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삶의 이야기..해외서도 통하죠"

송영규 선임기자 2022. 10. 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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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판소리협회 설립자' 채수정 한예종 교수
희노애락 등 인간 정신을 소리화
직접 부르고 싶다는 외국인 늘어
국악·양악 결합은 긍정적 활동
'판소리'란 명칭은 쭉 지켜졌으면
채수정 세계판소리협회 이사장이 소고를 두드리며 판소리 '춘향가' 중 '갈까부다' 첫 대목을 부르고 있다.
[서울경제]

‘갈까부다 갈까부다/ 임 따라서 갈까부다/ 바람도 쉬어넘고 구름도 쉬어넘는/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모두 다 쉬어넘는 동설령 고개라도 임 따라서 갈까부다.’

남녀 간 이별의 아픔을 담은 판소리 한 가락이 흐른다. ‘춘향가’ 중 한양으로 떠나는 이몽룡에 대한 성춘향의 애끓는 심정이 표현된 ‘갈까부다’의 한 대목이다. 사랑하는 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서양의 어떤 오페라, 일본의 어떤 창극도 흉내 낼 수 없는 애절함으로 다가온다.

춘향가를 부른 이는 최근 발족한 세계판소리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채수정(52) 한국예술종합대 전통예술원 교수. 세계판소리협회는 판소리와 국악·경기민요 등 분야의 120여 명이 판소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 설립한 단체다.

서울 석관동 사무실에서 만난 채 이사장은 판소리를 ‘삶의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판소리에는 희노애락·삼강오륜 등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보듬고 살아가야 할 정신이 비유와 해학·골계로 녹아 있습니다. 이를 그림을 그리듯, 마음을 그리듯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죠. 문학적 완성도로 보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판소리가 가진 힘입니다.”

채수정 세계판소리협회 이사장이 판소리를 담은 CD 진열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삶의 이야기가 해외에서 안 통할 리 없다. 굳이 퓨전 또는 크로스오버와 같은 응용 창작을 할 필요가 없다. 정통 판소리만으로도 해외에서 박수 세례를 받는다는 게 채 이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해외 공연을 가면 ‘언제 다시 올래’ ‘어떻게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느냐’ 등의 질문을 받는다”며 “요즘에는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부르고 싶다는 데까지 이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서의 이해도도 높다. 판소리의 내용만 대충 설명하고 공연을 해도 일단 소리를 듣고 나면 푹 빠져버리는 수준이라고 한다. 자막으로 설명하면 100% 이해하지만 소리를 듣고 나면 200%의 효과를 낸다는 얘기가 빈 소리가 아니라는 의미다. 판소리가 해외에서도 시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채 이사장은 “판소리 전공자들이 국내에서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활동 무대를 넓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읽었다”며 “일자리 창출은 물론 자아실현을 위해서라도 판소리가 해외로 눈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유행하는 국악과 양악의 크로스오버가 ‘국악을 버려놓는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판소리 자체가 예전부터 변화해온 만큼 지금의 흐름도 새로운 시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채 이사장은 “전통의 오리지널리티를 잃지 않고 다른 장르와 결합하는 것은 비난할 게 아니라 오히려 칭찬해야 할 활동”이라며 “학생들도 원한다면 언제나 변화에 도전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판소리’라는 이름을 꼭 지키고 싶다고 했다. K소리·K보컬 등도 고려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것들로는 판소리가 가진 고유의 의미를 살리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판소리는 자유로운 공간(판)에서 소리를 부른다는 뜻이다. 여기에 판소리가 생겨난 이유와 역사, 그 속에 담긴 한(恨)까지 표현해야 한다. 보컬·소리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채 이사장은 “한국적 정서와 시대적 가치를 모두 포함한 것이 바로 판소리”라며 “이것을 제대로 알리려면 우리말 그대로 표현하는 것 외 다른 방법은 없다”고 역설했다.

세계를 향한 첫걸음은 표준화다. 판소리는 태어난 지역도 다르고 부르는 소리꾼에 따라 달리 불린다. 같은 소리라도 동편제인지, 서편제인지에 따라 확연한 분위기 차이가 존재하고 심지어 가사까지 다른 경우도 있다. 이래서는 외국인들이 따라할 수 없다. 표준어처럼 판소리도 표준화하는 게 시급한 이유다. 그는 “판소리의 가사와 노래를 통일한 곡을 만들고 이를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자격증을 부여할 것”이라며 “이들이 세종학당에서 외국인에게 판소리를 가르치고 나중에는 이를 바탕으로 한 축제도 개최할 계획”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송영규 선임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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