직불금’ 제도를 병행해 시행했다. 쌀 농가로선 쌀값과 직불금을 함께 챙길 수 있었다. 이 제도로 농가수취액은 쌀 목표가격 대비 평균 99.4%에 달해 소득 보전이라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보조금의 지급으로 인해 쌀의 초과공급(연평균 약 30여 만t)과 이에 따른 재고 증가, 만성적인 쌀값 하락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쌀 공급과잉 유발을 막고 타 작물과의 형평성 문제, 소농 보호 한계 등을 해결하기 위해 2020년부터 ‘공익직불제’를 시행 중이다. 이와 병행해 ‘수급안정제’를 도입해 초과 생산량, 산지 쌀값 등 일정 요건 충족 시 정부가 시장격리를 통해 쌀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했다.

9. 민주당 입법강행 및 거부권 전망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우선 처리할 7대 법안에 포함해 입법 강행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15일 국회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킨 뒤 26일 전체회의에 상정했다. 이에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은 여야 합의 없는 ‘불법 날치기 처리’라고 비판하며 개정안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했다. 29일 안건조정위 첫 회의가 열렸으나 여야 충돌로 이견만 확인한 채 위원장도 선출하지 못하고 산회했다. 안건조정위는 여야 견해차가 큰 안건을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도록 최장 90일간 법안을 논의하도록 하고 있지만 무소속 윤미향 의원에 민주당 의원(3명)까지 총 4명으로 위원이 구성돼 사실상 법안 처리가 가능하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요청해 이를 무력화하는 방법도 고려 중인 상황이다.

10. 쌀에 집중된 구조 변화 노력

정부는 전격적인 격리조치를 통해 쌀 가격 안정화에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쌀 가격 논란을 피하기 위해선 농업 구조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중장기적으로 분질미(가루쌀) 생산 확대와 전략작물직불제 도입 등을 통해 대체 작물의 생산 확대로 벼 재배 면적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전략작물직불제는 논에 벼 대신 가루쌀·콩·밀 등 대체 작물 재배 시 직불금을 지원해 벼 재배면적 감축 및 대체 작물 생산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이다. 또 다수확 품종 개발·보급을 제한하고, 정부 매입 시 제외되는 다수확 품종 기준 강화를 통해 벼 재배 감축과 품질 고급화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밀·콩의 비축 확대, 논 타 작물·논 콩 배수 개선 등을 추진해 쌀에 편중된 농업 생산구조 변화를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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