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동맹 외교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2022. 10. 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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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9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동맹의 수준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측정할 수 있다. 하드웨어는 양자 간 폭넓은 정책 협의 기구로서 대개 군사 부문을 말하지만 최근엔 통상·투자·글로벌 보건·개발 원조·공급망 등의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하드웨어만큼 중요한 소프트웨어는 인간적이고 개인적 측면이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모두 좋을 때로 정책 목표가 일치하고 정상 간 친분이 강력할 때다. 하드웨어가 좋지 않을 때도 정상 간 친분은 정책 이견을 좁히는 데 도움이 된다. 소프트웨어가 나쁠 때는 동맹 관계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나쁜 소통의 사례로 2002년 2월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첫 만남을 들 수 있다. 워싱턴에 온 김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미국이 왜 햇볕정책을 지지해야 하는지 장시간 설명했다. 부시는 공손히 들었지만, 유쾌해하지 않았고 이 상황은 두 사람의 사이를 곤란하게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정상회담에서 순조로운 첫발을 뗀 것으로 보인다. 북한 비핵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한·미·일 삼각 협력, 공급망 안보, 글로벌 보건, 청정 5G 네트워크, 반도체 칩4 동맹, 개발 원조 등 여러 이슈에서 광범위한 협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하드웨어가 좋았다. 더 중요한 소프트웨어에서 두 정상은 좋은 친분 관계를 쌓았고, 바이든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게 “당신을 깊이 신뢰한다”고 하면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이후 양측의 사소한 실수가 이어지면서 약간 차질을 빚은 것 같다.

우선 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7월 워싱턴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의 벽 제막 행사에 윤석열 정부는 국방장관, 보훈처장, 그리고 기념비 건립을 후원한 여러 대기업 최고경영자를 보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부통령 배우자를 보냈는데, 이 의전상의 부조화를 대다수 한국인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2주도 지나지 않아 미 국가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논란의 대만 방문을 마친 뒤 방한했지만, 윤 정부의 어느 누구도 공항에 나오지 않아 펠로시를 난감하게 했다.

이 낭패가 있고 열흘 뒤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미·일 협력을 위해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연설했다. 한국 내부적으로 예민한 주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연설은 워싱턴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대신 연설 다음 날 바이든 행정부는 북미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전기차 구매자에게 7500달러의 보조금을 주지 않겠다는 내용이 들어간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에 서명했다. SK·삼성·현대가 지난 5월 조지아·테네시·텍사스에 수십억달러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는데도 한국을 겨냥한 차별적 조치가 취해진다는 것을 한국인들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 조치는 한·미 FTA 취지와도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이어 뉴욕을 방문한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미 의회를 폄훼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켜진 마이크 설화’에 휘말렸다. 윤 대통령은 미국 언급 발언을 부인했지만, 이 사안은 한국 언론과 야당 사이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일이 정상 간 친분을 훼손시켜 동맹 관계에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을까? ‘켜진 마이크 건’이 미국과 관계를 해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커다란 정치적 이슈가 됐지만, 미국 언론들은 거의 다루지 않았고 당국자들도 언급하지 않았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방한 기간 이 이슈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 게 가장 눈에 띄는 언급이다.

IRA 문제의 해결 방안을 찾는 건 더 어려울 것이지만 한미 정상 간 소프트웨어가 이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IRA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겨냥한 어떤 의도가 있었다고 보지 않는다. 이는 백악관 국가안보팀의 업무 범위에 있지 않은 국내 입법의 일환이다. 그리고 미국 정책 입안자들은 IRA법안이 한국에 궁극적으로 상당한 이득을 준다고 계산했을 것이라고 본다. 가령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생산업체에 대한 세제 혜택은 SK·LG·삼성이 향후 미국과 출범시킬 합작 벤처에 상당한 이득이 될 것이다.

IRA와 관련, 가능한 해결책은 미국의 FTA 대상국에서 생산한 전기차까지 보조금 혜택을 주도록 입법안을 수정하는 것이다. 다른 해결 방안은 보조금 혜택을 2025년까지 연기하도록 하는 부칙을 삽입해 한국 업체들에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세 번째 대안은 현대차가 공장 건설을 가속화해 2025년 이전에 차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주 차원 입법에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안들이 쉬울 것이라는 환상은 금물이다. 미국은 한국의 근심거리를 해결하려 할 테지만, 사실 이 문제는 단기적 사안이다. IRA로 한국이 얻는 실질적 이득은 상당하며 몇 년만 지나면 결실을 맺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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