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언덕을 함부로 파헤치지 말 것

한겨레21 입력 2022. 10. 4. 08:58 수정 2022. 10. 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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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임대료를 입금한 뒤 주인 할머니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밭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런 짓을 한 달 하다보니 나는 이 언덕을 파다 주검을 발견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밭을 가는 행위에는 농사를 위한 여러 목적이 있겠지만 쓰레기를 한데 모아 언덕으로 묻어버리는 작업을 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밭 주인이 치워주겠다고 약조해 언덕 아래 따로 모아둔 영농쓰레기는 아직도 치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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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들]오래 묵힌 땅을 분양받고 어떻게 농사지을까 행복한 고민을 했지만
분양받은 밭에서 ‘발굴’된 거대한 폐기물들.

텃밭 임대료를 입금한 뒤 주인 할머니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밭의 위치를 확인했다. 역시 ‘여기만은 아니겠지’ 싶었던 곳이 당첨이다. 남쪽에는 아파트가 떡하니 자리잡아 해를 가리고, 차도와 버스정류장 바로 아래에 있는 모호한 자리라 오래 묵혀 풀로 뒤덮인 땅이었다. 호기롭게 로터리치는(밭의 흙을 뒤집는) 일 따위는 하지 말고 달라고 했지만 그냥 쓰기에는 딱 봐도 쓰레기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쓰레기에 대해 불평하자 주인 할머니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로터리치고 써야겠지?”

이윽고 2022년 4월, 밭 주인이 로터리를 치고 나서야 우리는 밭을 쓸 수 있었다. 단점이 많은 땅이었지만 황홀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우리는 오래오래 이 땅에서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많은 것을 해볼 수 있다. 자연농처럼 풀을 키워볼까, ‘퍼머컬처’처럼 한 고랑에 이것저것 섞어서 키워볼 수 있지 않을까. 5평, 10평 한두 고랑만 분양받다 처음으로 큰 땅을 두고 계획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며 언덕을 활용해보려 삽질을 시작했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아파트 아래에 있는 언덕은 삽을 뜨기가 무섭게 비닐이며 부직포 같은 온갖 영농쓰레기가 딸려 나왔다. 비닐봉지 정도 크기가 아니라 최소 몇십m 넘는 거대한 폐기물이라 조각나지 않게 조심스레 주변부터 살살 파며 ‘발굴’해야 했다. 오랫동안 땅에 묻혀 흙과 다른 유기물이 엉켜 있는 부직포와 비닐을 뽑을 때마다 척추와 팔 근육이 끊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고작 몇 발짝 차이인데 아파트와 가까워질수록 장판이나 식기 세트, 목재 가구의 파편이 가득했다. 버스정류장 쪽은 과자봉지와 다양한 소재의 음료수병이 가득했다. 식품 포장지는 딱 봐도 몇 해는 묵은 모양새라 코로나19 시국 동안 새로운 포장 쓰레기가 쌓이지 않은 것에 감사할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50ℓ 쓰레기봉투를 사다 아파트 단지로 나르다 어느 순간부터는 체력도 떨어지고 도저히 감당되지 않아 50ℓ 상토 포대에 담았더니 40포대가 나왔다. 50ℓ 봉투에 들어가지 않는 커다란 상이나 펼침막, 부직포 같은 걸 제외하고 말이다. 이런 짓을 한 달 하다보니 나는 이 언덕을 파다 주검을 발견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 밭을 가는 행위에는 농사를 위한 여러 목적이 있겠지만 쓰레기를 한데 모아 언덕으로 묻어버리는 작업을 겸하는 것이었다.

한 달 동안 주운 쓰레기를 도저히 치울 자신이 없어 구청 청소행정과에 여러 번 전화해 읍소했더니 절반 정도는 일주일 뒤 트럭이 한 대 와서 거둬갔다. “사유지 쓰레기는 따로 수거하지 않으니 앞으로는 이런 일로 전화하지 마라.” 퉁명스레 대꾸하던 공무원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영농쓰레기는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지만 밭 주인이 치워주겠다고 약조해 언덕 아래 따로 모아둔 영농쓰레기는 아직도 치워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나둘 쓰레기를 더하더니 어느새 풀에 뒤덮이다 지금은 거기서 호박이 자라고 있을 뿐. 판도라의 상자처럼 온갖 절망(쓰레기)을 품으면서 희망도 남겨둔 땅은 내게 지치지 말라 말하고 있었다.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이아롬 분해정원 농부, 전종휘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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