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 한글 못 쓰게 하는 애플의 횡포

이재철 2022. 10. 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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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갑질요? 말도 마세요. 아이폰 보도자료 내보내려면 문구 하나하나 애플이 요구하는 틀에 맞춰야 합니다."

최근 국내 한 통신사 관계자가 기자를 상대로 터뜨린 분통은 과장이 아니었다. 지난달 30일 오전 8시를 기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애플 아이폰14 시리즈 사전예약 보도자료를 일제히 언론에 배포했다. 놀랍게도 3사 보도자료는 마치 한 회사가 만들어 놓은 자료를 복사한듯 판박이 구조였다. 보도자료는 머리말부터 80% 가까이 통신사 서비스 정보가 아닌 아이폰·애플워치 신작 스펙을 기술하는 데 할애됐다. 심지어 아이폰 특징을 설명하는 6개의 각주까지도 통신사 보도자료에 똑같이 들어가 있었다. 마치 애플이라는 회사가 작성한 '아이폰14' 기술 논문을 보는 느낌이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한국 기업이 쓴 보도자료임에도 아이폰, 애플 등 제품과 회사명이 모두 영문으로 표기된다는 점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한국에서 우리 기업들은 애플의 요구로 인해 제품명조차 한글로 쓰지 못한다. 통신 3사 중 용기 있게 보도자료에 아이폰을 'iPhone'이 아닌 '아이폰'으로 표기한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처럼 기업 고유의 마케팅 권한을 침해하는 애플을 상대로 우리 기업이 맥을 못추는 이유는 '물량 공급권' 때문이다. 애플의 심기를 건드릴 경우 신작 물량을 적게 배정받아 신규 고객 유치에 차질을 빚게 된다. 급기야 국회에서는 애플의 독점적 횡포를 막기 위해 '애플 갑질차단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을 최근 발의했다.

한국 통신사들의 아이폰 신작 광고를 보면 공통적으로 15초 중 13초에 걸쳐 아이폰 기기가 집중 조명된다. 마지막 1~2초에 이르러서야 한국 통신사 로고가 잠깐 깜빡거리는 방식으로 스친다. 통신업계 인사는 "매년 아이폰 신작 광고가 나갈 때마다 소비자들은 해당 광고를 국내 통신사 광고가 아닌 애플 본사 광고로 인식할 것"이라고 한숨을 쉰다. 한국의 애플 갑질차단법은 이처럼 애플의 비양심적인 광고 무임승차 행위를 금지 행위로 넣었다.

1~2초의 깜빡거림. 올해 아이폰 TV 광고에서도 어김없이 애플의 '갑질 신호'가 반복될지 공정거래위원회는 엄중한 시장 감독에 나서야 한다.

[디지털테크부 = 이재철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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